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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공정하다는 착각 :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 과열된 능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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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공정하다는 착각
: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지은이 : 마이클 샌델
번역 : 함규진
출판사 : 와이즈베리
출판일 : 2020년 12월 01일





도서관에서 대출한 도서로 일부분 모자이크 처리되었습니다.

능력이 있으면 된다는 능력주의. 능력주의가 낳은 폐해는 무엇일까. 학력주의다. 학력으로 능력을 평가하게 되는 오만과 실수를 낳고 있다. 학력이 높아야 능력이 좋은 걸까? 그건 또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학력과 능력을 똑같이 이해한다. 평가 요소는 될 수 있을 지언정 그게 같은 건 아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학력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요즘들어 그 정도가 희석되는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학군을 중요시 여기며 좋은 학교를 보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애를 쓰고 있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과도한 능력주의로 인해 도덕의 진정한 의미가 가려진다고 말한다. 그 이유에 대해 여러 사례를 더해 내용을 이어간다.










오바마의 취임 연설을 인용해 그가 한 말은 능력주의에서 나온 오만함이라고 설명한다.




"부패와 기만, 반대파에 대한 억압으로 권력을 유지해 온 사람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역사의 잘못된 쪽에 있음을."

오바마 취임 연설 중에서..



일개 하나의 개인이 역사를 들먹이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역사에서 잘못과 옳음은 시간이 구분해준다. 함부로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소련이 붕괴되고 푸틴이 러시아의 지도자가 되었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이다. 사담 후세인을 몰아냈으나 자유민주주의는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이 옳다고 믿는 신념이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반드시 긍정적이라고 확신하면 안되고, 그럴 수도 없다. 인간사 수많은 변수 속에 놓여 살아가는데, 옳다고 믿었던 것도 그렇지 않게 된다. 역사의 옳은 편에 서서 정의를 위해 앞장서겠다는 식의 발언은 과도한 오만이자 자만심이다.











마이클 샌델은 대학진학에 힘쓰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노동계급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꼬집는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무조건 적인 교육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에 가지 않은 이에 대한 편견이 생길 수 있고, 실패에 대한 책임을 학력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오판을 하게 될 수 있다.


지금껏 학력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으로 인해 노동계급에 대한 인식은 나빠졌고 그로 인한 편견과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 먹고 자고 가족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닌가. 과거 노동계급의 가정분위기는 그랬다. 사치는 부리지 못해도 생활에 있어 큰 모자람 없이 살았다.


엘리트주의가 만연하게 퍼진 미국사회. 현재는 심슨가족처럼 노동 계급의 집안을 희롱하고 웃음거리로 소비하고 있다. 행복을 생각한다면서 정작 그들의 행복을 비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는 모순적인 행동은 학력주의에 대한 집착에서 나온 오만이다.








노동계급은 미국의 중산층이다. 경제에서도 중산층의 입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규모의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한 크기의 공급이 가능한 자본가와 그걸 소비할 수 있는 다수의 소비자가 필요하다. 중산층이 두터울수록 경제의 움직임은 긍정적으로 흐르게 된다.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엘리트들은 그런 그들의 존재를 멍청하고 노력하지 않는 이들이라며 무시했다. 그들이 없으면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데 말이다.



트럼프는 이 기회를 틈타 땅바닥으로 떨어진 미국 중산층에 대한 지지를 확보했다. 그 덕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독후감] 승리의 기술 : 최고의 승부사 트럼프의 이기는 전략 | 그가 예상을 깨고 대선에 오른 이유 -
https://jwny.tistory.com/m/273

[독후감] 승리의 기술 : 최고의 승부사 트럼프의 이기는 전략 | 그가 예상을 깨고 대선에 오른 이

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승리의 기술 : 최고의 승부사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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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고학력을 갖춘 리더일 때 좋은 정책을 생각하고 개발할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현재 미국과 유럽 국회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다를 것이 없다. 현재 예산안 통과보다 참사의 원인을 파헤치는 것에 더욱 몰두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북한의 무인기가 수차례 넘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비 증강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세우거나 복지에 관한 예산을 늘려야 한다며 떼를 쓰고 있다. 복지를 늘리는 건 분명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 그것이 높은 우선순위는 아니다. 안보가 갖춰질 때 복지를 논할 수 있다. 외양간이 없는데 소를 어디다 두고 키울 것인가. 국가가 무너지면 우리는 지난 역사를 다시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엘리트라고 말하는 이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 오가고 있는 정치 담론의 수준이 어떤지 짐작이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사망 원인이 난치병, 불치병이 아닌 사례에 대해 ’절망 끝의 죽음‘이라고 부른다. 사망률의 증가가 자살, 약물 과용, 알코올성 간질환의 만연에 따른 이 현상에 대해 그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 해당하는 이들의 연령대는 대략 45세에서 54세 사이이며 백인 남성과 여성이다. 절망 끝의 죽음은 1990년에서 2017년 사이 세 배로 늘었다고 한다. 2014년 처음으로 이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 심장마비보다 약물, 알코올, 자살로 숨지는 경우가 많게 나타났다.



시기를 고려하면 학력주의의 과열과 맞물린다. 1990년대 이후 대학 졸업자의 사망률은 40퍼센트 감소했고 반면 비대졸자의 경우에는 25퍼센트 늘었다. 2017년 비대졸자는 대졸자보다 절망 끝의 죽음에 희생되는 경우가 세 배나 많게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무능하다고 바라보는 시선과 편견, 대학을 나왔어도 대학 등급에 따라 세부적으로 그들의 능력을 또 가른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이걸 모르는 2030 세대는 없을 것이다.



공부를 잘한다고 사회를 보는 시선이 넓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선의 확장은 경험에서 온다. 직접 부딪히고 생각이란걸 하면서 고착화되어있던 자신의 사고를 넓힌다. 국영수 빼곡히 쓰여진 글자를 읽는다고 넓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화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사고확장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미분적분이 사회경험을 쌓는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저자는 결론에서 이 말로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우리 운명의 우연성을 제대로 인지하면 일정한 겸손이 비롯된다.

결론 _ 능력, 그리고 공동선 중에서..



재능이 무엇이든 주는 대로 받을 자격이 있다는 능력주의 신념은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꼬집었다. 인간이 현대문명까지 빠른 시간 내로 이뤄낼 수 있었던건 대규모로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유발 하라리 저자의 “사피엔스”에도 정확히 드러나있다. 과도한 능력주의는 연대를 약화시킨다. 나아가 앞으로 일어날 새로운 문명의 등장을 늦추게 만든다.











총평

능력주의가 과도하게 요구되는 요즘, 공정에 대해 우리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부모가 모두 가수와 배우여서 그가 갈 분야가 연예계라고 한다면 과연 좋을까. 다른 경험을 쌓을 기회 없이 연예인으로 살아야 한다면 다른 면에서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른 이가 보기엔 복에 겨웠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건 공정하지 못할 수 있다. 능력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과 집착은 이런 생각을 차단하게 만든다. 돌고 돌아 자신의 길을 찾는 삶이 필요하다. 그러나 능력주의의 과도한 예찬과 맹신은 고학력을 요구하는 사회분위기를 낳았고, 모두가 정해진 교육을 받으려 애써야 했다.



그 결과 교육의 격차는 예나 지금이나 그 정도가 크지 않다. 조선건국 1392, 임진왜란 1592 주입식 교육의 영향으로 우리의 무의식중에 남아있는 것들이 비슷하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선호하는 듯 보인다. 앞서 포스팅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부터 일관된 태도이다. 자신에게 맞는 역할을 스스로 찾도록 하며 그렇게 공동선을 이룰 수 있을 때 사회는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 그런 기회를 갖게 만들도록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정의를 넘어서 공정이란 의미는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학 진학률이 점차 감소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대학을 가는 분위기가 남아있다. 앞으로의 세대에게는 대학이 아닌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많은 이들이 방황한다. 오랜 시간 정해진 교육을 받다보니 자신에 대한 탐구가 부족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길을 만들어줄 때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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