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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 건축도 인문학적 감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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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지은이 : 유현준

펴낸 곳 : 을유문화사

펴낸 날 : 2023-05-30



 

 

철근 콘크리트로 집을 짓자 지붕을 평평하게 만들고 그곳을 사람이 사용하는 정원으로 꾸밀 수 있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땅에 건축물을 앉히면 건물이 들어선 만큼 녹지가 줄어든다.

그런데 옥상 정원을 만들면 건물 때문에 녹지가 줄어들지 않아서 지구 표면에서 녹지 면적의 총량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 만드는 다섯 가지 특징인 필로티,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가로로 긴 창, 옥상 정원을 '근대 건축의 5원칙'이라 부르고 이것을 르 코르뷔지에가 제창했다.

근대 건축의 5원칙은 한마디로 철근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가 만든 건축의 특징이다. 이는 건축을 기계로 보았고, 건축이 기계가 되도록 공장에서 생산되는 재료인 시멘트와 철근을 사용하면서 만들어진 특징이다. 이러한 근대 건축의 5원칙이 총결집된 결정체가 '빌라 사보아Villa Savoye'다.

1장 빌라 사보아

1931년 : 건축은 기계다

철근 콘크리트가 만든 5원칙 20p

원칙 상 녹지 면적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원칙일 뿐. 대부분의 건축물 옥상에는 환기구 또는 실외기 등이 놓여있다. 건축의 혁신을 일으킨 철근 콘크리트지만, 이를 악용한 인간의 욕심이 지금도 넘쳐 흐르고 있다. 여전히 환경은 파괴되고 있으니 말이다. 높게 쌓는 경쟁만 할 뿐 그 안에 정원이나 환경을 위한 조경을 꾸미는 건 고려하지 않는다. 비용 때문이다. 차라리 그 비용으로 한층 더 올리는게 나을테니까.

 

 

 

 

 

 

 

도시 안에 더 많은 사람이 경제적으로 편리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르 코르뷔지에는 좁지만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사람의 몸은 팔, 다리, 몸통, 머리로 나누어져 있고, 각각은 각종 관절로 연결되어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앉은키, 선키, 손을 들었을 때의 높이 등을 고려해 적절한 크기의 공간을 디자인하려 했다. 이를 '모듈러'라고 부른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천장 높이는 226센티미터인데, 이는 183센티미터 키의 성인 기준으로 손을 들었을 때 손끝 높이가 226센티미터 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아파트 천장고 2.3미터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내 키 기준으로 모듈러를 만들었으면 지금 우리는 더 낮은 천장고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단위 세대의 폭은 양팔을 벌려서 나오는 폭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주거의 평면은 양팔을 벌린 폭 정도에 창 쪽으로 긴 형태다. 이러한 가로 폭과 길이, 천장고는 이후에 만들어지는 '라 투레트 수도원'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어 나타난다. 단순하게 좁고 길게만 만들었다면 너무 답답했겠지만, 다행히 이러한 폭의 모듈러는 경우에 따라서는 두 개로 합쳐져서 넓은 폭의 공간이 된다. 이러한 변화 덕분에 단순하게 좁지 만은 않은 다양한 공간의 변주가 만들어진다. 르 코르뷔지에가 모듈러를 적용하려고 했던 이유는 좁은 공간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7장 유니테 다비타시옹

1952년 : 건물 안에 도시를 만들겠다는 야심

2.3미터 아파트 천장고의 시작 130p

이제 2.3m라는 층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양상태가 개선되면서 덩치와 체격이 갈수록 상향평준화가 되고 있다. 유럽에서 뛰던 한국선수가 드물었던 과거에 비해 요즘은 많다. 이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의 외형만 봐도 느낄 수 있다. 좋게 말하면 낮은 층고는 안락함을 가져다 줄 지는 모른다, 나쁘게 말하면 답답한 공간이 되는 불편한 곳이 될 지도 모른다. 층고가 낮더라 하더라도 구조가 다이나믹 하다면 괜찮다. 그 예시로 저자는 라 투레트 수도원을 이야기 한다. 좁은 공간이라도 그렇게 느끼지 않게 구성한 내용을 꼬집는다.

프랙털 지수 1.4 적당하게 혼재되어 있을 때 인간은 안락함을 느낀다고 한다. 자연에서 살던 본능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는 과거의 인류처럼 투쟁-도피 스트레스가 발현된다. 예상치 못한 상사의 부름에 혹은 여행 중 난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예나 지금이나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생긴다. 자연친화적인 공간 디자인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의 안락함을 위해서다. 물론 환경을 지키고자 함도 있겠지만 그건 이상적인 말이다. 인간의 편안함을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될 때 앞으로 더 발전할 기회가 생길 거다.

 

 

 

 

 

 

 

이 건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내부 곡면의 벽과 거친 표면의 비밀은 거푸집 자체의 구성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거푸집을 합판 같은 판재로 짠다. 혹은 아름다운 곡면을 만들기 위해 컴퓨터로 재단한 다음 철판을 휘어 거푸집을 짜기도 한다. 하지만 춤토어는 이 예배당을 건축할 때 112그루의 통나무를 세워서 안쪽 거푸집을 만들었다. 이때 통나무를 기울여서 서로 마주 보게 했기 때문에 실내 벽체가 기울어진 형태인 것이다. 내부는 통나무를 기울이고 밖은 거푸집을 수직으로 세운 다음에 둘 사이의 공간에 램드 콘크리트를 채워 넣었다. 기울어진 벽이 만나면서 동굴처럼 되기 때문에 지붕은 따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내부의 거푸집을 제거할 때 통나무를 태웠다는 점이다! 이 예배당에는 거푸집으로 사용했던 통나무를 떼어서 가지고 나올 만한 입구나 창문이 없다. 건축가는 그 통나무를 태운 다음 숯으로 만들어 부숴서 가지고 나오는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한 것이다. 이런 창의적인 방법은 금시초문이다. 마치 우리가 치과에서 치아의 틀을 만들 때 고무를 입에 물었다가 뱉으면 치아 모양이 그대로 음각으로 남듯이, 실내에 들어가면 거푸집을 구성했던 통나무의 모양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서 거친 표면의 실내 마감을 완성한다. 게다가 통나무 거푸집이 타면서 생성된 타르와 재가 벽체에 남아서 어디서도 볼 수 없던 색상을 연출한다. 춤토어가 왜 건축 재료 물성의 마스터인 지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다.

9장 브루더 클라우스 필드 채플

2007년 : 빛이 들어오는 동굴 만들기

퇴적층 콘크리트와 은하수 161-163p

콘크리트를 부을 생각은 한 건 독특하다. 영월의 젊은 달 와이파크 첫 관람을 시작하면 마주하는 곳이 목성이란 작품이다. 이것도 브루더 클라우스 필드 채플과 나무로 세워진 점에서는 비슷하나, 콘크리트를 통해 단단한 벽을 세워 예배당의 역할을 충실하게 만든 점이 조금 다르다. 젊은 달 와이파크의 목성이란 공간은 지붕이 없다. 위에 보면 동그랗게 구멍이 나있는데 이 점도 차이가 있다.

 

 

 

 

 

 

 

발스 스파'에는 온탕, 냉탕 등 다양한 종류의 탕이 방으로 구획되어 있다. 그 밖에도 마사지룸 같은 방도 여러 개 있다. 그리고 그런 방들은 마치 미로처럼 각기 다른 크기로 여기저기 떨어져서 놓여 있다. 방이 마을처럼 모여 있고, 그 방과 방 사이에 욕실이 배치된 구조다. 여러 개의 방을 구획하는 벽들이 마치 하나의 집처럼 독립적인 구조체고, 그 집에서 길게 처마가 나온 평지붕들이 모여서 스파 전체의 지붕을 구성한다. 이때 각각의 지붕 처마들은 10센티미터 정도 간격으로 떨어져 있고 그 사이를 유리창으로 덮고 있는 구조다. 이 처마 사이의 틈을 통해 빛이 들어오다 보니 중간중간에 보로 인해 끊어지지 않고 빛이 연속된 선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작은 마을에 갔는데, 그 마을의 마당과 골목길에 홍수로 물이 차서 골목길에서 목욕을 하는 모양새다. 이때 골목길의 양쪽 집의 처마가 너무 길게 나와서 하 늘을 거의 다 가리고 햇빛이 좁고 길게 골목길로 내려온다고 상상해 보면 될 것 같다.

보로 연결되지 않는 지붕을 만든다는 것은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은 작은 차이지만 작은 차이가 모여 엄청난 감동을 만든다. 마치 작은 톱니바퀴들이 모여서 종국에는 엄청난 감동을 주는 스위스 명품 시계가 만들어지는 것과도 같다. 같은 건축가의 작품이지만 ‘성 베네딕트 채플'과 '발스 스파'는 땅을 대하는 전략이 완전히 반대다. '성 베네딕트 채플'은 땅 위에 띄워서 지었고, 발스 스파'는 땅속에 묻어 넣었다. 그렇게 만든 두 번째 이유는 건물의 크기 때문이다. 작은 교회는 만들어 져도 풍경에 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는 눈에 띄게 만들어 져서 많은 사람이 쳐다보면서 위안을 얻어야 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땅에서 띄워 노출되게 지었다. 반면에 목욕탕인 스파 건물은 덩어리가 커서 땅 위에 지어지면 경관을 해친다. 스파는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건물이어서 창문이 클 필요가 없다. 오히려 창문 없이 내부 지향적으로 개인적인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 건축물이다. 그렇다 보니 땅속에 짓는 것이 나았고, 땅속에 짓다 보니 재료로 돌을 사용해야 했다. 건축가는 여러 가지 조건 속에서 최고의 경험을 줄 수 있는 공간 구축 방식을 찾아야 한다. 춤토어는 그런 역할을 아주 잘 해내는 건축가다.

목욕탕은 인간이 만든 건축물 중에서 물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다루는 건축물이다. 그래서 목욕탕은 물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태아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도 '양수' 속에 담겨 있다. 모든 포유류는 잉태되면서부터 체온과 같은 온도의 물과 접촉된 촉감을 느끼면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엄마 배 속에서 나온 이후 계속 자신을 감싸줄 집을 찾고, 누군가 체온으로 안아 주는 촉감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나를 안아 줄 사람이 없을 땐 체온과 비슷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원초적인 안정감을 느낄 것이다. 춤토어의 '발스 스파'는 마치 "물이 인간에게 무엇인지 알려 주마."라고 말하는 건축물 같다. '발스 스파'에서는 단순히 목욕한다는 느낌을 넘어서 물의 다양한 측면을 체험할 수 있다. 냉탕에 들어가면 물속에서 조명된 욕조 물 안에 파란색 꽃잎들이 소용돌이친다. 파란 꽃잎은 차가운 물의 느낌을 시각적으로도 느끼게 해준다. 반대로 온탕에는 빨간 꽃잎이 휘몰아친다.

10장 발스 스파

1996년 : 땅속에 숨겨진 신전 같은 목욕탕

골목길에서 목욕하기 181-184p

로마시대 목욕탕을 보면, 땅이 파여있다. 그 사이로 물이 흐르는 것인데 그 점이 비슷하다. 오늘날의 목욕탕은 대부분 우물 모양처럼 지반위에 쌓아 올린 디자인인 경우가 많다. 매립형태도 물론 있지만, 최근에서야 심미적인 이유로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지만 발스 스파의 느낌을 가진 공간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특징을 잘 보고 우리도 적용할 수 있으면 좋을 듯 싶다. 한국적인 미를 곁들이면 독특한 느낌의 공간이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나는 게리의 최고 걸작은 로스앤젤레스의 '디즈니 콘서트홀 이라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건물, 같은 건축가인 데 디자인이 계속해서 바뀌었다는 점이다. 게리가 '디즈니 콘서트홀' 현상 설계에 당선된 시점은 1988년이다. 그때의 계획안은 지금 지어진 것처럼 역동적으로 휘어진 3차원 곡면이 아니라, 층마다 모양이 다른 2차원 곡선의 평면도를 차곡차곡 쌓아서 불규칙한 형태의 건물 덩어리를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벽은 모두 수직으로 올라간 단조로운 형태였다. 그런데 1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술이 발전했고, 게리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성공했던 제작 방식을 적용해서 새로운 3차원 곡면의 '디즈니 콘서트홀'을 완성할 수 있었다. '디즈니 콘서트홀' 디자인의 변화 과정을 보면 게리의 디자인은 기술과 연합해서 계속 진화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게리는 건축 형태를 만들 때 비논리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예술가의 면모가 부각되었고 따라서 다른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나는 그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할 때 보여 주는 솔직 담백한 성격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직관적인 그의 생각은 합리적이지 않아서 이론으로 정립되지 않았다.

12장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1997년: 물고기를 좇은 건축가의 꿈

진화해서 살아남은 건축가 210p

계속 변화한다. 사람의 마음이건, 기술이건. 디즈니 콘서트 홀이 그 예시다. 기술이 변하니 내 생각이나 마음도 변할 수 있는 거다. 신기술을 적용할 수 있게 되니 상상만 했던 디자인을 실물로 옮길 수 있게 되니까 말이다. 논리의 한계는 시대적 배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제한적이고 상상이 불가하다. 비논리성은 예술에서 필요하다. 논리성은 기술에서 요구되는 요소다. 예술에서는 비논리, 변칙, 불규칙성이 필요하다. 건축도 논리로만 적용해서는 새로움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

 

 

 

 

 

 

고층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층에 부는 바람이 가하는 압력, 즉 풍압 때문에 건물이 옆으로 흔들릴 수도 있는 위험성이다. 더욱이 '시티그룹 센터'는 기둥 네 개와 가운데 엘리베이터 코어'로만 지탱해야 할 뿐 아니라 이 기둥들이 꼭짓점이 아닌 각 변의 가운데에 있어서 구조적으로 더 불안한 상태다. 평소에는 괜찮지만 허리케인이라도 부는 날에는 아주 심각한 위험이 초래될 수도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티그룹 센터' 고층부에는 '동조 질량 감쇠기’ 라는 기계 장치를 내부에 설치해 놓았다. 장치의 원리는 네 개의 끈에 매달려 있는 무거운 추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무게 중심을 이동시켜 건물의 구조를 더욱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몸을 기울여 걸으면 좀 더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건물이 바람에 밀려 왼쪽으로 기울 때 끈에 매달린 추는 관성의 법칙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결과적으로 추가 건물의 오른쪽에 위치하게 되면서 건물의 균형을 잡아 주는 원리다. 이 기법은 대만의 '타이베이 101’ 같은 초고층 건물에도 사용되고 있다. '타이베이 101’에 사용되는 추의 무게는 728톤이나 된다. 추가 이 정도로 무겁기 때문에 백 층 넘는 건물이 바람에 넘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건축 설계를 하다 보면 끊임없는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훌륭한 건축가는 그때마다 창의적인 해결책으로 문제를 푼다. 그리고 그 해결책의 결과가 디자인이 된다. 훌륭한 건축가는 그저 직관적으로 아름다운 모양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보는 훌륭한 디자인은 모두 '문제 해결의 결과물'이다. 자연의 디자인이 그렇다. 기린의 목이 긴 것도, 오리발에 물갈퀴가 있는 것도 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다.

'시티그룹 센터'의 디자인은 자리를 뜨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건축가는 그 제약을 없애 버리기보다 오히려 제약을 풀기 위해 창의적인 생각을 하여 새롭고 독특한 디자인을 창조 해 냈다. 제약은 새로운 창조의 어머니다.

15장 시티그룹 센터

1977년: 좋은 디자인은 문제 해결의 답이다

제약은 창조의 어머니 252-253p

높게 쌓고는 싶지만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는 건 모순적이다. 그걸 해결하면 된다. 성공은 그곳에 있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 창의력이 동원된다. 제한된 시간은 인간의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것처럼 건축도 비논리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제한을 두어야 한다. 상식 선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한 방법을 만들고 그걸 풀어나갈 수 있게 실마리를 찾는 거다.

 

 

 

 

 

 

 

 

 

1980년 미국 의회로부터 기금을 받은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기금'은 기념관 설계 공모전을 열었다. 18세 이상의 미국 시민이라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는 공모전이었다. 1981년 1,421개의 작품이 출품되었고 놀랍게도 당시 무명이었던 스물한 살의 예일대학교 재학생 마야 린 Maya Lin의 작품이 당선되었다. 당시 그가 제출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파스텔로 적당히 그린 스케치와 A4 용지 한 페이지의 설명서뿐이었다. 화려하지 않은 프레젠테이션 자료에서 놀라운 가능성을 발견한 심사위원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마야 린의 디자인은 놀 랍게도 심플하다. 우선 건물이 하나도 없다. 그냥 빈 땅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땅이 약간 기울어져 있고 그렇게 아주 얇게 깎여 나간 땅의 한쪽에는 옹벽이 서서 땅을 무너지지 않게 받치고 있다. 그냥 빈 땅에 옹벽을 만들고 끝난 디자인이다. 기념관 자체만 보면 그냥 기분 좋은 잔디가 깔린 햇볕 잘 드는 공원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옹벽은 각도가 넓은 V 자 모양이다. '베트남 Vietnam을 상징하는 V로 볼 수도 있고, 승리를 뜻하는 '빅토리victory의 V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어설픈 상징보다는 우리는 이 V 자가 가리키는 방향에 집중해야 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념관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봐야 한다.

배치도상 V 자 모양으로 된 길의 한쪽 끝에 서면 길이 아주 원만 하게 기울어져 내려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주 완만하게 경사진 내리 막길을 걷는 것은 일반 평지를 걷는 것보다 편하다. 중력이 걸음을 도 와주기 때문이다. 경사가 급한 경사로에서는 몸에 균형을 잡기 위해 힘이 들어가지만 아주 완만한 경사로는 오히려 더 편하다. '베트남전 쟁재향군인기념관'의 길은 그런 완만한 경사로다. 몇 발자국을 디디면 내 왼발 아래에 아주 작은 검은색 벽이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감흥은 없다. 온통 자연으로 둘러싸인 기분 좋은 공원이니까. 그런데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내 왼편의 검은색 벽은 점점 더 높게 자라난다. 그리고 그 면적은 더 빠르게 증가한다. 순식간에 내 허리까지 검은색 벽이 올라와 있다. 그러다가 조금만 더 가면 내 눈앞을 검은색 돌박이 가로막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땅속에 들어와 있다. 기울어진 땅에서 중력에 몸을 싣고 편안히 걷다 보니 땅 속에 들어온 것이다. 중력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이다. 시간도 역시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죽고, 죽으면 땅속에 묻힌다. 누가 묻어 주지 않아도 우리 몸은 썩어서 중력에 의해 땅으로 들어간다. 베트남전 참전 전사자들도 지금 어딘가의 땅 속에 묻혀 있다. '베트남전쟁재향군인기념관'에서 중력에 이끌려 걸으며 땅속에 들어가는 듯한 경험은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경험과 비슷하다.

18장 베트남전쟁재향군인기념관

1982년 : 공간으로 만든 한 편의 영화

땅속에 묻혀보는 경험 293-295p

이 대목은 그의 유튜브 채널 셜록현준에서도 언급되는데, 재미있게 본 클립영상이다. 공간의 구성이 주는 힘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좋은 예시다. 인간은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공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층고의 높낮이에 따라 창의적인 생각이나 마음의 여유가 다른 것처럼. 안락함을 느끼는 공간이 있는가하면 차가움이 느껴지는 곳이 있다. 하얀색 대리석과 밝은 인테리어에서는 안락함보다는 긴장감이 느껴지고, 우드 톤의 인테리어 조금 어두운 조명의 공간에서는 안락함을 느낀다. 서점의 분위기를 떠올리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공간을 벗어나 생각할 수 없다. 샤르트르가 말한 실존주의의 핵심은 지금 나 그리고 여기. 즉, 시간과 공간 그리고 나만이 핵심이 되는 것이다. 공간은 존재의 이유가 되어준다. 어떤 공간에서 사느냐에 따라 어느 공간에 놓이느냐에 따라 나의 태도가 달라지는 걸 알 수 있다. 베트남 전쟁기념공간에서는 시간에 흐름에 따라 숙연함이 점차 밀려들고 극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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