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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새롭게 읽는 서양미술사 : 역사와 철학의 눈으로 미술을 감상하다 / 인문학적 배경으로 볼 때 비로소 미술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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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새롭게 읽는 서양미술사

: 역사와 철학의 눈으로 미술을 감상하다

지은이 : 박송화

펴낸 곳 : 메이트북스

펴낸 날 :2023년 8월



생생하게 생각할수록 꿈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생생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그에 따른 목표와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기계발서에 흔히 나오는 말이라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나요? 하지만 인류 최초의 미술은 생생하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꿈을 이루는 첫걸음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879년 스페인 알타미라 지역의 한 석회암 동굴에서 벽화가 발견되었습니다. 동굴 깊숙한 곳에 들소, 사슴, 말 등 다양한 동물들이 그려져 있었지요. 풀 컬러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실적이었기에 실력 좋은 한량 예술가가 이곳까지 와서 그려놓은 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조사를 통해 이 작품은 대략 기원전 3만 년에서 2만5000년 사이 구석기시대에 그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그 실력이 뛰어나 한동안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벽화 속 들소는 그 형태와 윤곽이 뚜렷할뿐더러 잔잔한 털까지 표현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예리하게 관찰하고 그린 걸까요.

우리가 아는 우가 우가 원시인들이 이런 작품을 그렸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보다 훨씬 못 그리는 21세기의 '나'는 뭐가 되나요. 우리는 근거 없이 3만 년 전 조상들을 우리보다 어리숙한 존재라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역사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그다지 신뢰가지 않는 이 사고관에 근거해 현대인들은 원시인들이 당연히 문명화된 인류보다 못하리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동굴벽화는 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인류 최초의 미술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1장 원시미술

구석기미술

인류 최초의 미술 18-19p

절대주의 - 상대주의 - 현실주의는 각 시대별의 미술 형식을 나타내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각 중세, 근대, 현대의 미술양식이라고 생각하면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능합니다. 미술도 인문의 또다른 분야이기 때문에 인문학적인 배경요소를 접목해서 이해하면 훨씬 좋습니다. 이 책은 그런 도움을 주고자 쓰여진 책 같습니다.

고대 석기시대 미술을 시작으로 후기인상주의까지 이어집니다. 인문의 시선을 더해 미술작품을 설명하는 점이 이 책의 장점입니다. 대중성을 띄기 때문인데요. 알타미라의 벽화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미술사를 훑어보면 양식과 표현에서 흥미로운 점이 발견됩니다. 사실적이고 생생한 재현적 미술이 지배적인 시기가 있는 반면, 간략한 표현이 돋보이는 추상적 미술이 주된 시기가 있습니다. 구상적•추상적 표현이 반복되면서 미술은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갑니다. 물론 다른 시기와 비교해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구상적 측면과 추상적 측면이 두드러진다는 뜻입니다.

미술 양식과 표현이 달라졌다는 말은 단순히 미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미술이 시대를 반영한다고 했을 때 양식과 표현이란 곧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이 바라본 세계를 보여줍니다. 이때의 세계는 그 시대의 사회, 문화, 가치관 등 그 모든 것을 포괄합니다. 이처럼 미술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합니다. 미술 감상이 단순히 작품의 주제나 표현을 파악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이유입니다.

추상적 표현은 신석기를 넘어 고대 이집트로 연결됩니다. 그 뜻은 고대 이집트에서도 추상이 추구하는 존재의 개념, 본질, 영원과 같은 성질이 사회적으로 중요했다는 말입니다. 이제 구상과 추상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원시시대를 지나 본격적으로 찬란한 문명이 만들어진 시대로 넘어가야 할 때입니다.

1장 원시미술

신석기 미술

구상과 추상이 반복되는 미술사 34p

인문이 중요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당시의 문화는 그 시대의 사람들의 보통의 삶을 나타내는 것이죠. 클래식 음악은 왜 길까요? 그리고 잔잔한 걸까요? 음악을 향유하던 사람은 귀족이었기에, 자신들의 고결함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식의 음악만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남들보다 시간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죠. 클래식에서 파생된 것이 오페라, 이후에 뮤지컬 등 대중음악으로 변모해갔습니다. 시대별 음악의 장르를 보더라도 어떤 삶이 대표되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죠.

시대 별 미술의 장르도 변모합니다. 그 안에서 특별한 지점들을 파악하는 것이 미술감상의 재미이겠죠. 그러기 위해 인문학적 배경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최첨단을 상징하던 성당 양식에 어째서 고딕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을까요? 고덕은 게르만족인 '고트족Goths'을 의미합니다.

중세의 모던한 건축에 고딕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16세기 이탈리아 비평가 바사리 Giorgio Vasari(1511~1574년)였습니다. 이탈리아의 관점 에서 고트족은 로마를 멸망시킨 야만족이자 문화가 뒤떨어진 후진국이었습니다. 그리스•로마의 인본주의적 문화를 계승한 르네상스인 바사리의 눈에 알프스 이북 지역의 뾰족뾰족한 건물은 영 이상하게만 보였습니다. 끝 간 데 없이 하늘로 치솟는 이 현대적(?) 건축물에서 바사리는 조화와 균형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똑같은 건물을 보고 반대로 생각했던 중세인과 르네상스인의 관점이 흥미롭습니다. 이처럼 세계관의 차이는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고, 같은 대상을 다르게 보게 합니다.

3장 중세미술

현대적 양식 고딕 111p

에펠탑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위와 같았습니다. 5층 높이 이하의 건물들 사이 철골 구조물이 높게 솟아있으니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해괴망측한 느낌이었을 겁니다. 혁명을 통해 왕을 끌어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전통의 구조를 깨버렸기에 인상주의가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미술은 그랬지만 건축은 그러지 못했던 프랑스. 미술보다 규모가 큰 인문학적 요소가 담긴 분야이기에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미술의 경우 관람자의 선택권이 있는 반면, 건축은 불특정 다수가 보기 때문이죠.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1425~1427년)는 체계적인 원근법이 적용된 최초의 그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림의 구성이나 구도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합니다. 뒤로 쑥 들어간 듯한 공간을 배경으로 각 인물들이 자신에게 걸맞은 최적의 장소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장 꼭대기에 붉은색, 파란색 옷을 입은 하느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들고 있습니다. 그 사이 성령을 상징하는 하얀 비둘기가 예수를 향해 날아듭니다.

예수의 왼쪽에는 성모가, 오른쪽에는 세례 요한이 있습니다. 그 밑으로는 그림을 의뢰한 후원자 부부가 각각 앉아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네요. 인물들은 각각 자신을 대표하는 자세를 한 채, 자로 잰 듯 일정한 간격을 맞추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양옆으로 접으면 공간과 인물이 거의 완벽하게 겹쳐질 듯 좌우대칭을 이루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공간과 사물에 입혀진 색깔도 조화롭기 그지없습니다. 서로 보색관계인 초록색과 붉은색, 그리고 이 관계의 효과를 조금 감쇄시켜주는 아이보리색이 배경과 건축물에 쓰였습니다. 화면은 경쾌하 면서도 동시에 차분한 느낌을 줍니다. 하느님은 강렬한 빨간색과 파란색 옷을 입었습니다. 흰 천으로 하의를 가린 예수를 지나 파란색의 성모, 그 아래 후원자의 붉은 옷, 그리고 이에 대칭을 이루어 성모 맞 은편에 세례 요한은 붉은 옷을 착용했습니다. 그 아래 후원자는 파란 옷을 입고 있네요. 인물들의 상반된 색채가 화면에 리듬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관람자는 아마도 가운데 아래에 서서 이 그림을 올려다볼 것입니다. 바로 화면의 소실점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중심으로 사물과 공간이 입체적으로 펼쳐지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겠지요. 이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 3D 영화인 셈입니다.

4장 르네상스와 그 이후

르네상스

인간의 시대 147-148p

르네상스는 절대주의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중요했죠. 종교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신성함이 느껴져야 했습니다. 평면작품이지만 원근감을 통해 종교에서 영감을 느낄 수 있는 강렬함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종교는 권위를 갖고 있었고, 교황의 말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미술작품은 그러한 도구의 개념이었죠. 대칭, 비율, 색상 등 모든 것이 딱 떨어져야 했습니다.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그리스미술과 르네상스에서 우연에 의한 순간 포착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순간이란 일시적이고 감각적인 것입니다. 반면에 필연이란 법칙적이고 논리적입니다. 인본주의에서 말하는 전인적 인간이란 감각과 감성에 휘둘리는 인간이 아닌, 냉철한 지성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인간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등장하는 미술이 곧 고전주의라 불리는 그리스미술과 르네상스입니다.

르네상스를 보면 중세보다 인간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지성, 합리성, 논리의 특징이 변화무쌍한 물질, 감각, 감성을 배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인간미'에는 감성적인 부분이 상당히 포함되니 이런 요소가 제거될수록 인간은 똑똑한지언정 차갑게 보입니다. 르네상스에서는 신의 자리에 인간이 들어왔습니다. 이때의 인간이란 우리들처럼 평범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결코 아닙니다. 진•선•미와 지•덕·체를 두루두루 겸비한 완전하고 모범적이며 이상적인 인간입니다.

이런 점에서 르네상스의 인본주의는 고대와 중세의 연장선에 놓이게 됩니다. 특수하고 개별적인 개인에게는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답안이 미리 제시되어 있습니다. 중세에는 신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했다면, 르네상스에서는 이상적인 인간을 목표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지금 내가 겪는 실존(경험, 감각)보다 본질(정답, 개념)이 중요합니다. 사물의 목적이 이미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고대, 중세, 르네상스는 목적론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그러니 르네상스는 중세도 아니고 근대도 아닌, 그 사이에 있는 근세입니다.

4장 르네상스와 그 이후

르네상스

합리성과 전인적 인간 160-161p

인문학적인 내용도 다루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분량은 물론 많지만, 천천히 읽는다면 괜찮습니다. 르네상스의 한계는 명확했습니다. 이후 매너리즘을 지나 인상주의 등 다양성을 나타내는 촉매제가 되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뿐, 당시 작품을 보면 종교를 다룬 작품만이 존재했습니다. 정형화되어있는 작품만이 있었던 것이죠. 그 점에 있어 미술사적으로 볼 때는 암흑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는 현재 우리의 시선으로 평가하는 것이죠. 인간은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벗어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죠. 르네상스 시대에 정형화된 종교 그림을 그리지 않은 화가가 있을까요? 있을 수는 있겠지만,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졌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모르는 것이겠죠.

 

 

 

 

 

 

 

새로운 종교인 프로테스탄트 (개신교)는 열심히 일해 모은 돈은 그 자체로 성실히 살았다는 증거로 보고 노동과 노동해서 발생하는 돈을 긍정했습니다. 종교개혁은 기존 교회를 비판하던 성직자와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추구하던 세속권력 양편에서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달랐지만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한쪽에서는 인간에 의해 타락한 신을 구할 수 있었고, 한쪽에서는 더는 교황청 눈치를 보지 않고 돈과 권력을 추구할 수 있었지요.

물론 이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종교개혁의 진원지인 독일지역에서는 30년전쟁(1618~1648년)이 일어나 구교와 신교가 극심히 대립했습니다. 30년전쟁은 종교전쟁이면서도 영토와 정치를 아우르는 국가 간 패권 다툼이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였지만 같은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를 견제하기 위해 프로테스탄트와 신교들이 많았던 네덜란드를 지원했습니다. 따라서 30년전쟁 은 종교전쟁을 넘어 근대 국가들의 패권전쟁입니다.

전쟁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맺고 신교가 승리하면서 끝이 납니다. 조약 이후 네덜란드는 스페인에서 독립했고, 영토와 권력을 잃은 스페인은 점점 쇠퇴했습니다. 독일을 지배하던, 신성하지도 않고 고대 로마제국과도 딱히 관련이 없는 신성로마제국은 허울뿐인 명예만 남게 되었습니다.

5장 근대미술

바로크

17세기와 과학혁명 257p

 

미술에는 시대가 담겨있다고 저자는 말했습니다. 시대를 알아두는 건 미술을 이해하는 데 큰 배경지식이 됩니다. 그래서일까 이런 내용도 함께 다룹니다. 개신교는 돈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은 좋은 것이며, 노동을 함으로 인간은 성실히 살고 있고 그 돈을 십일조와 헌금에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돈의 집중을 통해 권력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때문에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은 열심히 노동을 했고, 그 돈을 교회에 바치기 시작했죠. 이 점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참고하면 이해하기 쉬울 수 있습니다. 노동은 금욕의 수단으로 보았고 이는 종교적 믿음을 위한 신도들의 당연한 행위라고 이해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포스팅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https://jwny.tistory.com/398

 

[독후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종교와 노동의 연관성

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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