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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종교와 노동의 연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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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지은이 : 막스 베버

번역 : 박성수

출판사 : 문예출판사

출판일 : 1988-05-20

(개정판 있음)

노동은 오래 전부터 인정된 금욕적 수단이다.

2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윤리 /

금욕과 자본주의 정신

126p 중에서..

이 책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원리와 그 가치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 특성을 반영하여 노동이란 개념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를 말하고 있다. 노동, 근로의 개념은 자본주의에서 핵심적인 개념이다. 그래서일까 책 제목에 자본주의를 넣은 것인지 모르겠다.

 

서양 뿐 아니라 동양에서도 노동을 금욕적 수단이라고 보았다고 막스 베버는 주장했다. 성적 금욕은 수도승과 같은 종교적 근본 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닌, 정도가 낮은 신도로서 교리를 따르는 의미로 보았다. 노동은 신도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행위로 이해할 수도 있다.

수도승, 신부, 스님과 같이 종교적 신앙을 깊게 가져가는 사람이 아닌 경우, 교리에 충실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욕망을 절제하고 신앙심을 잘 지켜내려면 노동을 해야 한다. 일을 함으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잉여 에너지가 다른 곳을 향하지 않게 하는 거다.

왜냐하면 부부간의 성교도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계명에 따라 신의 영광을 더하기 위해 신이 뜻한 수단으로서만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의 교리에 따라 우리는 금욕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보았는데, 그에 대한 방법으로 노동이 탄생했고 자본주의가 갖춰졌다는 것이다. 노동을 통해 생겨난 부산물은 신에게 바쳐져야 한다는 거다. 노동은 신앙심을 위해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그 결과물 역시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십일조, 헌금을 하는 이유가 여기서 출발했다. 인간의 금욕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동이란 벌을 주고 그에 따라 생겨나는 것 역시 신의 소유가 된다.

어쩌면 사회주의가 여기서 출발했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의 과제는 오히려 이상의 서술을 통해 금욕적 합리주의가 사회정책적 윤리의 내용에 대해 갖는 중요성, 그리고 가정집회에서 국가에 이르는 사회 공동체의 조직과 기능에 대해 갖는 중요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2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윤리

-금욕과 자본주의 정신

146p 중에서..

 

금욕을 위한 노동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등을 논의하고 주장한다는 저자의 말을 살펴보면 자본주의라는 말은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살기 위해 우리는 노동을 한다. 돈은 생존의 목적이지 결코 욕구 통제가 아니다.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에는 남의 것을 빼앗으면 생존할 수 있었다. 강한 개체만 살아남았다. 그러나 장기 생존을 위해서는 그렇게 살아서는 답이 없었다. 내가 상대 것을 빼앗으면 상대는 나의 것을 더 많이 빼앗으려 달려든다. 결국은 생존위기를 자초하는 꼴이 된다.

돈이 등장한 것은 그래서다. 미래를 위해서. 서로를 건드리지 않는 대신 돈이라는 하나의 약속으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돈을 얻기 위해 우리는 노동을 한다. 그말인즉슨 생존욕구를 지켜내기 위해서다.

노동은 사람의 욕구를 절제시킨다.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지치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다.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기에 성욕을 절제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가 어니라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 욕구가 넘친다는 건 잉여 에너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다. 비가 내린 뒤에 무지개가 펼쳐지듯, 무료함이라는 건 안정이 찾아온 뒤에 등장한다. 그 무료함은 다양한 욕구들을 불러일으킨다. 적절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여러 형태로 분출된다.

성희롱, 성폭행, 인격모독 등 한 개체의 정체성을 망가뜨리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상대를 괴롭히는 이유는 무료하기 때문이다. 무료함과의 싸움에서 패배했기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총평

그의 저서가 발표 당시 파란을 일으켰을 지는 몰라도 요즘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는 부족한 부분이 존재한다. 당연하다. 시대는 계속해서 변하고 진리라는 것도 계속 바뀌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는 시사하는 것들이 꽤 많다. 읽기에는 까다롭다. 오래된 책이 가진 고질병이다. 견뎌내고 읽을 수 있다면 읽어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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