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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인간 실격 / 인간 사이에 인간으로 서있지 못하고 광대로 남아야만 했던 한 남자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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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인간 실격

지은이 : 다자이 오사무

옮긴이 : 김춘미

펴낸 곳 : 민음사

펴낸 일 : 2012년 04월 10일

(1쇄 2004년 05월 15일)

저는 학교에서 존경을 받을 뻔했습니다. 존경받는다는 개념 또한 저를 몹시 두렵게 했습니다. 거의 완벽하게 사람들을 속이다가 전지전능한 어떤 사람한테 간파당하여 산산조각이 나고 죽기보다 더한 창피를 당하게 되는 것이 '존경받는다' 는 상태에 대한 제 정의였습니다. 인간을 속여서 '존경받는다' 해도 누군가 한 사람은 알고 있다. 그리고 인간들도 그 사람한테서 듣고 차차 속은 것을 알아차리게되었을 때. 그때 인간들의 노여움이며 복수는 정말이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상상만 해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부잣집에 태어났다는 사실보다도 소위 '공부를 잘 해서' 온 학교의 존경을 받을 뻔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서 자주 한 달 두 달, 또는 일 년 가까이 병상에 누워 학교를 쉬곤 했습니다. 그래도 병이 낫자마자 인력거를 타고 학교에 가서 학기말 시험을 치면 우리 반 누구보다도 소위 '잘하게' 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건강이 좋을 때에도 저는 도통 공부를 하지 않았고, 학교에 가도 수업 시간에 만화 따위나 그리고 쉬는 시간에는 그것을 반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어서 웃겼습니다.

첫 번째 수기 23-24p

 

 

인간 실격이란 작품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서전과 같다. 자신의 삶을 약간의 각색을 통해 풀어놓았다. 오사무의 가정 형편은 유복했다. 어린 시절까지는. 그 점은 첫 번째 수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부도 꽤 잘했던 것도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유복한 집안에 공부까지 잘했으니 ‘엘리트’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을 혐오했던 걸로 보인다. 그런 이미지가 싫어서 공부를 소홀히 하고 아이들에게 우스꽝스러운 존재가 되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타향에 나온 셈입니다만 저한테는 그 타향 쪽이 제가 태어난 고향보다도 훨씬 마음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제 익살도 그때쯤에는 좀 더 확고하게 몸에 배서 남을 속이는 데에 예전만큼 고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가족과 타인, 고향과 타향 사이에는 연기하는 데 쉽고 어려움의 차이가 어떤 천재한테도, 예컨대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한테도 반드시 존재하지 않을까요? 배우가 제일 연기하기 어려운 곳은 고향의 극장이고, 더욱이 일가친척이 모두 늘어앉은 좁은 공간에서는 아무리 명배우라도 연기 같은 것은 할 수 없지 않을까요? 그래도 저는 연기해 냈습니다. 그것도 꽤 성공을 거뒀던 것입니다. 그만큼 산전수전 다 겪은 제가 타향에 나와서 만에 하나라도 잘못 연기하는 일이 없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두 번째 수기 30p

 

 

어린 시절부터 인간애란 것을 모르고 지냈던 주인공. 전후 혼란스러운 시대에 유복했던 자신의 삶과 그렇지 않았던 주변의 상황과는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택한 것이다. 광대역할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 오바 요조가 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선택지였다.

그런 그는 가까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가면을 썼다. 우스꽝스러운 행위가 인간 사이에 녹아들 수 있는 그만의 방법이었다. 고향에선 가면을 오래 쓰기 어려웠다. 언제고 자신의 모습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자기가 먼저 유인했다가도 내치고, 또 남이 있는 곳에서는 저를 경멸하고 함부로 대하다가도 아무도 없으면 꼭 끌어안고, 죽은 것처럼 깊이 잠들고. 여자란 잠자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닐까 등등 그 밖에도 여자에 대한 갖가지 관찰을 저는 일찌감치 어릴 때부터 해왔습니다만, 여자는 똑같은 인류 같으면서도 남자하고는 완전히 다른 생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또 이 불가해하고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생물들은 기묘하게도 저를 돌보아주고 싶어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한테 반할 거야’ 따위의 말이나 '좋아할 거야’ 라는 말은 제 경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고, 돌봄을 받는다고 하는 편이 실상을 설명하는 데 좀 더 적합할지 모르겠습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익살에 경계심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익살을 연기해도 남자들은 뭐니 뭐니 해도 언제까지나 깔깔거리지는 않았고, 저도 남자들한테는 너무 신명 나서 익살을 떨면 실패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그만두도록 조심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라는 것은 적당하다는 것이 뭔지 모르는 생물 같아서 언제까지나 저한테 익살 떨기를 요구했고, 저는 그 끝없는 앙코르에 응하느라 기진맥진해져 버리곤 했습니다. 정말이지 잘도 웃어들 댔습니다. 도대체가 여자들은 남자보다 쾌락에는 훨씬 더 탐욕스러운 듯합니다.

두 번째 수기 36p

 

 

자전적 경험이 두 번째 수기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다. 여자에 대한 경험과 그로 인해 생겨난 이성관을 알 수 있다.

재밌는 건 이 대목에서 남녀의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자의 장난은 끝이 명확하다. 또, 서로가 주고받는다. 에너지가 넘치는 장난을 치고는 지치면 그만 둔다.

여자는 다르다. 익살스러운 장난을 남자가 일방적으로 해야 한다. 에너지가 넘치는 장난이 아닌, 말장난이라던지 허허실실 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한 요조는 그 차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술, 담배, 창녀, 그런 것들이 인간에 대한 공포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상당히 괜찮은 수단이라는 사실을 저도 이윽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수단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제 소유물을 모두 팔아치워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지한테 창녀라는 것은 인간도 여성도 아닌 백치 혹은 미치광이처럼 느껴져서 그 품 안에서는 완전히 안심하고 푹 잘 수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서글플 만큼, 정말이지 티끌만큼도 욕심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서 동류로서의 친근감 같은 것을 느끼는지, 저는 언제나 창녀들로부터 거북살스럽지 않을 정도의 자연스러운 호감을 샀습니다. 아무런 다산도 없는 호의. 강요하지 않는 호의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에 대한 호의. 저는 백치 아니면 미치광이 같은 그 창녀들한테서 마리아의 후광을 실제로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인간에 대한 공포에서 도망쳐 조촐한 하룻 밤의 안식을 찾아 그야말로 지와 '동류'인 창녀들하고 어울리는 동안, 어느 틈인지 저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종의 역겨운 기운이 저에게서 풍기게 된 모양입니다. 그것은 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위 '부록' 이었습니다만 그 부록은 점차 선명하게 표면으로 떠올랐고, 저는 호리키한테서 그 사실을 지적당하고는 아연실색했고 기분이 상했 습니다. 속된 말로 한다면 저는 창녀로 여자 수행을 쌓았던 것이고, 거기다가 최근에는 여자 다루는 솜씨가 눈에 띄게 좋아졌던 것입니다. 여자 수행은 창녀한테서 쌓는 것이 제일 엄격하고 효과도 있다고 하던데, 이미 저한테는 '여자를 잘 다루는 도사' 냄새가 베어버려서 여자들이(창녀 뿐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 냄새를 맡고 접근하는, 그린 추잡하고도 불명예스러운 분위기가 몸에 배게 되었고 그쪽이 제가 창녀들에게서 얻은 정신적 휴양 따위보다도 훨씬 더 두드러지게 눈에 띄게 되었나 봅니다.

두 번째 수기 48p

 

 

술, 담배, 매춘. 단순 쾌락에 빠져있던 오바 요조.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위선과 계산적인 선행은 당최 이해할 수 없었기에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창녀와 있을 때 마음이 놓였다. 창녀는 많은 남자와 몸을 섞는 일을 한다.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무언가에 미쳐있지 않는 이상, 창녀로 존재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다. 주인공은 창녀에게서 그것을 느꼈던 것이다.

어쩌면 동질감을 느꼈을 수도 있고 그와 동시에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꼈다. “그 창녀들한테서 마리아의 후광을 실제로 본 적도 있습니다.” 위 단락에서 이 문장이 동질감을 넘어서는 감정을 느꼈던 거다.

아니, 그보다도 저를 마음속으로부터 믿어주는 이 어린 신부가 하는 말을 듣고 그 행동을 바라보는 것이 즐거워서, 나도 어쩌면 차차 인간다운 것이 되어서 비참하게 죽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달콤한 생각이 희미하게 가슴속을 훈훈하게 덥혀주기 시작하던 참에 호리키가 다시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세 번째 수기 106-107p

 

 

요시코를 통해, 점차 인간다워지는 감정을 순간 스치는 단락이다.

요시코는 18살의 순진한 사람이다. 요조가 술에 절어있었던 이유, 그 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모른다. 그저 술을 끊으라고 요조에게 말을 한다. 무심코 술을 끊겠다고 한 요조. 어김없이 다음 날 술을 마시고 요시코와 마주한다.

술 마셨다고 고백한 요조의 말을 가볍게 넘긴다. 어제 약속했는데 어길 리가 없다며 말이다. 요조는 얼굴이 붉다며 술을 마셨음을 다시 한번 밝히지만, 요시코는 쑥스러워서 얼굴이 붉어진 거 같다는 말로 넘긴다. 한없이 요조를 신뢰했다.

담배가게 아가씨와 결혼을 한 요조는 한동안 인간의 삶을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짧지만.

그렇지만 저는 그러고 나서 금방 그 수줍은 듯한 미소를 띈 젊은 의사의 안내를 받아 어떤 병동에 수용되었고, 철컥 하고 열쇠가 잠겼습니다. 정신 병원이었던 것입니다.

여자가 없는 곳으로 가겠다는, 디알을 먹었을 때 제가 했던 바보 같은 헛소리가 정말이지 기묘하게 실현된 셈입니다. 그 병동에는 남자 미치광이뿐이어서 간호사도 남자 였고 여자라곤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젠 저는 죄인은커녕 미치광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아니요. 저는 결코 미치지 않았습니다. 단 한순간도 미친 적은 없었습니다. 아아, 그렇지만 광인들은 대개 그렇게들 말한다고 합니다.

즉 이 병원에 들어온 자는 미친 자, 들어오지 않은 자는 정상이라는 얘기가 되는 것이지요.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세 번째 수기 131p

 

 

상인에게 덮쳐진 요시코. 순수함의 결정이 깨져버렸다. 그 충격에 요조는 정신이 무너지고 술에 빠져있다, 수면제 과다 투여로 자살 시도를 한다. 깨어난 요조는 술을 끊기 위해 처방받은 모르핀에 중독되어 폐인으로 살아간다.

아버지 지인인 넙치와 친구인 호리키가 정신병원에 그를 입원시킨다. 그리고 위 단락을 마지막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위선과 계산된 선행을 일삼는 인간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는 끝에 다다라서야 인간이 아닌 미치광이였던 걸 인정해버린다. 자신만이 멀쩡한 사람인 줄 알았고, 그들의 삶에 녹아들지 못해 창녀에게서 마음을 편히 고쳐 먹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는 “인간 실격”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읽다보면 일차적 쾌락에 해당하는 술, 담배, 매춘을 미화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전후 혼란스러운 시기에 한 사람이 느꼈던 복잡미묘한 신념과 사고방식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삶을 생각해보면 단순 쾌락의 수단이 “단순”이 아닌 “복잡”의 목적을 띄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고대 그리스, 프리네라는 창녀는 정치인을 모독한 이유로 재판장에 서게 되었다. 어떤 말로도 변호를 하지 못했다. 프리네는 걸치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아름다운 몸매를 갖고 있던 그녀에게서 어떠한 거짓도 없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당시 미(美)가 곧 선(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미뤄볼 때 요조에게 창녀는 그런 개념이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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