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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우물을 파는 사람 : 배고픔과 목마름의 끝없는 갈구 / 이어령 선생의 말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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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우물을 파는 사람

: 배고픔과 목마름의 끝없는 갈구

지은이 : 이어령

펴낸 곳 : 두란노

펴낸 날 : 2012-06-13

창조와 속임수는 피가 같은 쌍둥이다.

창조나 속임수나 그것은 다 같이

숨어서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리고 약간의 수줍음과 오만이 서로 미묘한 갈등을 이룬다는 점에 있어서도 그것은 아주 유사하다.

다만 창조는, 예술과 같은 그런 창조는

신에 대한 속임수이지만,

우리가 단순히 '속임수'라고 하는 것은

노름판에서 도박사들이 화투장을 속이는 것처럼

다만 인간의 눈을 속이는 것에 불과하다.

29p 01 나는 창조의 힘을 믿는다

 

 

창조한다는 것은 신이 되려고 하는 인간의 욕심이다. 인간은 신이 창조해냈다. 그런 인간이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신이 되어보겠다는 것과 같다. 이성을 갖추면서 생겨난 인간의 오만이다. 그래서 인간은 예술에 눈을 뜬 거다. 시를 쓰고, 곡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일.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에 빠지게 된 것은 인간이 무엇이라도 되어보고자 했던 욕망이었다.

속이는 일은 치밀해야 한다. 창조도 마찬가지다. 치밀하게 계획되어야 한다. 예술가들 중 반사회적 성격을 띄고 있는 이들을 보면 얼추 이해가 된다. 반쯤 미쳐있어야 하는 것이다. 시를 쓰기 위해 수천 편의 낯뜨거운 글들을 지워야 하고, 곡을 쓰기 위해 음정을 여러번 고치고, 노래를 부르기 위해 한 소절에서의 한 단어를 몇 번이고 연습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

인간의 한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탄생과 사망이다.

생의 시초와 그 생의 마지막보다

대체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또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의 탄생을 기억할 수 없고

우리들 자신의 죽음을 말할 수가 없다.

65p 05 인간의 온갖 고생은 강보에서 수의까지다.

 

 

 

탄생과 죽음은 오로지 타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타인으로부터 확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은 타인과의 연결되어 있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대화를 하거나 아니면 사람들 속에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세로토닌이 분비되며 뇌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인간은 그래서 타인을 너무 미워해서도 안 된다. 그들 없이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게 되기 때문에, 서로를 아껴줄 필요가 있다.

골방 속의 연기하는 아무도 보아주는 사람이 없다.

연기란 남이 보아줄 때 정말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자기를 다른 사람인 것처럼 꾸며 보여 준다는 것,

그것은 가면을 쓰고

자기를 속이는 일처럼 흥미가 있다.

사람들은 '남'이 되고 싶어한다.

자기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70p 05 인간의 온갖 고생은 강보에서 수의까지다.

 

 

이 대목은 이어령 선생의 다른 저서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때”*에서 등장한다. 따로 놓고 봐도 좋다. 연기가 완벽한 사람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대개 아무 생각이 안 든다. 자연스러워서 그렇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를 즐기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싶어서다.

잘생기고 예쁜 배우를 보고싶어서거나, 연기를 보고싶어서다. 타인과 연결되어있다고 느낄 때 사람은 행복을 느낀다고 앞서 말했듯,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까지 인간을 보고 싶은 것이다.

다크나이트 시리즈에서 조커를 보며 혐오하기보다는 약간의 통쾌함을 느끼는 건 왜일까. 배트맨이 가끔은 치사해보이기도 하며, 조커의 영업능력에 감탄스럽기까지도 한다. 일정부분 조커에게 동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그의 의견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걸 알기에, 조커의 행동에 불쾌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늘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때문에 연예인을 동경하거나, 신을 믿는 것이다. 나로 한번 살아봤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살아야하기에 그렇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 문학사상 (2009) / 59p 악기와 사상가

인생은 두 개의 리듬 속에서 반복한다.

어둠과 대낮의 리듬 속에서 시간이 흘러가듯이.

84p 06 허무를 아는 자만이 진정한 모험을 한다.

 

이 대목은 그의 저서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의 “꽃의 빛깔은 향기로워도” *라는 산문에서 등장한다.

일본의 시를 다 외운 순서대로 집을 보내주겠다는 선생의 말에 자신있게 외려던 소년은 불쑥 일본어이지만 분명 뜻이 있을 거라 물어본다.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선생님은 재차 물어보는 아이의 말에 “꽃의 빛깔은 향기로워도 시들어버리는 것”이라며 설명해주었다. 아름다운 꽃도 시드는 것처럼 사람도 때가 되면 떠난다고.

어린 소년은 그 이야기를 듣고 소중한 엄마가 언젠가 떠날 거란 생각에 복잡한 마음이 들어 시를 외지 못하고 교실에 남는다.

위 두 문장은 이 이야기 마지막에 주석으로 달린다. 어둠과 낮의 반복 속에서 삶은 죽음으로 수렴한다. 그걸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 문학사상 (2009) 147p 꽃의 빛깔은 향기로워도

 

넘버원이 되지 말고 온리원only one이 되라.

넘버원이 되기 위해서는

수천, 수만의 사람이 피를 흘려야 되지만 온리원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생명과 존재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남이 못하는 자기 일을 해나가면 된다.

145p 14 무릎이 성한 사람은 값어치가 없다.

 

온리원이 되라고 얘기했던 이어령 선생. 나는 내가 유일한데 남들과 같은 걸 하려고 하니까 자꾸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말이다. “짧은 이야기 긴 생각”이란 다른 저서에서도 온리원의 이야기가 있다. 남들이 못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다수의 경쟁에서 승리할 생각하는 건 확률이 낮다. 낮은 확률에 삶을 낭비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는 건 둘째로 미뤄두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잘하는 것을 갈고 닦는 것이 그 확률을 높여준다.

같은 방향으로 뛰면

1등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동서남북으로 뛰면

네 사람이 1등을 하고,

360도 방향으로 각자 달리면 360명이

모두 1등을 하지요.

베스트 원(Best One)이 없으면

베스트 투(Best Two)가 대신할 수 있지만,

온리 원Only One)이 없어지면

아무도 그를 대신할 수 없지요.

왜 꼭 그 학교라야 하나요.

왜 꼭 그 직업이라야 하나요.

판사, 검사가 아니라도

의사, 박사가 아니라도

길은 많아요.

틀림없이 있을 거예요.

남들과 다른 나만의 재능.

나처럼 생긴 지문은

70억 인구 가운데 오직 나 하나뿐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끼리 손을 잡으면

강강술래처럼 둥근 원을 만들어

춤을 출 수가 있어요.

짧은 이야기 긴 생각 / 시공미디어 / 214-215p 3. 작은 생각 큰 마음

어머니의 몸과 아버지의 이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21세기 문명 상황이다.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 사회,

아버지의 권능이 무력해진 사회에서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힘을 느낄 수 있겠는가.

지상에 있는 아버지와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같은 이미지를 나누고 있다.

아버지가 아버지 구실을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죄를 짓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154p 15 단 1초라도 더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다.

 

그의 다른 저서 “지성에서 영성으로” 에서 발췌 및 약간의 수정을 거친 대목이다. 종교는 문명사회의 뿌리다. 문명사회는 누가 일으켰는가. 남자다. 때문에 기독교에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했던 이유는 남자를 대입하여 문명사회에서의 존재가치를 재정립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없는 미혼모 가정이 증가하는 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남자를 무시하는 건 문명사회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서로를 이해하려 하고 소통해야 한다.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 사회. 아버지의 권능이 무력해진 사회에서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힘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지상에 있는 아버지와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같은 이미지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버지 구실을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죄를 짓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 홍성사 (2010) / 제3부 한국에서 행하다 34 아버지 없는 사회 253p

 

이 책은 이어령 선생의 글귀들을 모은 책이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젊음의 탄생” 등 여러 저서에서 했던 말 중 책 제목과 어울리는 말들을 모아 엮었다. 부담스럽지 않게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그의 다른 저서 80초 생각나누기 시리즈보다는 조금 심화된 느낌의 말모음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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