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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이어령의 가위바위보 문명론 / 지혜를 갖춰야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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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이어령의 가위바위보 문명론

: 한글+일어 특별 합본

지은이 : 이어령

옮긴이 : 허숙

펴낸 곳 : 마로니에북스

펴낸 날 : 2015년 08월 17일

반드시라고 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한자의 명명법은 서로 다른 양면을 두 글자로 결합시키고 있다. 알파벳 문화권 사람들처럼 나의 문을 entrance ‘입구'와 'EXIT출구'로 나누어 다른 물건처럼 부르지 않는다. 간단하게 '출입구'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세계'의 '세'는 30년이라는 세대를 나타내는 시간의 의미이고. ‘계'는 경계를 나타내는 공간의 개념이다. 시간과 공간이 두 글자 속에 녹아들어 세계라는 하나의 어휘가 된다. 공간의 의미만을 가진 영어의 '월드' 와는 다른 것이다.

스페이스와 우주의 차이도 마찬가지이다. 한자의 '우'는 끝없는 공간을 나타내고, '주'는 무한한 시간을 의미한다. '우주'는 무한한 공간과 시간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공간만을 의미하는 영어의 스페이스와는 다른 말이다.

1장 왜 지금 가위바위보인가

아시아의 지혜의 나무 40-41p

 

승강기도 양면을 표현하는 단어다. 동아시아의 문화는 순환을 담고 있다. 자연을 마주하는 태도로도 알 수 있다. 황진이가 쓴 시조를 보면 된다. 내 것처럼 표현하지 않았다.

우리는 양면의 말을 합쳐서 이야기 한다. 우리말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미닫이, 여닫이, 나들이, 오가다, 들어오다 등 여러가지 표현들이 있다. 모순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겐 오묘한 표현이 필요했던 것일지 모른다.

엘리베이터와 승강기의 차이를 단순한 형태와 승부라는 행위로 보여주는 것이 동전 던지기와 가위바위보이다. 아시아의 아이들은 선후의 순서를 정하거나 무언가 의사를 결정할 때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낸다.

그에 비해 서양의 아이들은 보통 동전 던지기를 한다. 손으로 가위바위보를 할 경우에도 동전 던지기와 똑같아서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상반되는 보와 주먹을 내는 경우가 많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듯이 역시 서양인에게 익숙한 것은 동전 던지기이다.

동전 던지기는 말 그대로 동전과 같은 사물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인간을 호모 하빌리스라고 부르듯, 놀이든 일이든 모든 인간의 행위에는 도구가 사용된다.

하지만 가위바위보는 어떠한 도구도 사용하지 않는다. 손만 있으면 된다. 가위바위보는 인간이 네발로 기어 다니던 생물에서 두 발로 직립했을 때의 손, 그 자체의 신체성을 살려 움직인다.

그러나 동전 던지기는 사물을 사용하므로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손을 사용해 승부를 내는 가위바위보는 말 그대로 상대가 없으면 할 수 없다. 따라서 동전을 던질 때는 떨어져 굴러가는 사물의 움직임에 주목하지만. 가위바위보를 할 때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1장 왜 지금 가위바위보인가

동양의 가위바위보와 서양의 동전 던지기

44-45p 도구와 신체성

 

동전 던지기는 동전이 없으면 안 된다. 하비 덴트가 레이첼의 죽음으로 인해 폭주할 때, 만약 동전을 어딘가에 떨어뜨렸다면? 희생자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동전이란 매개체에 자신의 분노를 담아냈다. 그러고서는 동전의 뒷면이 나오면 목숨을 잃는 것이라며 협박한다. 죽이고 싶었다면 그냥 죽이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동전에다가 본인의 죄책감을 덜어두려 했다.

이런 동전 던지기의 특성과 반대로 가위바위보는 신체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상대가 없으면 게임은 성립되지 않는다. 도구가 아닌 신체가 필요하다. 가위바위보를 표현할 손가락이 필요한 것이다. 이 게임은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손 두 개를 피고서 게임을 하면 내가 이긴 것이면서 진 게 된다. 순환이 아닌 극단적 모순에 빠져버린다. 동전 던지기는 승리와 패배의 심판권한이 동전에게 있다. 때문에 혼자서도 가능한 놀이다.

가위바위보는 승부의 결과를 나와 상대의 관계에서 결정된다. 관계가 없다면 알 수 없는 놀이다. 관계 속에 살아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동아시아의 특징을 가위바위보가 명확히 보여준다.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집단을 이루게 되었다. 생면부지인 사람보다 가족을 지척에 두는 것이 낫기에 집성촌이 생겨났다. 이렇듯 우리는 관계에 포인트를 두고 살아왔고 눈치를 보는 능력이 생기게 되었다. 동아시아 국가의 평균 아이큐가 서양 국가보다 높은 이유는 벼농사로 생겨난 인간의 눈치를 보는 능력 때문이다.

 

가위바위보의 주먹은 상대가 무엇을 내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손을 쥔 주먹이든 펼친 보이든, 실체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 가위바위보 구조에서 주먹은 상대가 가위를 내면 이기게 되고 보를 내면 지게 된다. 실체가 아닌 관계의 구조에 의해 그 의미가 진정되는 것이다. 바위는 가위를 이기고, 가위는 보를 이기고, 보는 다시 바위를 이긴다. 금, 은, 동메달과 같은 수직적 • 계층적 구조와는 다른 원형의 순환구조를 이룬다. 절대 승자도 절대 패자도 없다. ‘삼자견제'의 역학관계에서는 절대적인 강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1장 왜 지금 가위바위보인가

동양의 가위바위보와 서양의 동전 던지기

실체와 관계

46p

 

나는 가위를 낼 지언정 상대는 그 찰나의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할 지 모른다. 그건 전적으로 상대의 마음이다. 상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의 선택이 끝났다면 상대방의 입장을 기다려야 한다. 양측이 서로를 생각하며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가위는 보자기를 이기지만 주먹을 이길 수 없고, 주먹은 가위를 이기지만 보자기를 이길 수 없다. 먹고 먹히는 관계다. 사슬 구조다. 마치 입법, 사법, 행정을 나눈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견제한다.

가위바위보의 공간에서는 '자르다' '감싸다’ '치다’라는 세 가지의 다른 역학관계에 의해 승부가 순환하고 있다. 분별하여 '자르는 힘'인 지혜, 부드럽게 감싸는 힘'인 덕, 그리고 적극적으로 공격해 가는 '치는 힘' 체력, 이와 같은 '지 • 덕 • 체'가 다양한 변화를 탄생 시킨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4장 동전 던지기형 문명과 가위바위보형 문명 148p

 

 

이어령 선생은 일본을 주먹으로 표현했고, 중국을 보자기, 한국을 가위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 관계는 모두 무너진 듯하다. 황하 문명을 시작으로 중국은 동아시아에 문화를 전파한 포용의 보자기였지만, 이제는 주먹을 쥐려 한다.

우리나라는 가위가 아닌 보자기의 입장이 되는 듯하다. 일본의 강제징용과 위안부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냥 받아주자”는 식의 무조건 적인 수용을 택했다. 우리는 보자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그런 능력이 되지 않는다.

지난 날 우리를 중국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지혜롭게 잘 잘라냈다. 우리는 잘라내야 한다.

중국은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손을 가지고 표현한 단어들을 확인할 수 있다. 공을 잘 막는 골키퍼를 보고 우리는 거미손이라고 표현한다. 손재주가 좋은 사람의 손을 보며 “금손”이라 말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똥손”이라고 표현한다.

반응이란 뜻의 “手応え(데고타에)”는 직역하면 손에 오는 대답이라는 뜻이다. 손을 통해서 의미를 파악하는 일본인의 특성이다. 힘겹다는 뜻의 “手ごわい(데고와이)” 도 마찬가지다. 손과 뻣뻣하다라는 동사가 결합되어 “벅차다”, “힘겹다”, “만만치 않다” 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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