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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우리문화박물지 : 이어령의 이미지 + 생각 / 우리 문화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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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우리문화박물지

: 이어령의 이미지 + 생각

지은이 : 이어령

펴낸 곳 : 디자인하우스

펴낸 날 : 2007-07-05

인간이 만든 최초의 도구는 곤봉이라고들 한다. 그것은 인간의 주먹을 연장하고 확대해 놓은 것이다. 사람은 어떤 때 주먹을 쥐는가. 사랑할 때 인가, 밭을 매고 사람과 인사하고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힐 때인가.

아니다. 사랑하고 쉴 때는 손을 편다. 인간은 무엇인가 부수고 치고 때릴 때에만 주먹을 쥔다. 그래서 적 앞에 서면 우리의 갸름한 팔은 곤봉의 손잡이가 되고 주먹은 불룩하고 뭉툭한 곤봉의 머리가 된다.

인간이 맨처음 만든 도구의 원형이 이렇게 주먹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온갓 도구와 문명이라는 말 속에 감춰진 폭력과 전쟁의 음산한 반사신경을 읽을 수가 있다.

그러나 한국인의 곤봉은 빨래방망이나 다듬잇방망이로 변형되어 갔다.

남성들의 공격적인 곤봉이 한국여인들의 손에 들려지면 맑은 시냇가 빨래터의 방망이질 소리나 한밤중의 규방에서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로 바뀌는 것이다.

때묻은 옷을 받고 다듬는 그 재생산의 노동은 방망이로 시작하여 방망이로 끝난다.

48p 악기가 된 평화로운 곤봉 다듬이

 

곤봉은 무기다. 경찰의 진압봉으로 사용되곤 했다. 과거 우리는 빨래 문화의 소중한 도구로 사용했다. 묵은 때가 잘 빠지게, 주름이 잘 펴지게 말이다. 손쥐는 건 폭력을 의미한다. 무언가를 쥐거나 주먹을 쥔다는 건 부수거나 파괴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곤봉을 쥐는 일이 깨끗한 옷을 입고자 한 의도가 되어 곧게 펴진 옷을 몸에 걸친다. 폭력의 의미가 전혀 없다.

서양에서는 곤봉을 리듬체조라는 종목에 넣으면서 평화로 바꾸었다. 우리는 옛부터 곤봉을 그렇게 사용해왔다.

 

서양에는 "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본다"는 말이 있다. 문을 닫으면 한 치의 틈도 없이 꼭 들어맞기 때문에 그런 말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대충 대충 짜서 달아놓은 한국 문은 아무리 꼭 닫아도 으레 틈 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열쇠구멍이 아니라 "문틈으로 들여다본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같은 창호지로 바른 여단이 문인데도 일본 역시 우리와는 다르다. 모든 문은 한 치의 틈새도 없이 꼭 들어맞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일본 문은 여러모로 한국 것과 비슷하게 생겼으면 서도 문풍지라는 것이 없다.

그렇다. 문풍지는 한국 특유의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아니면 문풍지 소리를 들으며 깊고 깊은 겨울밤을 보내는 그 정취가 무엇인지를 모를 것이다. 한 마디로 문풍지는 치수의 부정확성에서 생겨난 산물이다. 말하자면 문풍지 문화는 무엇이든 재고 따지고 계산하는 자의 문화와 양극을 이루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문풍지만이 아니다. 암수로 된 한국의 돌쩌귀는 서양이나 일본의 경첩과는 달리 망치로 두드려서 얼마든지 그 사이를 벌렸다 조였다 할 수 있 게 되어 있다. 그 융통성 때문에 미리 문짝을 꼭 맞추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87-88p 문풍지 문화 문

 

 

문풍지를 붙이는 건 우리만의 문화였다. 이제 생활양식이 바뀌며 그 문화가 잊혀져가고 있지만. 문풍지는 창살 위에 붙여 바람을 막는다. 문풍지를 떼고 새로 붙이고는 했는데, 문풍지를 뚫어 쳐다보기도 해서 겨울이 다가오기 전 해져버린 창호지를 새로 교체했다.

문풍지를 붙였던 건 사계절 중 여름을 잘 나기 위함이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양쪽으로 난 창문과 문 사이는 바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더운 여름을 나야 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열어둘 수는 없었다. 때문에 바람이 잘 지나갈 수 있게 문풍지를 덧댄 것이다.

 

 

 

한국 민중만큼 미륵불과 가까이 지내고 그 마음을 함께하며 살아온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불상 가운데서도 특이한 자세를 하고 있는 미륵 반가좌상이나 사유반가상 같은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부처님들은 가부좌하여 열반의 세계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성불하지 못한 보살이나 사천왕들은 모두 서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앉아 있는 것은 완성이요, 서 있는 것은 미완성인 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미륵은 서 있는 보살도 아니요, 앉아 있는 부처도 아니다.

반은 서 있으면서도 반은 앉아 있는 반가좌상, 부처이자 보살인 미래불의 모습은 앉아 있는 상태와 서 있는 상태의 양의성을 갖는다. 이것이 부정적인 측면으로 나타난 것이 한국의 엉거주춤의 문화이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면으로 발현된 것이 미륵신앙과도 같은 혹은 반가좌사유불상의 그 아름다운 조자과 같은 예술품이다.

한국의 민중들은 이미 완성된 것보다 장차 부처가 되는 미래불 속에서 그들의 아픔과 그 아픔에서 벗어나는 희망을 보았던 것이다.

97p 50억 년의 미소, 미륵

 

 

반가 사유상을 보면 가부좌를 한 쪽 다리만 틀었다. 우리 문화가 고스란히 담아있다. 이는 대륙과 섬나라 사이에서 지켜야할 우리의 태도이기도 했다. 너무 닫지도 그렇다고 활짝 열어두지도 못했던 반도의 문화란 그런 것이다.

개인주의를 지향하기에도, 민족주의를 제창하기에도 어딘가 한 켠으로는 불편했던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늘 당하고만 살았다. 그리고선 하나로 뭉쳤다. 몽고항쟁으로부터 탄생한 팔만대장경, 조선 중기 일본의 두 차례 침략으로 인한 의병운동. 동학농민운동과 3•1운동, 그리고 6.25 전쟁까지.

어느 편에서도 설 수 없었고, 서서도 안됐던 한국인의 슬픔이다. 그 슬픔 속에서도 미륵의 표정은 밝았다. 엉겁의 세월 속에서도 웃음을 가진 불상에게서 우리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일상적 삶에서 벗어나 축제의 마당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물구나무서야 한다. 걸어다니는 일상의 보행은 춤으로 변하고, 늘 먹고 마시던 밥과 물은 떡과 향그러운 술로 변한다. 그리고 산문적인 평탄한 말들은 운율과 가락이 붙은 시와 노래가 된다. 물론 땀과 때로 얼룩진 옷도 잔칫날에는 울긋불긋한 색동 옷과 금박을 찍은 진솔옷이 된다. 이렇게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달라지고 새로워지는 것을 한국말로는 탈바꿈이라고 한다. 그렇다. 탈을 잊어버릴 뻔했다. 일에서 놀이로, 일상의 공간에서 잔치의 공간으로 그 삶의 방식이 역전될 때 사람들의 얼굴은 탈이 되는 것이다.

탈을 쓴 얼굴은 이미 나 자신의 얼굴이 아니다. 또 하나의 낯선 얼굴, 옴종이거나 미얄할미이다. 그러고 보면 놀이의 마당, 잔치의 판에서 가장 극적인 탈바꿈을 하는 것은 바로 말 그대로 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223-224p 삶의 볼록거울, 탈

 

 

탈은 춤판에 들어가겠다는 일종의 드레스 코드다. 어느 파티에 가더라도 정해진 드레스코드에 맞춰 파티장을 찾지 않는가. 갖춰진 차림은 걸음부터 바꿔놓는다. 또 태도도 달라진다. 탈은 그런 것이다. 탈을 쓰면 변칙적인 발걸음이 되고,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하며 평소와 다른 말투가 된다.

탈바꿈이란 말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평소의 나와 전혀 다른 모습이 될 때 종종 사용되는 표현이다. 직장에서 쓰고 있는 탈과 학교에서 쓰고 있는 탈은 엄연히 다르다. 하회탈일 수도, 각시탈일 수도.

이 책은 우리 문화가 담긴 물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물건 마다 한 페이지 정도 많아야 두 페이지 정도의 분량이 담겨있어 읽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의 다른 저서 80초 생각나누기와 같이 편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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