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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짧은 이야기, 긴 생각 / 산문을 보며 생각은 무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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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짧은 이야기, 긴 생각

: 이어령 80초 생각 나누기

지은이 : 이어령

펴낸 곳 : 시공미디어

펴낸 날 : 2014년 09월 15일

04 국토와 국어에서 산다

금강산 산골 마을에 의좋은 남매

단 둘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누이가 병이 나자

동생은 약초를 캐려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밤이 되어도 동생이 돌아오지 않자

누이는 아픈 몸을 이끌고 마중을 나갔습니다.

추운 겨울 밤 초롱불을 밝히며 애타게 기다리던 누이는

끝내 숨지고 맙니다.

봄이 되자 그 자리에 풀이 나고

초롱을 닮은 작은 꽃이 피어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금강산 언저리에서 자생하는

희귀종 초롱꽃 전설입니다.

세계로 알려진 이 금강 초롱꽃의 학명은

하나부사야 아시아티카 나카이

(Hanabusaya asiatica Nakai) 라고 합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조선이나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은 물론이고

금강산이나 초롱이라는 말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대신 엉뚱하게도 하나부사(花房)라는

구한말의 초대 일본 공사와

그의 제안으로 조선 식물을 조사해 등록한

식물학자 나카이(中井)의 이름이 학명으로 등록된 것입니다.

초롱꽃뿐이겠습니까.

한국을 대표하는 인삼은 진생(ginseng)이라 부르고

옷칠은 아예 재팬(japan)이라고 부릅니다.

매화는 재패니스 애플리컷(iapanese apricot flower)이고

십장생의 단정학은 재패니스 크래인 (japanese crain)이라고 합니다.

은행도 중국이나 한국이 아닌

일본식 한자 발음으로 징코(gingko) 라고 부릅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만이 아닙니다.

나라의 힘은 말의 힘으로도 나타납니다.

나라는 흙으로 된 국토와 언어로 된 국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국토를 지키는 것이 군인만이 아니듯이

국어를 지키는 것은 시인만이 아닙니다.

김치가 기무치로 불리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되어야 합니다.

28-30p 1 느껴야 움직인다

 

 

 

이 산문의 내용은 그의 이후 저서인 “거시기 머시기”에서도 등장한다. 말의 힘, 글의 힘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나라의 힘이 사라지니 말의 힘도 사라지며 생겨난 일화다. 초롱꽃이 한 일본인의 이름이 되었다. 동해가 일본해로 전 세계에 퍼져있으니, 말 다했다.

떵떵거리며 산다는 건, 내 할 말 하고 산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난 날 그러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다. 일제 아래에서, 북한이 뒤집어 놓은 이후, 또 미국이 주둔하면서. 근대화 이후부터 우리는 우리 말을 떵떵거리며 내뱉지 못했던 것이다. 한류가 다시 회자되면서 그나마 옹알이 수준으로 입을 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애교수준이다.

이젠 비빔밥까지 자기네가 원조라며 개거품 무는 중국을 보면, 우리의 입장이 어디에 서있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슬픈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진국이 아니다.

여타의 선진국은 남의 것을 빼앗고 다니며 그걸로 박물관을 만들어 전세계 방문객에게 돈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한참 후진국이다. 제것하나 지키지 못하고 선진국에 납부한 수많은 우리 문화재를 보면 후진국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씁쓸한 현실이다.

아래는 “거시기 머시기”의 일부 내용이다.

더욱더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초롱꽃이에요. 초롱꽃은 강원도에서만 피는 꽃인데, 그 전설이 아주 슬퍼요. 병 든 누이를 위해서 동생이 추운 겨울에 산을 올라갑니다. 약초를 구하러 간 동생이 밤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요. 눈구덩이에 빠진 거예요. 그러니까 병약한 누이가 동생이 이제 오나, 저제 오나 초롱불을 들고 기다리다 얼어 죽었다는 거예요. 그 초롱불이 꽃으로 피어났다는 이야기가 초롱꽃 전설이에요.

이건 금강산 지역에만 있는 꽃이에요. 그런데 1911년 나카이 다케노신이라는 사람이 학명을 등록한 거예요. 조선 식민 문화를 제한했던 그 당시 하나부사 일본 공사가 학명을 연구해봐라 하니까, 이름을 Hanabusaya asiatica Nakai 로 등록해버렸어요. 발견한 자기 이름과 일본 공사의 이름을 따고 가운데에 생성지인 'Korea' 대신 'asiatica'를 넣어서 'Hanabusaya asiatica Nakal'로 등록했어요. 금강산에서만 나는 슬프고 아름다운 전설의 초롱꽃이 세계로 나가면 ‘Hanabusaya asiatica Nakai'가 되는 거예요. 왜? 우리는 국제 정세에 어두웠기 때문이에요.

우리 식물을 우리 전설과 함께 세계에 알리지 못했어요. 돌 담에 무심코 피는 초롱꽃이 세계에서는 하나부사야 아시아 티가 나카이로 불리는 이런 아이러니는, 특히 시를 쓰는 사람 에게는 곤란하다는 이야기예요. 시인들이 초롱꽃 시를 쓰면, '하나부사야 아시아티카 나카이'가 되는 거예요. 이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이 글로벌한 시대에? 그러니 여러분은 제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 자기 이미지를 스스로 버리면 안 된다는 거예요.

거시기 머시기/열림원/ 216-217p

6 한국말의 힘 : 토씨 하나만 고쳐도 달라지는 세상, 푸른색과 초록색의 차이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 글쓰기교실 초청 강연(2014년 5월)

 

 

23 사랑한다는 것

세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검색해 보면

사랑이라는 말이

3,271번 나온다고 합니다.

사랑할 때

영미 사람들은

"I love you.”라고 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Je t’aime."라고 하고

독일 사람들은

“ich liebe dich.”라고 하고

중국 사람들은

"我愛你”라고 하는데

그것은 모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여간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낼 때에도

‘나’, ‘너’라는 말 다 빼고

그냥 "사랑해."라고 하지요.

사랑은 단둘이 있을 때 하는 말인데,

말하는 사람이 나이고 듣는 사람이 너인데,

"I love vou."

왜 굳이 'I'라고 말하고 왜 꼭 ‘You'라고 해야 합니까?

사랑은

너와 내가 하나 되는 것.

사랑에 '너가 있으면 이미 사랑이 아닌 것.

사랑에 나가 있으면 이미 사랑이 아닌 것.

하트 모양으로

두 손이 하나가 되는 것.

왼손, 오른손이 하나가 되는 것.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이란 말도

거부합니다.

느끼고

숨쉬고

웃음 짓는 것,

그냥 보면 다 아는 것,

만지면 잡히는 것,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83-85p 1. 느껴야 움직인다.

 

 

 

사랑한다는 건 무엇일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페닐에틸아민, 옥시토신, 세로토닌의 결과물일까? 그것도 맞다. 하지만, “사랑해”란 말은 “너를 보니 노르에피네프린이 분비되면서 나의 두뇌가 쾌락을 느끼고 있어”로 치환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테마 첫 번째는 “느껴야 움직인다.”이다. 감동(感動)을 우리말로 직역한 것이다.

페닐에틸아민이 분비되면 우리는 압니다. 사랑하고 있다는 걸요. 자연스레 손을 잡는 것도, 걷다보니 자연스레 발맞춰지는 것도,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지만 두 눈은 옆을 향하고 있는 것도, 모두 호르몬에 따른 우리의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사랑해”라고 말하지 않아도 이미 우린 알고 있어요.

“사랑해”라는 말은 무거워야 합니다. 호르몬이 분비될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 사랑이란 감정은 소중히 다룰 수 없게 되죠. 인간 마음이 그래요. 비싸고 몇 족 없는 신발을 밀봉해서 보관해놓습니다. 너무 소중해서 변색이 될까봐, 닳을까봐 신지도 않아요. 반면에 저렴한 신발은 더러워지건 살짝 찢어지 건 크게 상관하지 않아요. 자주 신어서 찢어지고 변색되는 것이니 당연히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내뱉어서 소홀해지면 안 됩니다. 그때가 되면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사람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될 지 몰라요. 모두를 사랑할 수 없는게 사람입니다. 특히 에로틱한 사랑은 한계치가 분명 존재합니다. 육체가 더해져있기에 시간의 영향을 크게 받죠.

육체 관계 시 호르몬 분비가 극에 달하죠. 그럴 때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자극적입니다. 자극이 많을 수록 끝에 가까워질 때 즈음이 되면 무뎌지게 됩니다. 다 대가를 치루게 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눈 마주치면 서로가 느낌으로 아는데 말이죠. 심지어 눈빛에서 이별을 말하려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나요? 말해야만 아는게 사랑이라면 말이죠.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53 아름다움의 힘

이라크 북쪽 샤니다르(Shanidar) 동굴에서

수만 년 전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의 무덤이 발굴되었습니다.

그 옛날 원숭이와 다름없었던 그들이

죽은 자를 위해 무덤을 썼던 것이지요.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은

그 무덤 속에서 꽃가루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 근처에서는 피지 않는 꽃

아주 먼 곳에 가야만 딸 수 있는 그런 꽃이라 했습니다.

대체 어느 짐승이, 어느 원숭이가

죽은 자의 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아름다운 꽃을 뿌릴 줄 알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인간과 원숭이의 차이입니다.

꽃을 아는 원숭이가

슬픔과 기쁨을 꽃으로 노래할 줄 아는 원숭이가

인간이 된 것이지요.

황홀한 눈으로 꽃을 바라보았을 때

그 향기로 숨을 쉬었을 때

비로소 그 짐승의 가슴에는

인간의 피가 흘렀던 것입니다.

꽃의 아름다움이

발톱이나 이빨보다

더 강한 힘을 주었습니다.

177-178p 3 작은 생각 큰 마음

 

 

꽃무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볼 수 없는 꽃이 무덤 안에서 말이다. “추모”의 개념을 알았던 것이다. 그말인즉슨 그들만의 문화가 있었다는 것도 유추할 수 있다. 단순히 네안데르탈인이 종의 진화 과정에서 도태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피엔스와의 혼혈되었을 가능성도 여지로 남겨둘 수 있다.

문화를 가졌었다는 건 힘을 가졌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강한 국력 아래 문화가 꽃피는 법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문화를 가졌던 네안데르탈인이 단순히 멸종했다고 보기에는 인문학적으로만 봐도 쉽게 설명이 되질 않는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그의 다른 저서에서도 관련 내용이 등장한다. 아래 그 내용이다.

3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무덤이 발굴되던 날

사람들은 놀랐다.

거기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았었구나.

어느 짐승 어느 원숭이가

눈물방울 같은 꽃송이를 뿌리며

무덤을 만드는 것을 본 적 있는가.

오직 인간만이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는 꽃을 꺾어서 죽은 자의 제단을 만든다.

벌과 나비는 꿀을 따기 위해 꽃을 찾지만

사람은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꽃밭으로 간다.

사람을 만든 한 송이의 꽃

영혼을 만든 한 송이의 향기

짐승의 이빨이나 발톱보다도 강한

한 송이의 꽃잎

수원 화성을 지을 때 신하들이 상소하기를

"무릇 성곽이란 예부터 적을 막기 위한 것.

튼튼하고 강하면 그만인 것을

어찌하여 아름답게 꾸미시려다

성심마저 상하시려 하오십니까.”

조선의 왕 정조께서 이르시기를

아니다, 이 몽매한 자들아

아름다운 성이 적을 막는다.

아름다움이 곧 강한 힘이로다.

30만 년 전 네안데르탈 꽃무덤이

성이 되었네

한국의 강한 성 아름다운 성

화성이 되었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열림원/

4장 내일은 없어도 아름다움이 힘이니라 130-131p

68 1등이 되려면

같은 방향으로 뛰면

1등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동서남북으로 뛰면

네 사람이 1등을 하고,

360도 방향으로 각자 달리면 360명이

모두 1등을 하지요.

베스트 원(Best One)이 없으면

베스트 투(Best Two)가 대신할 수 있지만,

온리 원Only One)이 없어지면

아무도 그를 대신할 수 없지요.

왜 꼭 그 학교라야 하나요.

왜 꼭 그 직업이라야 하나요.

판사, 검사가 아니라도

의사, 박사가 아니라도

길은 많아요.

틀림없이 있을 거예요.

남들과 다른 나만의 재능.

나처럼 생긴 지문은

70억 인구 가운데 오직 나 하나뿐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끼리 손을 잡으면

강강술래처럼 둥근 원을 만들어

춤을 출 수가 있어요.

214-215p 3. 작은 생각 큰 마음

 

“젊음의 탄생”이란 저서에서 이어령 선생은 대학생 독자들을 향해 하고 싶은 말들을 여럿 남겼다. 그 중 하나는 베스트 원이 아닌 온리 원, 온리 원의 사고를 통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기를 바랐다. 이어령 선생은 그렇게, 백남준이란 작가를 한국의 대중에게 알렸고 둘은 창조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사이가 되었다. 고향 친구도 아니고, 직장 동료도 아니며, 그저 예술을 이야기하고 어떤 작품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할 지를 떠들었던 순수한 창작가 둘의 만남이었다.

그래서 이어령 선생은 마지막 대목에서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끼리 손을 잡으면 강강술래처럼 둥근 원을 만들어 춤을 출 수가 있어요.”라고 말했던 것이지 않을까 싶다.

강강술래는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놀이다. 누군가 강강~ 외치면 수월래 라며 소리를 낸다. 원이라는 무한 반복의 형태로 줄을 지어 뱅글뱅글 돈다.

축구 대표팀도 그렇다. 킥오프 전에 둥그렇게 모여 어깨동무하며 화이팅을 외친다. 강강술래와 엇비슷한 면이 있다. 각기 다른 팀에서 뛰던 선수들이 한데모여 힘있는 소리를 외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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