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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 대혼란기를 지내온 어린 아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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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지은이 : 이어령

펴낸 곳 : 문학사상

펴낸 날 : 2009년 06월 10일

서울에서 온 소녀는 살결이 희다. 동네 머슴애들은 보기만 해도 약이 올라서 돌팔매를 치려고 한다. 그런데 웬일일까. 나는 서울에서 온 소녀를 보자 불 없는 소처럼 유순하기만 했다. 그게 최초의 성 의식이었다면 부끄러운 말일까.

소녀와 함께 나는 들판을 걷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애는 나를 깔 보고 있는 것이라고 느끼면서, 무엇이든 자랑을 해야만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에게는 많은 형제가 있단다."

그러나 소녀는 놀라지 않았다.

"우리 집에는 라디오와 유성기(축음기)가 있단다."

* 아무리 철없는 때의 사랑이라 하더라도 사랑은 평화보다도 투쟁의 감정에 가깝다.

나의 선악과 27p

 

유년기의 이야기를 담은 저서다. 에세이 형태의 단편들이 모여있다. 문장 옆에는 * 별표의 표시가 달리고 아래 주석형태로 자신의 생각이 쓰여있다.

시골 아이는 대개 피부가 희지 않다. 햇빛을 많이 쬐서 그렇긴 하다. 서울에서 온 여자아이에게 느낀 건 새로움이다. 그 새로움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고 그것을 곧 사랑으로 치환시켰다.

대개 아이들이 그렇듯, 장난을 가장하여 호감을 드러낸다. 서울 아이 앞에서 자랑하는 건 그만큼 자신의 격이 비슷하다는 걸 드러내려 하는 것이다. “희다”는 표현에는 고결함이 담겨있다. 우리나라에선 미적인 표현이면서 복잡한 뉘앙스가 있다. 그 아이 앞에서 자랑하려 했던 건 여자아이가 풍기던 분위기 때문이었을 거다.

사랑은 쟁취해야할 대상이다. 그래서 남녀는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한다. 장난을 친다거나, 도도한 표정을 짓는다거나.

 

골방 속의 연기는 아무도 보아주는 사람이 없다.* 연기란 남이 보아줄 때 정말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자기를 다른 사람인 것처럼 꾸며 보여준다는 것, 그것은 가면을 쓰고 자기를 속이는 일처럼 흥미가 있다. 사람들은 '남’이 되고 싶어 한다. 자기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골방의 물건을 뒤져낸다는 것은 어른들에게 야단맞는 금지된 장난이다. 그러니까 연기보다는 그 비밀을 혼자 만지작거리는 쾌감이 더 큰 것이다.

*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연기를 배운다. 누가, 대체 누가 배우의 운명에서 도피할 수 있을 것인가?

59p 악기와 사상가

 

이 대목은 그의 다른 저서 “우물을 파는 사람”의 글귀로 삽입되었다. 그만큼 따로 떼어놓고 봐도 괜찮기 때문이다.

5살까지는 타인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숨바꼭질 할 때 아이는 구석에 숨는다.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타인의 시선에도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다. 이는 타인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일이다. 그래서 아이는 순수하다.

점차 타인과 나의 관계, 거리감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사람은 탈을 쓴다. 익살스러운 장난꾸러기가 되기도 하고, 조용하고 성실한 모범생이 되기도 한다. 친구 관계, 가족 관계 뿐 아니라 직장 또는 학교에서, 여러 상황에 자신을 다르게 바꿔놓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연기를 배울 필요가 있다. 감정을 이해하고 그려내는 일을 통해 거리감을 좁히거나 멀리한다거나 조절을 할 수 있어서다.

텅 빈 교실에 혼자 남아 오들오들 떨고 있던 그 소년과 아침 햇살이 비끼는 이슬 맺힌 정원에서 만개한 꽃들을 바라보던 그 소년은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싸우고 있다.* 나는 그때 두 쪽이 되어버 린 것일 게다. 그리고 날이 흘러도 이 두 개의 분신은 결코 하나로 합쳐지는 일이 없었다.

꽃은 향기로워도 시들어버리는 것."

가끔 나는 그렇게 적다가 또 그 위에 이렇게 덮어쓰는 것이다.

"시들기 때문에 꽃은 향기로운 것."

* 인생은 두개의 리듬 속에서 반복한다. 어둠과 대낮의 리듬 속에서 시간이 흘러가듯이.

147p 꽃의 빛깔은 향기로워도

 

 

이 마지막 두 문장 역시, 우물을 파는 사람이라는 그의 다른 저서에 실려있다.

이로하니.. 로 시작하는 일본 시를 먼저 외운 사람부터 집에 돌려보내주기로 한 담임 선생. 외우는 것에 자신 있는 어린 소년은 손을 번쩍 들었고 외려고 할 때 갑자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 선생에게 그 뜻을 묻는다. 꽃은 언제고 시든다는 뜻을 설명해주었다. 어린 소년은 차마 외지 못하고 엄마 생각을 한다. 엄마도 떠날 수 있음을. 그 어린 아이는 왜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할머니는 거북선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순신 장군이 일본 배를 쳐부순 신기한 거북선 이야기를 ......

나는 얼마나 놀랐었던가.

"어떻게 자기 나라와 자기 나라가 싸움을 해요? 일본은 우리나라 아니에요?"

외할머니는 덕수 이씨의 집안, 바로 이순신의 후예였던 것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와 임금님을 죽이고 제 땅으로 만든 거지 어디 일본 땅이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순사에게 잡혀가니까 너희들에게 모두 쉬쉬하고 있지만 일본은 우리나라가 아니야. 나야 늙었으니까 저희들이 어쩌겠니......그래도 너 혼자만 알아야 한다."* 나는 할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이젠 많이 늙으셔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저 학교와 소방서와 가게와 이 집들은 내 나라 것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는 커서 군인이 된다. ‘히노마루(日章旗)'를 들고 사람들은 군대에 나가는 사람에게 만세를 불러 주지 않았던가? 제 나라가 아닌데 어떻게 쌈싸우러 나갈 수 있겠는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일본이 우리 땅을 때앗았다면 왜 어른 들은 가만히 있는 거냐.

씨름판에서 황소를 끌어가는 힘센 장사들이 많은데 왜들 가만히 있는 거냐...... 나는 할머니가 순사에게 붙잡혀갈까봐 아무에게도 "일본이 정말 우리나라가 아니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식민지의 아이는 할머니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처음으로 내 표를 훔쳤다가 매를 맞았던 산골 아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잠수함 같은 거북선을 몰고 일본 배를 쳐부쉈다는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가끔 꿈꾸기도 했다.

202p

 

우리말을 쓰면 딱지(표)를 뺏을 수 있다. 어린 소년은 우리말을 쓸 수밖에 없게 장난을 치고는 했다. 그렇게 모은 것을 같은 반 친구가 훔친다. 우리말을 못한다고 억울하게 표를 빼앗기고 그걸로 상벌을 준다는 것에 분했던 것이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소년은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같은 반 친구를 떠올렸다. 우리나라는 일본이 아니란 것이 맞다면 같은 반 친구에게 한 건 장난이 아닌 카푸*가 되어 괴롭힌 꼴이 되는 것이니,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그저 친구가 매맞는 순간이 불쌍하다는 감정밖에 느낄 수가 없던 것이다.

*나치 시절 수감자를 감시하던 수감자.

• 영원히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없듯이 내 마음을 타인에게도 알릴 수 없다. 이 벽만으로도 우리는 감옥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 여자가 신부의 옷을 입으면 모든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 사람이 수인의 옷을 입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새로움을 느끼는 마음이 신부의 그것과 다를 뿐이다

별들의 오해 246p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이다.

치킨이 먹고 싶더라도 라면을 먹는 것이 인간이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은 계속 바뀐다.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함께있어도 외로운 것이다. 또 외롭기에 계속 같이 있으려 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함 속에 살 수밖에 없어 인간은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복장이 갖는 힘이 있다. 정장을 입게 되면 매너가 생겨난다. 잠옷을 입게 되면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정장을 입는 사람, 가벼운 후드티를 입는 사람, 그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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