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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한국인 이야기: 너 누구니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 수저에 담긴 우리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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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한국인 이야기: 너 누구니

-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지은이 : 이어령

펴낸 곳 : 파람북

펴낸 날 : 2022년 03월 23일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는 민족인 줄 알았다. 중국이나 일본은 우리보다 전통을 더 중요시하는 나라로 알아 왔다. 그런데 수저 하나를 놓고 보면, 옛 식사 풍습을 지금까지 그대로 지켜오는 것은 한국이 아닌가.

음양 사상 다 버리고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3국의 젊은이들, 그중에서도 초등하교 때부터 브로드 밴드로 온라인 게임을 하는 우리의 엄지족들.

면을 먹을 때도 스파게티처럼 포크로 먹는 그린 아이들인데도. 국물 문화 못 버리고 숟가락 못 버린다.

이런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국물 문화의 문화유전자가 수저를 타고 맑은 지하수처럼 어딘가에 고여 있었던 게다. 그러다, 용달샘 물이 솟아나듯 그렇게 샘솟아 나오는 거다. 신선한 충격이다. 사라진 게 아니라 어디에 고여 있던 것이다.

먼 훗날, 잊힌 줄 알았던 우리의 문화유전자가 생물학적 유전자와 어울려 새로운 한국인으로, 새로운 한국 문화로 창조된다면 그건 어떤 모습 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또 많은 고개를 넘어가야겠다.

2.짝꿍 고개

둘째 꼬부랑길

-우리만의 수저 문화 음과 양, 그것은 어려운 주역에 있는 것이 아니다. 수저 속에, 매일 먹는 밥그릇 옆에 그 오묘한 진리가 있다. 63p

 

 

버리지 못해 많은 것을 잃어야 했던 우리였다. 근대화에 따라가지 못했기에 뺏겨야만 했었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했다면, 한국이란 나라의 생은 다르게 바뀌었을 거다. 문제는 근대화 이후다. 그것을 뒤늦게 깨달아서 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도 버렸다.

그 결과, 정이 사라진 시대가 왔다. 아이가 포대기에 싸여있지 않고 매달려 있다. 제 말도 다 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가 영어유치원에 다닌다. 그런 아이들이 커서는 집을 가지고 등급을 나눈다. 자이, 롯데캐슬, 아이파크, 아파트의 브랜드로 차별을 조성한다.

남자의 고생을 모르고, 그저 일이 끝나면 가정 일까지 많은 것들을 하라고 강요한다. 미혼자들이 인터넷에서 그렇게 떠들고 다닌다. 거기에 대한 반발심으로 여자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다. 성인이 된 남녀는 그렇게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하고 있다.

버리지 말아야할 것들까지 모두 버린 결과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수저만큼은 모두 쇠로 된 젓가락과 숟가락을 쓴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백제 때도 금속으로 된 수저를 사용했다. 밥 먹는 것만큼은 진심이었던 민족이었다. 안부를 물을 때도 “밥 먹었냐”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언제 밥 한번 먹자” 밥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그만큼 소중하면서도 친근한 것이었다.

한국의 '젓가락'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 '저' 뒤에 '가락'이라는 토착어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이다. 이상하지 않나. 어느 나라든지 외래어가 토착어와 서로 공생은 하지만 혼합해서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한자어면 한자어, 토착어면 토착어가 따로 사용된다. 40퍼센트 정도가 밖에서 들어온 말이라는 영어에서도 토착어라 할 수 있는 앵글로 색슨' 본래의 말과 라틴, 독일, 프랑스 같은 외국에서 들어온 말이 여간 해서는 섞이지 않는다. 사전 한번 찾아봐라.

예를 들어 영어에는 뱀을 지칭하는 두 개의 단어가 있다. '서펜트'와 '스네이크' 다. '서펜트'는 라틴어 '세르망'에서 온 말이고, '스네이크'는 본래의 토착어다.

3.가락고개

둘째 꼬부랑길

생명의 리듬, 가락

-우리의 젓가랏은 한자 ‘저’를 그대로 들여와 ‘가락’이라는 토박이 말을 붙였다. 한자와 우리말의 아름다운 결합이다. 75p

 

 

 

기찻길, 사글세, 동해바다 등 한자어와 토착어와 결합시킨 우리. 이 대목은 그의 다른 저서인 “거시기 머시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젓가락도 중국에서 시작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숟가락과 함께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었다. 국물을 뜰 때와 밥을 풀 때 쓰는 숟가락. 중국의 숟가락은 국물 정도를 뜰 때 쓰이며 젓가락과 소재가 다른 플라스틱으로 주로 쓰고 있다.

요즘은, 밥을 젓가락으로 먹는 것이 많아졌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개인화가 심해지고 있으며 그만큼 밥을 멀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말은 한자가 들어와도 황토흙이라고 하고, 동해바다라고 해요. 여러분에게 나눠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보면 내가 황토흙이라고 표현했어요. 그런데 교정을 보는 편집자가 계속 흙 자를 빼는 거예요. ' 황토' 하면 리듬도 안 맞아요. 흙을 넣으면 또 교육부에서 겹침말 안 쓴다고 빼는 거예요.

그래서 내 책이 무수히 많은 판을 찍었는데 황토흙이라고 된 것도 있고, 황토라고 된 것도 있어요. 그건 내가 최종 교정을 못 본 책이에요. 송창식이 노래 부를 때 "동해바다로 고래 잡으러 가자"고 하지, "동해로 고래 잡으러 가자"고 해요? 처갓집도 마찬가지예요.

한자만 그러면 말을 안 해요. 일본 말도 마찬가지예요. 모찌가 떡인데 우리는 모찌떡이라고 해요. 빵이 서양 말인데, 빵떡이라고 해요. 깡이 'can', 즉 통인데 깡통이라고 말해요.

그러니 이건 우연이 아니라 한자든 일본어든 영어든 외래어가 들어오면 반드시 우리말을 거기에 붙여서 흔적을 남긴다는 거예요. 무수한 한자, 교활한 일본어, 압도적인 서양말 중에 그래도 눈물의 흔적처럼 내 것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교육부에서 겹침말이라고 못 쓰게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말이 아니라, 우리의 어법이라는 이야기예요.

거시기 머시기 / 김영사 / 220p 6 한국말의 힘 : 토씨 하나만 고쳐도 달라지는 세상, 푸른색과 초록색의 차이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 글쓰기교실 초청 강연(2014년 5월)

안타까운 것은 우리 자신은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남의 것을 배척하자는 말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한류가 열풍이다. 아시아권을 넘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싸이의 말춤 추는 영상을 30억 명의 내티즌이 보았단다. 춤이라 하면 왈츠 맘보, 차차차 등 별의별 춤이 다 있는데, 족보에도 없던 그 말춤이 전 세계인에게 춤바람을 가져왔다. 왜냐하면 싸이의 춤에는 그들에겐 없는 한국의 신가락 문화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의 춤이라는 건 늘 보던 걸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떤 복잡한 춤이라도 걸음걸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왼손이 나가면 오른발이 가고, 오른발이 나가면 왼손이 간다. 손과 발이 반대로 교차한다. 하지만 한국 춤에는 서양 춤과는 전혀 다른 춤사위가 있단다. 왼손, 오른손이 같이 올라가는 특이한 춤사위가 있다는 거다. 마치 탈춤처럼.

정상적인 걸음걸이와는 다른 손과 발의 변칙적인 움직임, 거기서 독특한 몸짓과 리듬감이 나온다. 그게 신 가락을 돋우는 게다.

3.가락 고개

셋째 꼬부랑길

젓가락이 품고 있는 한국의 가락 문화

눈으로 보는 젓+가락'을 두드리니

귀로 듣는 '노래+가락이 된다.

귀로 듣는 가락은 다시 마음을 움직이는 '신 가락'이 된다.

80-81p

 

 

나는 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문화도 그렇다. 우리 문화에서 시작해야 한다. 나는 나다울 때 개성과 매력이 생겨나고 우리 문화도 우리다울 때 매력적인 문화가 된다.

정해진 틀이 아닌 우리 식대로 우리 마음대로 우리 ‘멋’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력이 그 안에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영감을 만들어낸다.

 

한국의 젓가락은 다른 나라에서는 불 수 없는 금속을 사용하는 데다 숟가락과 짝을 이뤄 쓰기 때문에, 젓가락만 떼어서 그 의미를 논할 수 없다. 젓가락과 숟가락을 합쳐서 '수저'라고 하지 않았나.

항상 같이 다닌다.

젓가락과 숟가락은 완전한 한 쌍이다. 앞서 말했듯 숟가락은 음이다. 국물을 떠먹는다. 젓가락은 양이다. 고체 음식, 덩어리를 집는다. 숟가락으로는 뜨고, 젓가락으로는 집는다. 그래서 각각의 한 단위는 숟가락의 경우는 한 술이고, 젓가락은 한 저분이라고 한다.

4.밥상 고개

첫째 꼬부랑길

아시아의 젓가락 형태 비교

한중일 3국 젓가락의 모습이 다른 것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 아니라

세 나라의 음식문화가 달랐기 때문이다. 91p

 

 

수저라는 말은 우리밖에 없다. 밥과 국물을 뜰 때는 숟가락을 반찬을 집을 때는 젓가락을. 아프다며 누워있는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한 숟갈이라도 뜨세요.”라고 하지 않는가. “한 저분이라도 하세요”라는 말은 잘 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밥을 중요시하던 우리 민족의 정신이 남아있다.

삼국시대 출토품 중에 젓가락이 나온 것은 유일하게 백제의 무령왕릉이다. 당시 백제의 금속공예 수준으로 볼 때, 이 숟가락과 젓가락은 백제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특히 단면에 고리를 부착해서 두 개의 젓가락을 사슬로 연결한 이 젓가락은, 제작 수법이 백제 왕홍사 목탑지 사리공양구에서 출토된 것과 거의 동일한 형태인데 중국에는 그런 모양의 젓가락이 없다. 무령왕릉 출토 젓가락 두 벌은 백제의 상당한 문화적 선진성을 보여주는 물증이며, 동시에 금속 젓가락이 중국보다 앞서 백제에서 발생한 고유의 문화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 수저가 실제 무령왕과 왕비가 생길에 사용하던 것이있을까? 이 질문에 답이 될 만한 중요한 단서가 있다.

같이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또 하나의 유품, 왕비의 팔찌다. 정의도의 저서 <한국 고대 숟가락 연구>에는 앞서 이야기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수저 세트 등 해당 내용이 상세히 정리돼 있다.

이 팔찌에는 경자년 520년 ' 2월, 다리라는 장인이 왕비를 위하여 만든 것이라고 적혀있다. 이것은 왕릉 내에서 출토된 유물들에 왕이나 왕비가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8.쌀밥 고개

둘째 꼬부랑길

아시아인과 젓가락

-젓가락의 스토리텔링을 모으면 젓가락 삼국지가 되고

그 속에서 재미난 3국 문화의 기원이 되는 밈을 찾을 수 있다.

192p

 

 

금속 젓가락을 쓰는 건 우리 고유의 문화였음을 알 수 있다. 식문화가 다채로웠기 때문이다. 밥과 국물 그리고 집어야 하는 반찬들로 구성된 우리 밥상에서 금속 젓가락 만큼 편리한 것이 없었다. 얇게 펴진 숟가락은 밥을 푸기 용이하면서도 약간의 국물을 뜨기 좋다. 입안에서 밥을 풀어낼 수 있을 만큼의 양이 떠지기 때문이다.

적당한 길이의 젓가락은 다양한 반찬을 집기에 좋다. 길지 않으니 작은 콩을 집기에 좋으면서도 나물을 적당히 덜어내기에도 좋다. 우리의 수저는 그래서 한 짝을 이룰 수밖에 없었다.

한자는 식자들이 쓰는 문자라며, 우리의 바탕말인 순우리말을 비어로 전락시키는 부당한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노인이라면 점잖은 말이요, 늙은이라 하면 뺨 맞을 비속어다. 행위를 뜻하는 용用이나 사事에 속하는 순수한 우리말이 '질'이다. 그런데 어느새 '질'자가 붙으면 전부 나쁜 말이 돼버렸다. 교사에게 '선생질'이라고 하면 화내지 않을 사람이 있겠나. 서방질, 도둑질, 고자질, 분탕질같이 질이 붙은 말 은 다 손가락질받을 만한 말이다. 그런데 손가락의 연장이요, 그 행위인 젓가락질만은 '질' 자가 붙었다 해서 비하하는 말이 아니다. 그만큼 젓가락질에는 예법이 있었고, 거기에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중일 가릴 것 없이 상대방을 향해서 젓가락을 드는 행위는 금기 중의 금기다.

9.밈 고개

셋째 꼬부랑길

젓가락질은 계승되는 문화유전자

-갱도 내 독소를 알아차리는 카나리아, 잠수함의 산소 포화량을 진단하는 토끼.

한국인에게 젓가락은 갱부의 카나리아요. 잠수함의 토끼다

221p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라는 노래 가사가 있다. 젓가락질이란 단어만큼은 나쁜 뜻이 없다. 젓가락질을 잘해야 밥 얻어먹고 산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젓가락질”이란 단어는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젓가락을 들고 상대를 가리키는 행위를 절대 하지 않는다. 그만큼 밥먹는 도구로써 소중하기 때문이다. 간혹 밥상머리 앞에서 예의를 차리지 않으면 숟가락으로 때리기는 했으나 젓가락으로 상대를 지적하지는 않았다.

젓가락 끝이 뭉툭하기는 하나, 그래도 어느정도 뾰족하다. 뾰족한 것으로 상대를 가리키는 것은 곧 위험이 되기 때문이다. 밥을 먹는 행위는 경계를 풀고 함께 나누는 자리다. 정을 나눈다. 뾰족한 것이 인간을 향하게 되는 순간, 밥상은 전쟁터가 된다. 때문에 젓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키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밥을 먹는 순간은 평화다. 6.25 전쟁 때도, 북한군이 밥을 얻어먹는다고 초가집에 들어갔다고들 한다. 그때만큼은 그들은 총을 내려놓고 밥을 먹었다. 점령과 탈환이 반복되며 자신의 땅이 북한인지 남한인지 모르던 혼란의 시기에도 밥을 먹는 순간만큼은 평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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