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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이어령, 80년 생각 : 창조적 생각의 탄생을 묻는 100시간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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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이어령, 80년 생각

: 창조적 생각의 탄생을 묻는 100시간의 인터뷰

지은이 : 김민희 , 이어령

펴낸 곳 : 위즈덤하우스

펴낸 날 : 2021년 01월 25일

“포스트 코로나 세상에 던지실 키워드는 무엇인지, 2020년 미수를 맞이하신 88세의 생각은 어떤 것인지 큰 점 하나를 찍어주시기 바랍니다."

질문자 입장에서는 쉽지만, 답변자 입장에서는 답하기 어려운 거대한 질문을 투척했다. 시간이 없다는 말씀에 울컥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그리고 더 이상 선생님의 시간을 빼앗지 않기 위해 대화의 종지부를 서둘러 찾으려 했다는 것이 정직한 이유일 지 모른다. 그러나 대화는 오히려 이제부터였다.

"‘눈물 한 방울’이 말을 마지막으로 이 시대에 남기고 싶어.”

29-30p 책머리의 대화 80분에 담은 80년 생각, ‘눈물 한 방울을 마지막으로..‘

 

 

피로 일궈낸 독립, 땀으로 일으킨 산업화.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래서 눈물은 흘릴 줄 몰랐던 우리. “이어령의 눈물 한 방울”이란 그의 저서에 이 말을 남겼다. 눈물은 오로지 인간만이 흘릴 수 있다고 했다. 감정 섞인 눈물 말이다. 타인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건 모순 속에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서로를 위해 흘리는 눈물은 무엇을 낳을까. 그가 제창하던 “생명 자본주의”라고 생각한다. 생명력이 없는 것들로 경제를 부흥시키는 것이 아닌, 이야기가 담긴 생명이 담긴 것이 서로를 보듬고 나아가 경제를 일으킬 것이다.

이는 인문이 괄시받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단순히 나무를 베어 화장지로 만들어지면 자본주의다. 하지만 종이가 되어 이야기가 담긴 책이 만들어진다면 생명이 탄생한다. “살인자의 기억법”이 영화화 되었고 “해리포터”는 전세계가 사랑하고 있다. “마블”은 영화화된 이후 사람들이 만화책을 찾는 역행 현상이 일어났다.

“•••안네 프랑크는 은신처에 갇혀 지내다가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집단 수용소에서 죽었어. 16세의 나이로 말이야. 만약 은신처에서 일기를 쓰지 않고 눈물만 흘리다 세상을 떠났다고 해봐.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겠지. 그런데 소녀의 그 눈물 한 방울이 생각의 날개 속에서 창작물로 부화하여 《안네의 일기로 세상에 공표된 거잖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 10위권에 드 는 밀리언 셀러가 되고, 유네스코에서는 그 일기장을 세계기억유산으로 정하기도 했지."

—"역사를 바꾼 것은 히틀러의 랭크가 아니라 열세살 아이가 쓴 일기장이었군요."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안네의 일기장이 없었을까. 일본 강점하의 우리 누이들은 교육은 고사하고 언년이, 간난이란 이름 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한 소녀들이었던 거지. 남자라도 개똥이, 쇠똥이로 불리던 사내들이었기에 그 모든 만행들의 기억을 글로 남길 수 없었고, 그래서 그대로 묻히고 말았어. 이제부터라도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창의력을 지닌 형제자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오늘의 한국인과 한국 문화라면 코로나 같은 시련이 닥치더라도, 불행한 역사에 휘말린다 해도 연약한 한 소녀의 눈물 한 방울의 힘으로 역사의 물꼬를 바꿔 놓을 수 있을 거야. 그것이 내 '80년 생각'의 귀결점이기도 해. 일제 식민지 때의 아이로 태어나 제 나라 말이나 글조차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시대를 산 내가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그것 말고 더 있겠나."

30-31p 책머리의 대화 80분에 담은 80년 생각,

"날개에서 품개로', 나와 다른 것을 품다 보면

 

 

양반이 한글 사용을 반대했던 이유는 이와 같은 맥락이 깔려있다. 은폐할 수 있던 것을 더이상 그렇게 할 수 없게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신분차이로 구분지으려 했던 건 표면적인 이유다. 실상은 말이 글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

글은 가시성을 띈다. 보인다는 건 믿을 수 있게 되고 보이는 걸 믿는 건 증거다. 증거주의 원칙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이념 중 하나다. 사법체계의 기반을 마련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양반은 평판이 중요했다. 비윤리적 태도 등 자신에게 불리한 것들이 알려지는 것은 수치이기에 실컷 즐기고서 은폐하고는 했다. 매관매직, 공물 횡령, 그로인한 백성들을 향한 수탈의 심화.

은폐는 진실의 반대말이다. 감춰진 곳에는 볕이 들지 않는다. 빛이 없으면 어둡고 어두운 곳은 습하다. 습한 것은 부패를 낳는다. 곰팡이가 피듯 말이다. 일부 양반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은폐하려 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일본이 그랬다. 우리 문화를 은폐하려 했다. 히라가나, 가타가나를 쓰고 읽고 말해야 했다. 우리말을 은폐했다.

주시경 선생의 한글 체계화 작업으로 한글을 명확히 읽고 쓸 수 있게 되면서 현재 우리는 민주주의 안에 살게 되었다. 글을 쓸 줄 몰랐던 이들은 지난날 우리의 누이였고, 형이었고, 아버지였으며, 어머니였고, 할아버지였으며 할머니였다.

그런 그들이 뒤늦게 글을 배우려 했던 건 그런 설움 때문이었다. 아픔이 있어도 풀지 못했다. 글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 응어리를 풀어내지 못했다. 심지어 이름조차 없었다. 한글 이름을 가졌더라도 일본어로 치환되었던 그 시절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양반들은 임금을 향한 충시를 쓰기도 했고, 임을 향한 슬픔을 글로 표현하기도 했었다. 본인들은 감정을 풀어낼 곳이 있었다.

그 의문이 풀린 것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40대가 되어서였다. 주역과 음양오행 사상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천지현황‘의 뜻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검은색에는 두 가지가 있더라고. 현과 혹은 같은 검은색이라도 달라요. 흑이 물리적인 검은색이라면, 현은 추상적인 검은색이지. 천자문에서 '검을 현'은 추상적인 차원이었던 거야.

오방색을 봐요. 동쪽은 파란색, 서쪽은 흰색, 남쪽은 빨간색이고, 북쪽이 검은색이지. 북쪽은 음양오행에서 하늘을 가리켜요.

남쪽이 생명을 상징하는 '양’이라면 북쪽은 남과 대비해 생명이 죽은 곳으로 여겨. 사람이 죽으면 '북망산에 묻힌다'' 하늘나라로 간다' 하잖아. 그래서 하늘이 검다는 거였어.

49-50p 1장 생각의 탄생,

01 물음표가 씨앗이라면 느낌표는 꽃이지

-창조의 씨앗 첫 번째 물음 느낌표,

천자문이 창조성을 죽였다.

 

 

 

하늘은 검다. 검은 건 맞다. 밤이 되면 까맣게 된다. 하지만 두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면 푸름이 보인다. 해뜨기 전 새벽녘의 모습을 봐도 푸르다. 한낮에는 내내 푸르다. 그런데 왜 검다고 단정지었을까. 이어령 선생의 어릴적 큰 궁금증이었다. 하늘은 북쪽을 가리킨다. 반면 땅은 남쪽이다. 해가 뜨는 곳은 동쪽이며 지는 곳은 서쪽이다. 북은 검은색과 대응한다고 한다.

하늘에서는 생명체가 살 수 없기에 음이 된다. 비를 내리거나, 눈을 내리고, 바람을 불게 한다. 이는 자라나는 생명에겐 시련이다. 양분을 제공하는 땅과는 결이 다르다. 그런 점에서 북쪽은 음에 대응하는 검은색과 연결된다.

이어령 선생에겐 어린 시절 그 긁지 못하는 가려움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창조의 반대말이 뭔지 알아요? 파괴지. 창조와 파괴는 동전의 양면 같은 거야. 창조를 하려면 먼저 파괴를 해야 돼.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쓴 '창조적 파괴'라는 표현이 딱이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창조적 파괴라는 모순어법이에요. 우리는 ‘좋아서 죽겠다' 같은 모순어법을 많이 쓰는 민족인데, 정작 창조적 파괴는 잘 못해."

70p 03 창조와 파괴는 동전의 양면,

창조하려면 먼저 파괴하라

 

 

만들고 부수는 것. 반의어 관계다. 단순히 놓고 보면 그렇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창조와 파괴는 늘 반복되었다. 국가가 탄생하고 파괴되었다. 이전에는 공룡이 탄생되고 사라졌다.

창조와 파괴는 역설적이지만 상관관계다. 전쟁 후 폐허가 되었던 우리나라는 재창조 되었다. 지금 우리는 이전에는 누릴 수 없던 높은 수준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예수도 파괴되었기에 창조될 수 있었다. 원죄를 짊어지며 자신을 파괴했다. 다시 부활하여 의심했던 수많은 이들을 믿음으로 돌이켰다. 그들을 새로 태어나게 만든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고들 하잖아. 왜 한국인들은 위기가 닥쳐야만 기회를 찾으려 할까? 정말 창조적인 건 위기에 빠뜨리지 않는 것이지. 한국은 '궁즉통'이 통할 때가 많았어요. 위기의식이 있어야만 부라부랴 살길을 찾지. 꼭 닥쳐야만 뭔가를 해. 그렇다 보니 1년, 2년, 한 달 전에 계획한 결과물이 전부 같은 경우가 많아. 글쓰기도 마감이 닥쳐야만 써지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지. 다 쓴 치약을 쥐어짜듯 하면 안 돼요. 창조는 천재적인 것이 아니거든. 미리 대비하고 분석하다 보면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나오는 법이지."

282p 2장 창조의 기록들,

18 위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 진짜 창조다

- 50만 명이 모인 새천년맞이 자정행사,

창조는 천재적인 것이 아니다.

 

 

창조는 반복에서 탄생한다.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언제고 영감이 스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조그마한 메모노트를 들고다니며 떠오르는 키워드를 적는다고 한다. 그 키워드들은 무의식 중에 서로를 연결지어 작품성을 가진 소설로 탄생하게 된다.

찰리푸스가 “See you Again”을 작곡한 것이 단순히 우연이었을까? 아니다. 무의식 중에도 생각하고 노력한 결과가 꿈에서 등장했던 것일 뿐이다. 꾸준한 작업이 없었다면 그는 버클리 음대를 졸업한 사람으로 끝이 났을 거다. 그를 단순히 천재로 치부하기엔 그가 작업해온 결과물의 주기가 압도적으로 꾸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먹는 도구의 이름이 인체와 연결된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 숟가락, 젓가락은 '손가락'의 연장 이거든. 그런 면에서 젓가락은 몽둥이와 정반대의 속성을 지녔어요. 몽둥이는 주먹의 연장이자 근육의 연장이지만, 젓가락은 손가락의 연장이자 신경의 연장이에요. 힘의 상징인 몽둥이는 주먹보다 크고 뭉툭하지만, 섬세함의 연장인 젓가락은 손가락보다 가늘고 뾰족해야 해. 젓가락은 내 몸의 피와 신경이 통해 있는 아바타인 셈이지.”

"어디 손가락뿐이에요? 머리에서 갈라진 것은 머리카락, 발에서 갈라진 것은 발가락이지. 또 온몸에서 갈라진 그 가락이 장단을 맞추면 ‘노랫가락’이 되고 ‘신가락’이 돼. 한국의 독특한 가락 문화, 짝 문화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지.”

316p 3장 통찰을 넘어서

20 메타언어로 쓴 문명론, 젓가락의 젓가락성을 읽다

-청주 젓가락 페스티벌,

한중일 젓가락론

 

 

이 대목은 그의 이전 저서인 “가위바위보 문명론”에서도 등장한다. 가락은 신체에서 출발한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단어다. 음주가무가 옛 선조들의 풍류문화라고 했던 건 무엇일까.

가락에 맞춰 손끝을 움직이고 발끝으로 조용히 스탭을 밟으며 춤을 추었다. 승무를 보면 긴 소매를 팔을 들어 천천히 움직이다 끝 동작에 털어내듯 약간의 스냅을 준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으니 긴 소매로 선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을 보며 우리는 예술을 음미했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다. 비록 손끝은 가려졌으나 흰소매의 움직임에 슬픔과 미(美)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동아시아는 관계 속에서 문화가 피어났다. 음주문화는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예다. 서로 술을 주고 받으며 경계를 풀었다. 취기가 오르면 양반으로서 지키던 침묵이 웃음으로 변했다. 고수가 북을 치고 기생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사뿐사뿐 움직이는 춤사위에 양반들은 그 동작에서 미를 발견하고 즐거움을 만끽했다. 황진이가 양반들에게 매혹적인 존재였던 건 춤과 악기, 즉 예능에 능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신체는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기에 숨기면서 드러내야 하는 역설에 살았다. 춤은 그걸 단번에 표현할 수 있는 우리의 예술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어요. 광복될 때까지는 총검술을 배우고 방공호를 팠지. 학교는 거의 안 다녔어요. 일제강점기 때 꼬박꼬박 학교를 다녔다면 내 머리는 천자문 배운 사람처럼 견고해졌을지도 몰라요. 대신 그 시간에 하늘 보고 바람 맞고 꽃을 보고 날아가는 새를 보면서 계속 책 을 읽었지. 이게 오늘날의 나를 만들어준 거예요.

초등학교만 그렇게 보낸 게 아니야. 중학교 들어갔더니 좌우익 싸움한다고 동맹휴학이래. 겨우 학교가 정상화되니까 또 6•25 전쟁이 터지고. 이리저리 피란 다니다가 대학생이 됐는 데 돈이 있어야지. 서울대 문리대 학예부장을 하면서 문경의 어느 고등학교에 가서 수학도 가르치고 영어도 가르쳤어요. 그러다 보니 대학 시절에도 공부할 시간이 없었지. 그땐 제대로 된 교재도 없었고. 내 최종학력은 대학원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학교에서 배운 게 별로 없어요. 역설적이게도 그게 참 다행이야."

332p 3장 통찰을 넘어서

21 현실의 색과는 다른 상상의 색을 그려라

-알파고가 한국을 점령하던 날,

학교는 생사람 잡는 곳

 

 

배운게 없었기에 창조적 사고가 가능했다고 말하는 이어령 선생. 앞서 말한 창조적 파괴와 같은 모순어법이다.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기에 그는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말로 글로 풀어낼 수 있던 것이다.

학교는 창조적 사고를 막아버린다. 1+1=2라는 내용을 단순히 입력시킬 뿐 그 과정은 명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어령 선생이 왜 하늘은 검은 것인지 물었지만 따지고 든다며 쫓겨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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