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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 딸에게.. 사람에게.. 보내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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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지은이 : 이어령

펴낸 곳 : 열림원

펴낸 날 : 2021년 03월 15일

"하나님.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 하늘의 별과 땅의 모래만큼 자손을 낳으라고 축복을 내리신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런데 왜 생명을 잉태하는 그 거룩한 순간을 구역질의 괴로움으로 시작하도록 하셨는지요. 선악과를 따 먹은 이브의 죗값으로 누구나 여자라면 산고의 고통을 치러야 한다는 것은 나도 잘 압니다.

하지만 왜 잉태하는 그 시작부터 아기가 어머니를 괴롭혀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배 속에서부터 불효자가 되어야 합니까. 입덧을 하는 것을 볼 때 마다 나도 모르게 배 속의 아이와 하나님을 미워하게 된단 말입니다. 아기를 가졌으면 입맛이 더 살아나 영양분도 많이 취하고, 배 속의 아이와 기쁨으로 교감해야 하는데 왜 심술과 괴롭힘으로 첫 대면을 시키는가 말입니다. 수태고지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한 성모 마리아님도 입덧을 하셨는지요?"

솔직히 말하마. 네 엄마가 입덧을 할 때마다 나는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원망했다. 하나님은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분이니 내 무례함을 용서해주셨겠지만 태내에 있던 네가 이러한 내 생각을 엿들었다면 결코 아빠를 용서하지 않았을 거다.

36-37p 1. 탄생 그리고 시작. 너 멀리서 어떻게 왔니

 

 

결혼이란 건 생각치도 않았던 저자. 강인숙 교수와 만나 결혼을 하고 찾아온 소중한 생명. 입덧으로 인해 밥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런 아내를 보며 이어령 교수는 같이 힘들어했다. 왜 입덧을 하게 만들어 아이와 엄마 모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건지.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면서 왜 미움 받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것인지 하나님에게 따졌다.

가뜩이나 어미의 영양분을 다 가져가는데, 미움살 일을 더 늘려서는 되겠는가 말이다.

뜸들이지 않고 말하자면 입덧은 인간의 지혜나 이성으로 풀 수 없는 신비한 생명의 암호리는 거다. 그러니까 숨어 있는 생명 장치라는 것이다. 입덧은 어머니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편안하게 지켜주고 유도하는 태아의 배려였다는 것이다.

그 효심을 피상적으로만 보았던 거야. 배가 불러오기 전에 입덧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엄마는 물론이고 아이를 가졌다는 걸 주위에서 어떻게 알아채겠니. 임산부 자신이 알았어도 입 밖에 내기 힘들 것이고, 만약 말한다고 해도 누가 그걸 믿어주겠어.

물론 지금 같으면 배가 불러오기 전이라도 병원에서 진단도 해주고 초음파 사진으로 태아를 볼 수도 있지만. 옛날에는 모두 불가능했던 일이다. 더구나 농촌 시골에서는 입덧 말고 다른 방도가 어디 있었겠니.

임산부가 구역질하면서 입덧을 하면 주위 사람들이 그때서야 눈치를 채고 그 순간부터 모든 대우가 달라지는 거야.

38-39p 1. 탄생 그리고 시작. 너 멀리서 어떻게 왔니

 

지나고 보니 입덧의 이유를 알게 된 이어령 교수. 입덧을 신호로 본 것이다. 임신 초기에는 임신한 사실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명이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신호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초음파가 없었기 때문에 임신사실을 알 방법이 딱히 없었다. 헛구역질이 아니면.

활명수로 너와의 첫 만남을 맞이할 뻔한 아빠가, 네가 떠나고 난 다음에야 아빠 자격증을 딴 내가 뒤늦은 인사를 한다.

40-42p 1. 탄생 그리고 시작. 너 멀리서 어떻게 왔니

"반갑다 내 아기야."

이것이 너에게 보내는 나의 첫 굿나잇 키스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도 아빠도 함께 태어난다는 말은 단순한 문학적 표현이 아니란다. 그건 과학이야. 육아를 다루는 학문에 '신생아의 미소' 라는 게 있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웃는 표정을 짓는 거야. 아직 아무런 의식도 없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느낄 줄도 모르는 아기가 어떻게 웃을 줄 아는 건지. 그리고 왜 갓난애가 그런 미소를 짓는 건 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우리는 그냥 배냇짓이라고만 했어 과학적으로도 해명된 게 없다는구나.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런 귀여운 미소가 아기를 품은 엄마에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행복감.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희열을 건네준다는 거야.

아빠도 그렇고 주위에서 아기를 돌보는 모든 사람이 그래. 천사 같은 천진한 아기의 미소 앞에서는 누구나 다 무장해제를 당하고 말잖아. 그러고는 원초적인 힘, 보호 본능과 사랑에 빠지고 말지. 엄마는 물론이고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그런 감동과 행복감을 줄 수 있는 놀라운 지혜. 그 조그마한 핏덩어리가 어떻게 그런 힘을 갖고 태어나는가.

40-42p 1. 탄생 그리고 시작. 너 멀리서 어떻게 왔니

 

처음에는 헛구역질하는 아내를 보고 소화가 안 되는 것인 줄 알고 활명수를 가져오려 했었던 저자. 아버지가 처음인 그에게도 부족했던 점이 있었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처음으로 미안했던 일을 고백하면서, 그때 하고 싶었던 말을 남겼다.

태어나지 얼마 안 된 아이가 웃는다. 웃는 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모른다. 우리는 그저 배냇짓이라는 우리말로 표현할 뿐이다. 그걸 보면서 부모는 환하게 웃고 무장해제가 된다. 마음이 열리며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과 감사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그때부터 부모는 진짜 부모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서로 자신을 닮았다며 알콩달콩 다투면서 말이다.

생명이란 그런 것이다. 자라려는 힘,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 그걸 우린 알기에 한없이 귀여워보이는 것이다. 지켜주고 싶고 예뻐해주고 싶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똑똑한 여성이지만 아기를 낳고 가슴에 품어보지 못한 탓인지 아주 이상한 말을 한 적이 있어. 모성애의 그 아름다운 신화를 만들어낸 것은 남성들의 음흉한 계략이라고 말이야. 여성들을 가정에 묶어두고 아기를 기르는 중노동을 미화하여 규방에 가두어두려는 남성 이기주의 우월주의, 편의주의•··• 온갖 악담을 퍼부었지. 하지만 말이야, 그 여류 철학자가 아기를 품에 안아봤다면 그녀가 철학 교실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그 아기가 가르쳐주었을 거야.

아니야. 요즘 화제가 된 유튜브의 동영상만 보았더라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어. 어미 원숭이를 잡아먹은 표범이 새끼가 다가오자 어찌할 줄 모르는 그 기막힌 동영상 말이야. 어미 잃은 그 원숭이 새끼는 아무것도 모르고 표범 에게 다가가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젖을 달라고 안기려고 해.

표범은 당황해하면서도 그 새끼를 물어다 안전한 데 놓고 거북한 자세로 품어주고 돌보는 거야. 표범의 날카로운 이탈과 발톱이 귀여운 원숭이 새끼 앞에서는 아무 힘도 쓸 수 없게 돼.

홍악범이 칼을 내밀 때 아기는 웃어. 그 품에 안기려고 손 을 벌리고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이 엄청난 힘 앞에서 그 흉악범은 칼을 던질 수밖에 없어. 표범이 그랬던 것처럼.

그건 남성들의 계략이 아니라 신의 섭리란다. 신이 아기를 지켜줘. 그리고 아기가 어른들을 착하게 만들어. 아기의 미소가, 그 맑은 눈동자가, 가끔 기지개를 켜며 오물거리는 붕어입이 엄마 아빠가 되게 만들어.

모성애는 어머니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아기가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이 역발상은 최근에 데이비드 브룩스의 『소셜 애니멀 이라는 책에서 읽은 거였어. 이런 책을, 이러한 연구들을 네가 태어난 그때에만 읽었어도 나는 또 다른 마음으로 너의 미소, 최초로 아빠에게 준 그 기막힌 선물을 더 진한 감동으로 가슴에 품었을 것을. 그런데 어쩌면 좋으냐. 지금 신생아에 관한 연구는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도리어 시몬 드 보부아르와 같은 똑똑한 여성은 늘어만 가는구나. 결혼 기피와 저출산, 그것도 한국이 세계에서 으뜸이라니 무슨 낯으로 너에게 굿나잇 키스를 보내겠니.

43-46p

 

 

일면식이 없는데 갓난 아이를 살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럴 수 없다. 우두머리 침팬지도 버려진 고아를 양자 삼아 키운다. 무리에서 왕따당하지 않도록 말이다. 하물며 인간이라고 그런 짓을 저지를까.

어미가 아이를 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열 달 동안 함께 교감하고 고생했던 순간이 준 기적이다. 강아지가 새끼 멧돼지를 돌보는 사례도 있다. 출산 때 나타난 어린 멧돼지가 모성애를 자극한 것이다. 모성애는 자연의 섭리다.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함이다. 본 부모에게 버려졌을지언정 다른 누군가가 품어주는 것이다.

아이를 버리는 부모가 있다. 반면에 일면식 없는 아이를 입양하는 부모도 있다.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야. 널 데리고 해변가를 걷고 있을 때 나는 서울에서 내려온 몇몇글 쓰는 친구들을 만났어. 너를 바라크 건물(판자로 세운 임시 건물을 그렇게 불렀단다)로 된 방에 눕히고 네가 잠드는 것을 확인한 후 바로 옆 텐트에서 그들과 술을 마시게 된 것이다. 잠시 동안만 함께 있으려 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문학 이야기를 하면 아빠는 항상 시간 모르고 흥분하잖아. 늘 문학은 나를 술 마신 사람처럼 만 들어. 분노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오징어를 씹으며 잘 하지도 못하는 술잔을 기울이고. 그렇게 문학 담론으로 한창 열을 올리는 동안 잠시 널 잊고 있었던 것이다. 네 생각이 난 건 한참 뒤야. 깜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너에게로 달려갔었지.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깨어 있었던 거야. 그 깜깜한 밤에 말이다. 해수욕장 모랫바다에 세운 판자 건물에 무슨 전기가 있었겠니.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너는 홀로 잠에서 깼고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아빠를 찾았지만 너는 혼자였던 거야.

모래바람이 들어오는 깜깜한 방 안에서 너는 울며 밖으로 뛰어나온 거지. 아빠를 부르는 너의 목소리는 너무나 가냘파서 밤바다의 그 파도 소리를 이길 수가 없었던 거다. [•••]

3. 여행의 끝, 바다에서 아버지를 잃다 99-100p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딸과의 에피소드다. 어린 시절 기억이라, 본인은 기억하지 못할 지라도 아버지는 기억한다. 미안함과 안타까움. 복합적인 감정으로 딸을 바라보며 아버지로서 느낀 죄책감이다.

이 문단의 내용은 그의 다른 저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80년 이어령 생각에도 등장한다.

사실 기독교를 절대의 유일신교라고 하지만, 천사도 있고 독생자 아들도 있고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일체설도 있으니 내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잖니. 내가 앞으로 너의 소원대로 기독교를 믿게 된다면 하나님과 하느님. 그리고 '님' 자가 붙는 유일성과 다성적 존재(폴리포니)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두 교수와 이야기할 때에 는 정말 진지한 대화를 많이 나눴단다.

특히 내가 생각해도 압권이었던 것은 왜 우리보다 먼저 기독교가 들어온 일본에서 기독교 신자가 겨우 일 퍼센트밖에 되지 않느냐 하는 문제였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를 비교하는 데 이처럼 좋은 예가 없단다.

6. 교토에서 부치지 못한 편지, 원수를 사랑하라 207-208p

 

딸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 한 아버지. 시간이 지나 딸이 아버지에게 많은 걸 이야기 했다. 특히 영성에 관해서. 이어령 선생은 진지한 대화를 남보다 딸에게 하는 것이 더 편했던 것으로 보인다. 독립적 개체로 바라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면에 딸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열심히 공부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오히려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 점을 뒤늦게 알게 되고 미안했다고 밝힌다.

이 책은 딸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 등 많은 것들이 녹아져 있는 에세이다. 아빠! 하며 외치던 딸의 목소리에 쳐다보지 않고 손만 흔들며 글쓰기에 집중했던 적이 많아 미안했던 일. 눈이 보이지 않는 딸을 보며 아버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일. 육의 아버지보다 영의 아버지를 깊게 사랑한 딸을 보며 서운했던 일. 서운하기도 그런 딸이 이해가 되기도 했던 복잡한 마음. 지성을 사랑했던 사람이 딸을 통해 영성까지 사랑해보려 했던 한 아버지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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