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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 신의 존재에 관한 한 과학자의 견해 | 신은 초자연적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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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 신의 존재에 관한 한 과학자의 견해

지은이 : 칼 세이건

옮긴이 : 박중서

출판사 : 사이언스북스

출판일 : 2010년 07월 25일

제가 아는 한, 종교적 감성, 즉 경외의 감정을 직접 경험해 보는 최상의 방법은 바로 맑은 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언제 어디에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22p 1강 자연과 경이

 

 

과학이 종교를 벗겨냈다.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과학이 증명했다. 비가 오는 이유, 대화재가 일어나는 이유, 전염병이 생기는 이유, 지동설 등 인간의 능력이 발전함에 따라 신의 비중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저자 칼 세이건은 종교를 과학으로 대체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지난 역사 동안 종교가 해내온 역할을 인정하고 가치를 인정한다.

어쩌면 종교적 감성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과학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을지 않을까 싶다. 칼 세이건이 말한 위의 문장을 살펴보면 우리의 존재를 찾는 것에 있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의 시작점을 생각해보라는 거다.

아직까지 자연에 대해 확인되지 못한 것들이 많다. 딱정벌레의 패턴은 왜 일정한 것인지, 얼룩말의 무늬는 왜 생겨났는지를 명확히 말할 수가 없다. 우리는 그래서 종교적 감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제, 종교란 어떻습니까?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 졌다는 발상은 어떻습니까? 이것 역시 상상력의 실패에 불과한 것일까요? 우리가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고 말할 때, 우리는 과연 무 슨 뜻으로 하는 말일까요? 가령 우리는 하느님이 콧구멍을 갖고 있고, 숨도 쉰다고 상상하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분'은 무엇을 들이 마실까요? 공기일까요? 그럼, 어떤 공기일까요? 산소가 들어 있지 않은 공기일까요? 태양계에서 지구를 제외하면 산소가 있는 곳은 전무합니 다. 왜 하느님을 극히 제한된 장소에만 제한하는 걸까요? 왜 '그분'은 콧 구멍을 필요로 할까요? 배꼽은 어떻습니까? 하느님도 배꼽을 갖고 있을까요? 머리카락은 어떨까요? 맹장의 충수는 어떻습니까? 발가락은 어떻습니까? 발가락이야말로 숲의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이 가지 저 가지로 뛰어 다니던 우리 조상들의 삶의 결과가 분명한데 말입니다. 그때에는 나무를 잘 붙잡을 수 있도록 네 개의 사지를 가진 것이 매우 좋았습 니다. 우리는 이 특별한 변화의 순간 덕분에 그저 우연히 발가락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엄지발가락은 균형을 잡기에 좋았습니다. 반면 새끼발가락은 어디에도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건 단지 진화적 우연에 불과했습니다. 충수요? 마찬가지로 그것 역시 어디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냥 쇠퇴하기 시작하던 것이었습니다.

156p 4강 외계의 지적 생명체

 

 

신은 인간과 같은 모습을 했다고도 말한다. 이는 종교가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탄생한 전 세계 인류 공통 모델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인간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건 이게 생존에 가장 최적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온몸에 수북했던 털도 점차 줄어들었고, 복식호흡에서 흉식호흡에 더 초점이 옮겨간 것도 우리가 이족보행을 하고서부터다. 생존에 적합한 상태로 진화해서 생긴 일일 뿐이다. 여기서 신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신은 인간의 형상을 했다는 건 인간이 지금의 모습으로 변화한 이후에 나온 이야기다. 신이 인간의 변화에 따라 형상이 변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신도 자연선택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신이 자연을 창조했다고 하는데 창조물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건 이상하다.

외계인을 봤다며 그 증거로 우리와 비슷한 형상으로 그들을 표현하고는 하는데 이 또한 인간중심적 사고가 반영된 결과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건을 기준을 외계인에게 적용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들은 산소 없이도 살 수 있을 수 있고, 유전자 체계가 DNA 방식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종교도 외계인도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른바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이라는 구절에 들어 있는 유일한 의미는, 우리 인간과 더 고등한 유기체 - 물론 그런 것이 정말 있을 경우 - 사이에 지적인 유연성이 있다는 의미뿐일 것입니다.

156p 4강 외계의 지적 생명체

 

칼 세이건을 이 부분은 인간과 고등생명체 사이에 지적인 유연성이 있음으로 보았다. “신”은 인간처럼 지적 능력을 갖춘 우리보다 뛰어난 생명으로 표현했다. 인간도 한계가 존재했고,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안심시키고자 뛰어난 존재가 있을 거란 가상의 존재를 만든 것이다. 신은 사피엔스가 지구 최종 소비자 위치에 오르면서 더 뛰어난 존재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결과로 등장했다.

 

제 생각에는 만약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점에 도달한 순간, 우리는 오히려 실패한 셈일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이런 탐색은 우리가 정답을 결국 알아냈다는 자기 만족으로 귀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즉 정답이 바로 우리 앞에 있으니 이제 한 번만 더 실험을 하면 그걸 쉽게 발견할 수 있으리라 는 완고한 의미로 귀결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탐색은 우주를 있는 그대로 맞이하려는 용기와 나란히 갈 것입니다. 즉 우주에다가 우리의 감정적 경향을 억지로 집어넣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탐험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바를 용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말입니다.

286p 9강 탐색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걸 찾는 유전기제에 따라 움직인다. 그것이 동력이다. 만족이란 감정을 느꼈다는 건 인류의 종말이 다가왔음을 시사한 것이다. 우주탐사에 우리가 열심인 이유는 인간의 근본적 욕망을 채우고자 함이다. 인간의 구성 요소인 단백질, 뼈에 함유된 칼슘 등 모두 우주에도 존재한다.

우리의 시작이 어떤 기점에서 이뤄졌는지를 알 수도 있다는 거다. 때문에 인류는 자신의 기원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우주에 눈을 두어야 한다. 실패하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우주로 향해야 한다. 신이 그 답을 알려줄 수 없다. 그것만 믿고 기다리면 다 죽고 없다.

질문자: 종교적 믿음이 미래에도 적용 가능할까요?

칼 세이건 : 글쎄요, 이것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질문이 분명합니다. 제 느낌으로는, 그것은 방금 말씀하신 그 종교가 무엇이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종교란 것이 단지 자연계가 어떠한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성공을 위해서라도 종교는 반드시 과학의 방법과 절차와 기술을 채용하고, 결국 과학과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한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종교란 그게 전부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지난번 강의 막바지에서 이른바 종교가 현대 사회에서 유용한 역할을 제공할 수 있는 분야와 대체로 그렇지 못한 분야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령 이 세계가 어떠한지, 또는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를 말하는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 그리고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당대 최고의 과학을 기꺼이 채택한 선례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즉 기원전 6세기에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거기서 바로 구약 성서의 과학이 생겨났던 것이지요. 따라서 제가 보기에는, 이후 26세기에 걸쳐서 사람들이 더 배우게 된 것에 종교가 적응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다양한 정도에 걸쳐서 일부는 적응하기는 했습니다만, 상당 부분은 아직 적응하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334p 9강의 질문과 답변

 

 

신의 개념은 당시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효과적인 존재였다. 그때엔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터라 탄생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신은 어쩌면 먼 미래의 인류를 말하는 걸 수도 있다. 말 중에 제일은 적토마였다. 말보다 빠른 이동수단은 과거의 인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신의 영역이었고, 우리는 그 시대를 살고 있다.

수많은 시간을 지나오면서 인류는 점차 신으로 업그레이드 되어가는 걸지도 모른다. 과학의 발전으로 이성이 확장되었고 우리는 거기에 적응해나갔다. 종교도 과학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에 맞춰 인간의 위안을 제공할 새로운 서비스를 고안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강연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칼 세이건은 종교를 부정하지 않았다. 지난 역사 동안 종교가 해왔던 역할과 효과를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래에도 그걸 수행할 수 있다고는 보지 않았다. 과학이 끊임없이 진리라고 주장하고 그 주장을 뒤엎으며 확장해나가는 동안 종교는 달라진게 없다. 종교는 과학처럼 변화하고 적응할 때 비로소 미래에도 제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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