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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축소지향의 일본인 : 축소의 논리로 해석한 일본인론 | 일본인의 성향을 쉽게 풀어낸 이어령 선생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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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 축소의 논리로 해석한 일본인론

지은이 : 이어령
출판사 : 문학사상사
출간일 : 2008년 10월 20일 (2판)







‘가까운 듯 먼 나라’ 우리는 일본을 표현할 때 종종 이런 말을 한다.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그러면서도 뭔가 낯선 느낌이 가득한 나라. 친근하면서도 그렇지 않는 묘한 분위기를 가졌다. 이는 왜 그런 것일까. 우리는 일본을 아주 가까운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점은 ‘일본인’ 때문이다. 그 나라 국민들이 주는 국가의 분위기가 있다. 이웃나라를 더 잘 알기 위해서 우리는 ‘일본인’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일본인의 특성에 대해 재미있게 풀어냈다. 언어학자 다운 면모가 많이 보인다. 기호학회 창설한 창립자여서인지 문장에 대해서도 조금 심도있게 다룬다.

한국인이 쓴 책이 일본인에게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 점에서 일단 박수를 쳐야할 사실이면서도 우리가 읽어보아야 할 이유가 된다. 그들이 왜 전범국가 시절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경제적 성장을 이룬 원인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제 3자의 입장에서 명료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언어학자 답게 언어에서부터 이야기를 출발시킨다. 도이 다케로가 아마에의 구조를 예로 들어 일본어에만 있는 뜻이라고 생각한 것에 대해 사실을 다룬다. 아마에(甘え)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가 우리나라에도 존재한다고 그의 주장을 반박한다. 심지어 토박이말로 존재한다며 말이다.

한국어에는 아마에란 말보다 더 세분화된, '어리광과 '응석‘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도 한자어나 외래어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한국의 토박이말인 것이다.

제 1장 일본 문화의 출발론
- 탈아시아주의의 고정관념 중에서


한자어가 아닌 우리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일본의 ‘아마에’라는 의미보다 더욱 심도있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한자문화권에 속하지만 우리 고유의 말이 있다는 점에서만큼 중국과 다른 그 정신적인 무언가를 언어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그 뒤에 말을 이렇게 이었다.



"어리광을 받아 길러서 애가 저렇게 되었다"라는 말이 한국에서 육아 문제의 커다란 쟁점을 이루고 있어 '아마에'는 일본보다 한국인의 정신 구조와 더 깊은 관련이 있는지 모른다.

제 1장 일본 문화의 출발론
-탈아시아주의의 고정관념 중에서..


육아에 있어 우리나라는 아이가 보채면 어미가 늘 등에 업고 달래준다. 땅에 오래 내려놓지를 않는다. 자식에게만큼은 냉정하지 못하고 떼쓰는 아이의 요구를 많이 받아주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보니, “응석을 다 받아주면 애가 잘못 큰다.” 라는 말을 관용구처럼 사용한다. 이 점을 들어 어리광과 응석이라는 말은 더 깊은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을 주장한다.








‘영어에는 없으니 일본어에만 있는 것’이라는 논리는 영어가 곧 서양이며 서양은 세계의 중심이라는 관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또 여기서 일본어에만 있다고 생각한 것 역시 동양의 중심은 일본이라는 말이 된다.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에 앞선 일본의 오만에서 비롯된 착각으로 볼 수 있다.
이어령 선생은 한국어를 놓고 언어의 차이를 다시 이야기 한다.


한국어에는 확대하는 접두사는 있어도 축소하는 접두사는 없다.

제 2장 축소지향의 6가지 모형 - ‘왕과 마메' 의 접두사 중에서..


우리는 ‘왕’이란 접두사를 사용해 단어의 의미를 보통 이상으로 크게 키운다. 반면 일본의 경우 ‘마메’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마메혼(豆本), 마메지도샤(豆自動車)은 작은 책과 소형자동차를 뜻한다. 우리말은 소책자, 소형차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으나 이건 접두사가 아닌 (小) 하나의 단어다.











언어에 이어 축소하는 일본인의 특성에 대해 쥘부채로 예를 들었다. 부채를 접어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무엇이든 접어서 손에 넣을 수 있어야 하는 게 일본인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손에 닿아야 알 수 있다고 이해한다.

감정을 표현하는 말로 데(手)라는 단어가 붙어있다. “手応え(데고타에)” 직역하면 손에 오는 대답이라는 의미이지만 반응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힘겨운 건 “手ごわい(데고와이)” 직역하면 손의 무서움이란 뜻이 된다.


일본인들은 단순히 보기만 해서는 이해할 수 없고 직접 만져보고 느낄 때 이해를 넘어선 공감이 가능하다.







“축소지향”은 정원의 형태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창을 내어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되 창틀이라는 프레임을 두고 자연과 마주하는 것이다. 사계절 다른 풍경으로 세월의 흐름을 느끼며 함께 머무르는 공존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나무를 갖고왔고 작은 돌을 갖고오는 등 정원을 하나의 자연으로 만들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고 보기보다 내 안으로 가까이 들였던 것이다. 그래야 자연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지 모른다.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일본인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인위적인 과정이 거쳐진 자연이다보니 조금은 차가워 보인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있는 그대로를 의미한다. 먼지가 쌓이기도 하고 비에 씻겨내려가기도 하는 것이 자연인데, 일본의 정원은 그렇지 않다. 조그마한 먼지를 보고도 견디지 못하는 일본인의 특성을 보면 그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기를 원하는 듯 싶어보인다.








칼로 쌓아 올린 역사의 그늘에는 반드시 누군가 그 칼에 찔려 피를 흘려야만 한다. '주판’으로 돈을 버는 역사에는 반드시 빼앗기고 손해를 본 사람의 눈물과 배고픔이 넘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종'은 아무것도 빼앗지 않는다. 그 울림은 오직 생명 같은 감동을 줄 뿐이다. 아무도 그것 때문에 피를 흘리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

6장 확대 지향의 문화와 오늘의 일본  -도깨비가 되지 말고 난쟁이가 되어라 중에서…


이어령 선생은 어쩌면 이때부터 생명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생각해둔 것일지 모르겠다. 일본이 만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건 일본인의 본성이 삐뚤어졌던 이유다. 내부의 원인을 바깥에서 찾으려 했고 서로를 겨누던 칼이 바깥을 향하게 된 것이다.

생명을 생각하는 생명자본주의 이념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베트남 전쟁으로 생겨난 10만 명의 난민 중 일본은 단 세 명만을 구했다. 소규모 집단에서는 돈독하고 결집된 단결력을 보여주나 그게 지역, 국가 단위로 확장되는 순간 냉담해진다. 인류애 적인 면모를 갖춰야 일본은 더 나은 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국물과 건더기를 함께 먹는 한국인은 뻐끔뻐끔 물과 함께 먹이를 입에 넣는 금붕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101p 중에서..


“생명이 자본이다”에서 금붕어를 언급한다. 중국과 일본에선 금붕어를 금어(金魚)라고 부른다. 우리는 붕어라는 이름에 금을 붙였다. 붕어는 먹을 수 있지만 금이 붙는 순간 먹지 못하는 애완의 가치를 띄는 생명이 된다. 누군가에게 먹히는 생명이 아닌 사랑을 받는 생명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금(金)이란 단어가 붙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 말인 즉슨 사랑을 주게 되면 애완의 가치를 띄게 된다는 것이다. 개도 식용으로 먹을 수 있지만 우리는 사랑을 주고 함께 산다. 이름을 붙여주고 먹을 것을 주면서 쓰다듬는다. 이런 것처럼 사람에게도 사랑을 줄 때 미움과 혐오가 아닌 따뜻한 포용이 이뤄질 것이다. 일본인은 더 넓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총평

일본인을 이해할 수 있는 재미난 책이다. 일본인들도 재밌게 읽었을 거다. 그랬기에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을까. 이 책이 생명자본주의가 등장하게 된 시작점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가 이후의 저서들에서 사랑, 타인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했다. 마지막 6장 “확대지향의 문화와 오늘의 일본”에서 말하던 부분을 보면 일맥상통한다.

차갑고 냉철한 면모가 돋보이던 그는 사랑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후의 저서에서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생명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가 남긴 말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면 좋겠다. 이 정도가 나에겐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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