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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생각의 미술관 / 미술로 말하는 철학, 초심자라면 접근하기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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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생각의 미술관

: 잠든 사유를 깨우는 한 폭의 울림

지은이 : 박홍순

펴낸 곳 : 웨일북

펴낸 날 : 2017-04-30

 

 

철학과 미술이 자주 연결되는 이유가 있다. 철학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 내적인 성찰이라고 할 때 미술도 어느 정도 비슷한 출발선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화가는 외부 사물이나 현상을 그대로 화폭에 옮겨놓는 기술자가 아니다. 눈으로 확인한 것을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순간 주관적 해석이 개입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연스럽게 나름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녹아든다. 화가가 시대와 인간에 대한 보다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가장 빈번하게 철학적 관심을 받아왔다. 창작 의도 자체가 철학적 고민을 전제로 하는 작품을 주로 그렸으니 당연하다. 이미지를 사물의 본질 혹은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특히 그림 속에 드러나는 이미지의 역설을 통해 사고의 역설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 많다.

마그리트의 대표작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미술에 관심이 있든 없든 누구나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캔버스 가득히 담배 파이프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담배 파이프 외에는 어떠한 사물도 보이지 않아서 확실하게 눈길을 잡아끈다. 사진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극사실주의 기법에 의한 묘사다. 파이프를 입에 물기 편하도록 끝부분이 납작한 모양까지도 생생하다.

기호를 생각하는 사람들 /

이게 진짜 파이프라면 불을 붙여보시오 69-70p

이 책에는 마그리트의 그림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저자는 마그리트 작품을 좋아하는 듯 보인다. 사과를 그려놓고 사과가 아니라고 말하는 아이러니함을 말하고자 한 저자.

사실을 묘사했지만 그것이 곧 객체의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가시성을 띄는 보조적 장치일 뿐이다. 실존하는 건 사과를 묘사한 종이다. 종이를 보고 사과라고 인식하는 건 우리의 생각일 뿐이다.

 

 

 

 

 

언어가 사고를 표현하는 수단에 머물지 않고 반대로 일정한 단계에서는 언어에 의한 사고의 규정이 더 두드러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간의 의식이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언어가 이를 뒷받침한다는 생각이 서구 철학의 뿌리 깊은 전통이었으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여기에 비웃음을 던진다. 생각은 언어의 감옥 속에 갇혀 있고, 인간은 더 이상 생각의 자유로운 주체가 아님을 폭로한다.

기호를 생각하는 사람 90p

종이쪼가리에 불과하지만 그걸 사과라고 부른다. 사과가 아니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그저 종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종이”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단어일 뿐이다.

닥나무 껍질을 얇게 깎아 물에 불려서 직조해 낸 것일 수도 있고, 나무를 베어서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신어 작업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자네는 신어를 만든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데 있다는 걸 모르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를 범하는 것도 철저히 불가능하게 만들걸세. 그건 사상에 관련된 말 자체를 없애버리면 되니까." 신어 작업의 주된 임무는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낱말을 없애 서 말을 뼈만 남도록 잘라내는 작업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남말 수는 줄어들고, 그에 따라 의식의 폭도 좁아지게 된다. 몇 세대에 걸쳐서 진보적 사상을 담은 언어를 줄여나갈 때 사람들의 사고도 협소해진 다. 그래서 이들은 "언어가 완성된 때 혁명도 완수될 것"이라고 한다.

소설적 장치이긴 하지만 우리 현실에 적용해 보면 유사한 현상 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1980~90년대에 한국사회에서 자유와 민주주의, 평등과 분배, 정의와 저항 등은 상당히 익숙한 단어였다.

하지만 지난 20년 가까이 정부나 언론에서 끊임없이 성장• 경쟁•연봉• 효율성•취업 •가족 등을 중심으로 한 단어의 융단 폭격을 가해왔다. 자유•평등•정의와 같은 언어는 마치 흘러간 옛 노래 취급을 받는다. 주변에서 갈수록 죽은 언어 취급을 받는 순간 우리의 사고와 행동 안에서도 잊혀 간다.

인간이 정신적 존재일 때, 그리고 정신이 언어에 의해 규정될 때 인간은 말하는 존재다. 문제는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언어가 말하는 주체의 선택적 기능이 아니라는 점이다. 언어를 구성원에 의한 자발적이고 동등한 합의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사회의 강자나 지배세력이 자신의 영향력이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사용한다. 정신의 만족이라든가 공정한 목적으로 사용되기보다는 체제 모순을 은폐하는, 적극적인 이데올로기 기능을 한다.

기호를 생각하는 사람

언어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법 94-95p

이 지점은 심히 공감하는 바이다.

저출산과 저출생에 대한 논란, MZ세대라는 표현의 과도한 사용,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단어를 경계해야 한다. 언어는 우리의 생각에 침투해 사고를 조종한다. 어떤 말을 쓰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 정치권에서 만들어진 단어라던가 특정 혐오 단체에서 만들어낸 단어의 사용을 경계해야 한다. 사용하면 할수록 그들이 원하는대로 내가 움직이게 된다.

할 수 있다라고 외치던 펜싱 박상영 선수를 떠올려보라. 어떻게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까. 단순히 자신감이 아니다. 자신의 사고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할 수 있다라는 말과 함께 끊임없는 연습이 더해진 결과다.

“한남” “한녀” “기균충” “엘사” “딸피충” “잼민이” 등의 이상한 단어들을 당연하게 사용하듯 하면 나의 생각은 어떻게 되겠는가. 부정적인 말만 가득할 게 뻔하다.

 

 

 

 

 

상반신을 물들인 푸른색은 전혀 다른 의미로 통한다. 붉은색이 열정적 충동적이라면 푸른색은 차갑고 냉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푸른 머리는 즉흥적 사고를 거부한다. 날카롭고 정교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체계적인 논리를 세워나가는 이성적 사고를 상징한다. 푸른 가슴은 허리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육체적 충동을 막는 중이다. 뜨거운 하반신과의 경계선에 있기 때문에 현실과 몸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을 일정 부분 색이 섞이는 것으로 표현한 듯하다. 이러한 이미지에 적합한 영역으로, 한편으로 이성의 지배를 받지만 다른 한편으로 구체적인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이성이 만들어놓은 원리에 근거하여 본능적 충동을 통제하는 윤리적 사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성과 도덕에 의해 성적인 욕망과 쾌락이 은밀하게 유폐되고 부정당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화가는 '음울한 마법'이라는 제목을 통해 정신과 욕망이 분열된 현실에 비판적 문제의식을 던진다. 법적 윤리적 규범은 이성을 통해 정신과 마음을 지배한다. 보편적 원리와 냉정한 선악 구분으로 무장된 규범은 자연적 욕망을 자신의 토대를 허물어뜨릴 수 있는 적으로 규정한다. 성적 욕망을 유폐함으로써 분열된 삶을 강요한다. 하지만 욕망은 사라질 수 없다.

욕망을 생각하는 사람 /

쾌락이 정신병이던 시절 200p

차가움은 칼이다. 뜨거운 칼을 본 적 있는가? 칼은 뜨거우면 변형된다. 힘을 못 쓴다. 제 역할을 못하게

되니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다. 그래서 칼은 차갑다. 차가워야 한다. 칼은 어떤가. 딱 자른다. 이것 아니면 저것. 구분이 되어야 한다. 논리가 그렇고 이성이 그렇다. 구분이 되어야 구조화가 가능하고 체계를 만든다.

푸른색은 이성의 의미로 사용되는 이유가 색에 담긴

그런 의미가 있어서다. 붉은색은 열정이다. 붉은 악마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된다. 홍연도 마찬가지다. 전생에 서로가 소중한 인연이었기에 붉은 실이 서로의 새끼 손가락에 엮여있다고 하지 않는가. 청연?이라 하면 이상하다.

사랑을 의미하는 하트가 붉은색인 이유도 그렇다. 적십자의 구호를 상징하는 십자가도 붉은 색이다. 피는 무슨색인가. 빨갛다. 아니, 붉다. 그렇다면 피는 차가운가? 뜨겁다. 차가운 피는 없다. 외부에 나온 경우에만 차갑다. 수혈을 위해 냉장보관해야 한다거나. 우리는 이런 표현도 하지 않는가 “피가 끓는다.” “뜨거운 피가 흐른다.”

 

 

 

 

 

 

철학이 뭔지 생각하게 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접근하기 좋을 것이다. 글의 양도 많지 않고 미술작품과 엮어서 설명하니 말이다. 그림이 차지하는 분량도 있어 책의 두께가 그렇게 두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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