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무진기행
세계문학전집 149
지은이 : 김승옥
펴낸 곳 : 민음사
펴낸 날 : 2007년 08월 03일
“당신은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쐬고 그리고 돌아와 보면 대회생 제약 회사의 전무님이 되어 있을 게 아니에요?"라고, 며칠 전 날 밤, 아내가 나의 파자마 깃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나에게 진심에서 나온 권유를 했을 때도, 가기 싫은 심부름을 억지로 갈 때 아이들이 불평을 하듯이 내가 몇 마디 입안엣소리로 투덜댄 것도, 무진에서는 항상 자신을 상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과거의 경험에 의한 조건반사였었다.
무진기행 12p
무진은 주인공이자 이 소설의 화자인 윤희중의 고향이다. 대개, 고향을 떠올리면 바쁜 현대 문명 속의 휴식처, 안식처가 되어주는 공간으로 우리는 관념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 윤희중에게 무진이란 고향은 탈일상적 공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회적 위기, 개인적인 위기 때에 귀향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동안 고향에 내려오지 않았다. 서울에서 자리잡기 전까지 말이다.
이 단락의 마지막 "무진에서는 항상 자신을 상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과거의 경험에 의한 조건반사였었다."에서 알 수 있듯, 그에게 고향 '무진'은 실패의 다른 말과 같았다. 성공을 꿈꾸고 향했던 서울에서의 실패의 결과는 무진이었던 그에게 고향이 반가울 수가 없다.
"이제 3년 좀 넘었습니다." "특별한 용무도 없이 여행하시면서 왜 혼자 다니세요?" 이 여자는 왜 이런 질문을 할까? 나는 조용히 웃어 버렸다. 여자는 아까보다 좀 더 명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오빠라고 부를 테니까 절 서울로 데려가 주시겠어요?" “서울에 가고 싶으신가요?" “네” "무진이 싫은가요?” “미칠 것 같아요. 금방 미칠 것 같아요. 서울엔 제 대학 동창들도 많고.....아이. 서울로 가고 싶어 죽겠어요." 여자는 잠깐 내 팔을 잡았다가 얼른 놓았다. 나는 갑자기 흥분되었다.
나는 이마를 찡그렸다. 찡그리고 찡그리고 또 찡그렸다. 그러자 흥분이 가셨다. "그렇지만 이젠 어딜 가도 대학 시절과는 다를 걸요. 인숙은 여자니까 아마 가정으로나 숨어 버리기 전에는 어느 곳에 가든지 미칠 것 같을 걸요.""그런 생각도 해 봤어요 그렇지만 지금 같아선 가정을 갖는다고 해도 미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정말 맘에 드는 남자가 있다고 해도 여기서는 살기가 싫어요. 전 그 남자에게 여기서 도망하자고 조를 거예요.”
“그렇지만 내 경험으로서는 서울에서의 생활이 반드시 좋지도 않더군요. 책임, 책임뿐입니다.” "그렇지만 여긴 책임도 무책임도 없는 곳인걸요. 하여튼 서울에 가고 싶어요. 절 데려가 주시겠어요.?” “생각해 봅시다." “꼭이에요 네?"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28p에서..
서울의 음악대학을 나온 하인숙. 무진으로 잠시 내려온 윤희중에게 서울로 데려가달라고 한다. 그녀는 발령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곳 무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결혼해서라도 서울로 향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그녀의 말에서 무진은 어떤 곳인지를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긴 책임도 무책임도 없는 곳인걸요." 주인공과 함께 하인숙도 무진에 대해 같은 인식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둘은 이곳 무진에서 잠시 일탈을 즐긴다.
여자는 누운 채 내게 조금 더 다가왔다. 바닷가로 나가요.
네? 노래 불러 드릴게요. 여자가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일어나지 않았다. 바닷가로 나가요. 네? 방은 너무 더워요. 우리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백사장을 걸어서 인가가 보이지 않는 바닷가의 바위 위에 앉았다. 파도가 거품을 숨겨 가지고 와서 우리가 앉아 있는 바위 밑에 그것을 뿜어 놓았다.
“선생님.” 여자가 나를 불렀다. 나는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기 자신이 싫어지는 것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세요? 여자가 꾸민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기억을 헤쳐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언젠가 나와 함께 자던 친구가 다음 날 아침에 내가 코를 골면서 자더라는 것을 알려 주었을 때였지. 그땐 정말이지 살맛이 나지 않았어. 나는 여자를 웃기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여자는 웃지 않고 조용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한참 후에 여자가 말했다. "선생님, 저 서울에 가고 싶지 않아요." 나는 여자의 손을 달라고 하여 잡았다. 나는 그 손을 힘을 주어 쥐면서 말했다. "우리 서로 거짓말은 하지 말기로 해 "거짓말이 아니에요.” 여자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어떤 갠 날」 불러 드릴게요." “그렇지만 오늘은 흐린걸" 나는 「어떤 갠 날」의 그 이별을 생각하며 말했다. 흐린 날엔 사람들은 헤어지지말기로 하자.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가까이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끌어당겨 주기로 하자.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버렸다.
38-39p
무진이란 무기력한 공간 속에서 찾은 하나의 놀이였을까. 윤희중과 하인숙은 잠깐의 달콤함을 즐긴다. 그들의 대화를 보면 어떤 결의 사람들인지 알 수 있다. "자기 자신이 싫어지는 경험하신 적이 있으세요?" "코를 골면서 자더라는 것을 알려주었을 때였지" 그들은 선악과 같은 행위론이 아닌 미의 표현론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둘의 대화 이후에 하인숙은 서울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자신과 결을 같이하는 사람이 있으니 무기력한 무진의 공간도 달라지게 되는 거다.
나는 이모가 나를 흔들어 깨워서 눈을 떴다. 늦은 아침이었다. 이모는 전보 한 통을 내게 건네주었다. 엎드려 누운 채 나는 전보를 펴 보았다. “27일 회의 참석필요, 급상경바람 영” ‘27일’은 모레였고 '영'은 아내였다. 나는 아프도록 쑤시는 이마를 배개에 대었다. 나는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나는 내 호흡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아내의 전보가 무진에 와서 내가 한 모든 행동과 사고를 내게 점점 명료하게 드러내 보여 주었다. 모든 것이 선입관 때문이었다. 결국 아내의 전보는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흔히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그 자유 때문이라고 아내의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세월에 의하여 내 마음속에서 잊혀질 수 있다고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가 남는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다투었다. 그래서 전보와 나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한 번단, 마지 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을, 유 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전보여,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거기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어서 약속한다. 우리는 약속했다.
그러나 나는 돌아서서 전보의 눈을 피하여 편지를 썼다.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찾아가서 말로써 오늘 제가 먼저 가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만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 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바입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다 놓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였듯이 당신을 햇볕 속으로 끌어 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 대로 소식 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 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쓰고 나서 나는 그 편지를 읽어 봤다. 또 한 번 읽어 봤다. 그리고 찢어 버렸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서 나는, 어디 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40-41p
무기력한 공간의 무진에서 찾은 아름다움을 좇는 동지를 두고 떠나는 윤희중.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도 솔직하게 인정한다. 내가 너였기에 사랑했다며. 그런 속마음을 종이에 털어놓고 찢는다. 아내의 전보로 인해 미를 좇았던 무진에서의 순간이 부끄러움으로 바뀐 것이다. 선악의 행위론이 그에게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한여름밤의 꿈으로 치부해버리며 무진읍을 떠나는 윤희중. 무진기행은 그렇게 끝난다.
고향이란 무진에서 안정감을 느끼고자 찾았던 건,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던 하인숙이란 인물이었다. 둘은 무진을 사랑하지 못했다.
미를 좇고자 했던 서로를 사랑했다. 너에게서 옛날의 나를 보았고, 너에게서 미래의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짧지만 미를 좇았던 그 순간만큼은 무진이란 공간도 잊을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이어지는 단편이 있다. 모두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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