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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 신의 부재에 대한 무신론자의 논리적인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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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지은이 : 리처드 도킨스
옮긴이 : 이한음
출판사 : 김영사
출판일 : 2007-07-20

 

 

 

종교인들이 어떤 증거도 없을 뿐더러 증거가 있을 수가 없는 아주 세세한 것까지 지나치게 확신을 갖고 단언한다는 것이다. 아마 삼위일체설이라는 분야가 그렇듯이. 그저 조금 다를 뿐인 견해들에 유독 심한 적대감을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 신학적 견해들을 지지하는 증거가 전혀 없어서일 것이다.
2 신 가설 56p

이슬람, 유대교, 개신교 모두 하나의 신을 믿는다. 그것이 각각 하나님, 알라 등 이름이 다를 뿐이다. 증거주의를 채택한 오늘날,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종교인들이 확신에 찬 말로 신은 존재한다며 외치고는 한다. 예배를 드릴 때는 접신이 된 것처럼 몸부림을 치면서 신을 찬양한다.

무신론자를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없음에도 확신에 찬 말로 신의 존재에 대해 강력히 주장한다. 무논리로 논리성을 깨부수려 한다. 이렇게 극단적인 주장으로 믿음을 강요하면, 할 말이 없다. 무논리를 가진 사람과는 어떻게 해도 대화가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독창적이고 강력한 기중기는 자연선택을 통한 다윈의 진화다. 다윈과 그의 후계자들은 경이로운 통계적 비개연성과, 설계된 듯한 모습을 한 생물들이 어떻게 단순한 것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점진적으로 진화했는지 보여주었다.
4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한 이유 244-246p

다윈주의자 리처드 도킨슨. 신의 부재를 다윈이론을통해 자신의 주장을 이어나간다. 다윈이론이 중심 뼈대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하나, 우리 인간은 계속해서 진화해왔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의 형태를 조금씩 바꿔왔다. 최종 진화로 다른 유인원과 다르게 온몸에 털이 많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인간을 아담과 이브처럼 완성체로 창조했다고 말하는 창세기 1장은 궤변이 된다. 이 말에 종교인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극단적인 종교인들은 이 말을 듣고 나서는 건전하게 토론할 수 없을 거다. 신을 모독하는 행위라는둥 무논리성 주장을 들고 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종교가 스트레스를 줄임으로써 생명을 연장하는 플라세보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비록 그 이론은 많은 상황에서 종교가 스트레스를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유발한다고 지적하는 회의주의자들의 비판을 받을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평균 이하의 지성과 보통 사람의 약한 의지를 지닌 로마 가톨릭교도의 병적인 죄의식이 건강을 증진시킨다고는 믿기 어렵다. 가톨릭교도만 언급한다면 공정하지 못할 것이다.
5 종교의 뿌리, 종교의 직접적인 이점들 255p

종교가 플라시보 효과를 만들어낸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죽음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이기에 내적 불안이 강하다. 이 때문에 존재에 대한 물음이 시작되었고, 물음의 끝에는 결국 신의 존재로 향한다. 종교는 신을 믿으라고 하며 우리를 안심시킨다. 플라시보 효과가 나쁜 건 아니다. 다만, 이 효과가 작용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과연 종교의 존재가 중요할까?

모든 이에게 종교가 필요한 건 아니다. 그저 플라시보 효과 때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형제들이여, 그리 못되게 굴지 마시오. 보시오. 내게 남자를 알지 못한 딸이 둘 있소. 그들을 당신들에게 내어줄 테니 마음대로 하시오. 단 손님들을 건드리지 마시오. 그들은 내 집 지붕 아래 들어왔으니 말이오.” (창세기 19장 7-8절).
"형제들이여. 안 되오. 그리 못 되게 굴지 마시오. 이 남자는 내 집에 들어와 있으니 이런 어리 석은 짓 마시오. 보시오, 여기 처녀인 내 딸과 그의 첩이 있소. 그들을 내어줄 테니 욕보이든 마음대로 하시오. 하지만 이 남자에게는 몹쓸 짓을 하지 마시오(판관기 19장 23-24절)”
"그들은 아침이 될 때까지 그녀를 밤새도록 알아보고 학대했다. 날이 밝기 시작하자 그들은 그녀를 보내주었다. 동이 틀 무렵 그녀는 남편이 머무는 남자의 집 문 앞에 와서 쓰러졌고 날이 환히 밝을 때까지도 그대로 있었다. (판관기 19장 25-26절)"
“칼을 들어 첩을 뼈째로 열두 조각으로 잘라서 이스라엘의 모든 해안으로 보냈다.”<판관기> 19장 29절

 

 

창세기부터 판관기까지 이어지는 구약성서 내용이다. 이게 진짜 성경에 있는 것일까? 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과연 어떠한 이유로 신을 믿어야 하는지 종교인들에게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까. 옳고 그름의 문제를 신과 인간의 입장을 동등하게 놓고 보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신에게 그러한 기준을 들이대는 건 오만함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하면은 우리는 신을 왜 믿어야 하는 것인가. 누군가가 살해당했다. 신의 기준에서는 인간의 옳고 그름이 다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 없다고 답한다면, 그건 개소리다. 자꾸 무논리로 일관한다면 종교는 더이상 인간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창조한 이후의 세계가 아닌가. 신조차도 창조가 처음이기에 실수했다고 말할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전지적 작가시점의 소설을 읽으면 우리는 모든 인물의 심리와 대사 그리고 상황까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신이라는 작자가 그걸 몰랐다면 과연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인간이 만들어냈기에, 미숙한 것이다. 공통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한 작업을 거치는 중에 발생된 실수라고 말해야 설득력이 있다.

 

 

 

 

 

 

 

 

 

 

진정 어른다운 견해는 우리 삶이 우리가 선택한 만큼 의미있고 충만하고 경이롭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삶을 정말로 대단히 경이롭게 만들 수 있다. 과학이 비물질적인 위안을 준다면, 그것은 내 마지막 주제인 영감으로 이어진다.

10 신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 위로, 552p

어찌됐건 두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다. 이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더 행복하게 살아가야할 의미를 갖게 된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삶을 의미있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 신의 존재유무가 중점이 되어선 안 된다.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도 내밀라는 말을 종교 때문에 실천하는 건 생각이 짧은 것이다. 신이 없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인가?

 

 

 

 

“오로지 처벌이 겁나서 그리고 보상을 바라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한 것이라면 우리는 정말로 딱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분명히 예외가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집착하는 주된 이유는 종교가 주는 위로 때문이 아니라 교육에 따른 무의식적인 수용, 그리고 대안(믿지 않음>에 대한 인식 부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스로를 창조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틀림없이 그렇다. 그들은 그저 다윈의 놀라운 대안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아마 인간이 종교를 '필요로 한다'는 같잖은 신화에도 같은 말이 적용될 것이다.
588p, 문고판 서문

후반 문고판 서문에서 등장하는 문구를 읽다보면 깊게 찔리는 몇몇 이들이 있을 거다. 대안이 없기에 종교를 믿어야 한다는 차선의 선택이 된다는 건 좋지 않다. 믿음이 없는데 믿으려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건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려고 해야 생겨난다.

특히, 인간은 보이지 않는 걸 믿으려하지 않는다. 증거주의 원칙이 사법체계를 만들었고, 그 아래 우리는 고도의 문명을 이뤄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상대를 납득시킬 수 없다. 논리성이 없기에 그렇다. 과학의 발달은 인간이 가진 비가시성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인간이 쉽게 볼 수 없는 우주의 모습을 보게된 것도, 분자단위의 모습을 현미경으로 볼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인간이 가진 의심과 경계 때문이다.

신의 존재를 믿는 이들은 우주가 창조된 그 시작을 모른다는 이유를 종종 근거로 내세워 종교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다. 어느 한 점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을 거라고 이론적인 이야기는 있으나, 인간의 비가시성에 대한 불신 때문에 우주의 시작점에 대한 설명은 후대에게 맡겨야할 지 모른다.

 

 

 

 

 

 

 

총평

종교를 믿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다. 다만, 그 이유가 대안이 없다는 것, 우주 창조에 대한 헛된 망상이라면 접어둬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탄생을 이해했다. 심지어 살고있는 지구의 시작까지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사는 곳 바깥의 세상으로 나가 우주의 거대함을 알게 되었다.

자연을 거스를 만큼의 높은 추력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기술까지 만들었다. 이 모든 게 근 200년도 채 되지 않아서 모두 구축하게 되었다.

우리가 우리를 믿고 나아가지 않으면 인류멸종은 더욱 가까워질 거다. 환경문제도, 인구과잉문제도 종교가 해결해줄 수 없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된다. 종교는 인간의 정신적 도피처에 불과하다. 도피처는 영원한 안식처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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