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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조선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조선 후기를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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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지은이 : 탁현규 저자(글)
출판사 : 블랙피쉬
출판일 : 2023년 02월 22일




인물과 사물에 집중하기 위해서 바닥, 창, 문은 그리지 않았는데 이는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에 자주 등장하는 방법이다.

제1전시실, 풍류로 통하던 조선 양반들 -벼슬 없는 선비의 풍류 25p

김홍도의 포의풍류를 보면 이 점이 잘 드러난다. 당비파를 연주하는 선비 주위로는 칼과 서책상자 등이 널부러져 있으며 선비가 머무르는 장소는 그려져있지 않다. 그린 의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장소는 묘사하지 않았다. 그가 그린 풍속화는 대부분 이런 방법을 통해 인물과 사물 묘사에 집중했다.

 

 

 

 

 

 

 

 

 

 

 

신윤복이 여자였을 거라는 상상의 나래가 가능했던 것은 화가가 여인들만의 공간과 감정을 기가 막히게 묘사 하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108p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는 신윤복이 여자라는 설정으로 방영됐다. 주인공 문근영이 신윤복 역할을 맡았고, 이로 인해 우리는 신윤복이 여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판타지가 생겼다.

신윤복은 당시 여인의 모습을 많이 그려냈다. 사대부 여인이 사찰을 방문하는 모습, 기생이 공양을 드리러 가까운 절에 들리는 그림 등 여성을 그림에 대놓고 등장시키는 파격적인 행보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문종심사는 사대부 여인이 사찰에 들리는 장면을 담아낸 그림이다. 흰색 옷 차림은 사찰에 모신 위패 때문인 것처럼 보이나, 색이 있는 저고리를 보아서는 마음을 달래러 가는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말에 탄 여인과 말을 끄는 마부의 표정이 차분하다 못해 조심스러운 표정이다.

당시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사찰에서 종종 기도를 드리곤 했다. 기도만 드렸는데 왜 아이가 생길까… 이 뒤까지는 후설하지 않겠다. 상상에 맡기겠다.

 

 

 

 

 

 

 

 

 

 

신윤복의 그림 중 사대부 여인이 등장하는 것이 두 작품이다. 하나는 위에 말했던 문종심사 그리고 이부탐춘이다. 남편을 떠나보낸 과부가 봄을 탐한다는 뜻의 작품이다. 나무에 몸종과 함께 걸터 앉은 사대부 여인.

사대부 여인의 표정은 게슴츠레하다. 담장 사이로 들어온 개가 집에서 키우는 개와 짝짓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얼굴이 상기된 것이다. 두 마리의 개의 모습은 역동적이라기보단 다소 경직된 형태다. 주인공인 사대부 여인에게 시선이 가게 만들기 위한 연출이라 볼 수 있겠다.

지금 봐도 당혹스러운 느낌이 있는데, 당시에는 과연 어땠겠는가. 사대부 여인이 남편을 떠나보내고 계속 감춰야만 했던 욕망을 그림에 담아내다니 말이다. 조선 후기 풍속화가 어떠한지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으로 신윤복이 지금까지도 높게 평가받는 것이다.

에드가 드가의 “무대 위의 발레 리허설” 작품도 이와 비슷하다. 중인이었던 신윤복과 다르게 명문가 출신이었던 그가 발레리나를 그렸다. 이 작품을 보면 의자에 엉덩이를 길게 빼고 앉아 담배를 물고 있는 남자도 그려져있다. 이는 스폰관계를 묘사하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발레리나를 선택해 무대에 계속해서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준다거나 금전적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발레리나를 취한다.

당시 이 그림은 적나라한 묘사로 인해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이제는 그의 작품들이 뉴욕과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임금의 나이가 60세에 가까워지면 기로소에 들어가 정치를 한다. 남은 여생을 이곳에서 보낸다. 여기에 입소한다는 건 큰 잔치다. 임금이 장수했다는 걸 상징해서 그렇다. 숙종과 영조 그리고 고종까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이곳에 들어간 왕은 단 세 명이었다.

풍속화 소개가 끝난 뒤 궁중기록화가 소개된다. 그 중 숙종의 기해기사첩과 영조의 기사경회첩이 소개된다.

 

 

 

 

 

 

 

 

 

숙종의 기해기사첩 마지막에는 기로소 관리 11명의 초상화가 그려져있다. 미처 참석하지 못한 관리의 초상화도 담겨져있는데 이들에게 나눠주고 기로소에 보관할 1부까지 총 12부를 제작했다고 한다. 이때의 상황이 경사로운 일이며 모두가 기쁜 일이었다는 걸 생각해볼 수 있다.

반면 영조의 기사경회첩에는 기로소 관리의 몇몇 인물들이 빠져있다. 탕평책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안하던 관리들이다. 또, 바닥의 돌 모양을 비교해보면 숙종 때의 그림은 바닥의 크기가 큼직하다. 기사경회첩은 바닥의 돌 크기가 작게 그렸고, 많이 그려넣었다. 기해기사첩과 놓고 봤을 때 정확하게 그리게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책은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를 소개하며 조선 후기의 모습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화라는 우리 만의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던 건 조선 후기의 작품들이지 않을까. 우리나라 고유의 색이 이때부터 잘 드러났다.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처럼 당시 시대상을 솔직하게 그려낸 작품도 있으며 먹을 가지고도 여백을 살리려 했던 정선의 인왕제색도도 그렇다. 한국 특유의 미를 그리려 했던 점은 당시 시대는 조선 후기 화가들에게 큰 자유도를 줄 수 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친절한 도슨트와 함께 하는 조선 후기 작품 전시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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