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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인간의 대지 /인간의 근본적인 외로움을 다룬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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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대지
: 바람과 모래와 별

지은이 : 생텍쥐페리
번역 : 허희정
출판사 : 펭귄클래식코리아
출판일 : 2009년 06월 15일




만약 기계가 인간을 해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마 우리가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해서일 거야. 우리가 겪었던 것만큼이나 빠른 변화의 결과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시간 말이야. 이십만 년 인간의 역사에 비하면 100년 기계의 역사가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우리는 이제 겨우 탄광과 전력 발전소가 펼쳐진 풍경에 들어선 것뿐인데. 아직 다 짓지도 못한 새집에 이제 겨우 살기 시작한 셈이라고, 우리 주위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변해 버렸네. 인간관계, 근로조건, 풍습도 모두. 우리의 정신세계도 가장 밑바탕에서부터 뒤흔들렸지.

3장 비행기 58p 기요메에게 보내는 편지

다가올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면 이 부분은 그때나 지금이나 시대를 관통하는 말이다. 우리는 기계의 등장으로 인간성에 대해 혼란이 왔다. 처음, 노동의 개념이 등장하고 기계에 맞춰 움직이는 인간의 삶은 꽤나 잔혹했다. 기계처럼 같은 일을 반복하며 장시간 노동하는 것이 당연했고, 과로사로 세상을 떠나게 되더라도 그 자리는 다른사람이 대체되었다. 심지어 미성년자가 일을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현재 그 위기에 다시 직면해있다. 우리의 뇌를 대체할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인간이 해야할 일마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 아래 혼돈을 느끼고 있다. 그 이유는 불안정성이다. 존재에 대한 불안정성. 언제든 내가 대체될 수 있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무의식 중에 스쳐가는 철학적인 생각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이 만든 기술에 뒤쳐지지 않게 인간의 근간부터 다잡아야 한다. 그 시작은 과학에 대한 이해와 철학에 대한 관심이 될 것이다.











모든 진보가 우리가 겨우 체득한 습관 밖으로 우리를 더 멀리 쫓아내 버렸네. 그래서 우리는 말 그대로 아직도 조국을 세우지 못한 이민자 신세일세.

3장 비행기, 58-59p

인간의 대지는 인간이 가지는 외로움에 대해 은유적으로 잘 표현한 책이다. 이 대목도 그렇다. 기술의 진보로 인간미는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새로 짓는 아파트 단지는 놀이터를 단지 내 아이들만 사용할 수 있도록 외부인을 철저히 차단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더 높은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사람이 사람과 멀어지려 한다.

통신 기술의 발달로 사람과의 만남보다 전자기기를 마주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직접 두눈으로 사람을 만나려 하기 보다 한다리를 거쳐서 마주하려 한다. 통화는 긴장되고 무서우니 문자로 소통하길 희망한다. 그 문자마저 기업 플랫폼을 통해 소통한다.

이제 겨우 사람을 이해하려나 싶은 찰나에, 인간은 인간이 만든 기술에 의해 서로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지구를 떠나 멀리 은하계 밖으로 향하는 보이저 1호처럼 계속해서 멀어지는 중이다. 현재, 이념갈등을 넘어 성별혐오, 인종혐오, 인간혐오까지 생겨나는 중이다. 이 모두 인간이 만든 결과물이다.

이민자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 몸만 머무를 뿐 정신은 그곳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없다. 가파르게 변하는 진보의 시대 속에 인간은 스스로 이방인을 자처하고 있는 꼴이다.









여기에 음악가의 얼굴이 있구나. 여기에 어린 모차르트가 있구나. 여기에 생명의 아름다운 약속이 있구나. 전설에 나오는 어린 왕자들도 그 아이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보호받고, 사랑받고, 잘 교육받기만 한다면 그 아이가 무엇인들 되지 못하겠는가! 정원에 새로운 장미꽃이 돌연변이로 생겨나면 정원사들은 모두 야단법석을 떤다. 그 장미를 따로 심어서 가꾸며 특별 관리를 한다. 하지만 인간을 위한 정원사는 하나도 없다. 어린 모차르트도 다른 아이들처럼 판박이 기계에 찍혀 나올 것이다. 모차르트는 악취 풍기는 싸구려 라이브 카페에서 썩어빠진 음악을 연주하며 그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면 모차르트도 끝장이다.

8장 인간의 대지 214-215p

모차르트라는 인간의 개별성이 진보의 거대한 발바닥에 짓눌려 획일화된 인간이 생겨나고 그 결과로 그저 전자기기에 종속되어 생각하고 사유하는 행위는 고리타분하고 멍청한 짓으로 폄하된다. 독서는 무의미한 짓이며 재미가 없는 것이라며 평가절하한다.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근본적인 요인이었음에도 현대인에겐 그저 두꺼운 종이뭉치이다.

다양한 모습을 꿈꾸며 정원사가 정원을 가꾸지만 인간은 그러질 못한다. 일방향의 책상을 20개 가져다 놓은 공간에서 한 사람이 무대를 독차지 한다. 아이들은 사고할 순간조차 없다. 한 사람이 제공하는 정보를 듣고 처리하기 바쁘다. 결국 모차르트는 7080 라이브 카페에서 피아노가 아닌 기타를 잡게되는 운명이 된다.

이 대목에서 어린왕자가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순수함을 모아놓은 결정체라 말할 수 있는 어린왕자는 사라져가는 인간의 개별성을 일깨워준다. 인간의 대지에서는 개별성이라는 한 단어를 모차르트에 대입해서 설명했고, 어린왕자에서는 개별성이란 단어를 어린왕자에 투영시켰다.










그래서 나는 내 열차 칸으로 돌아왔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서 나를 괴롭히는 것은 동정심이 아니다. 끊임없이 재발하는 상처를 동정하는 일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저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여기서 상처를 입은 이, 피해를 받은 이는 개인이 아니라 인류와 같은 차원에 있는 그 무엇이다. 나는 연민을 믿지 않는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정원사의 관점이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 그것은 결코 이러한 비참함이 아니다. 나를 괴롭게 하는 건 사람들이 나태에 안주하듯 이러한 비참함에 결국 안주할 거란 사실이다. 동방의 사람들은 대대로 비참한 환경에서 살면서도 그 가난에 만족했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 무료 급식을 한다고 해서 이 괴로움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 그것은 저 올록볼록한 진흙 덩어리도 아니고 저 추함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저 인간들 한 명 한 명 안에 있는, 죽어가는 모차르트이다.

8장 인간의 대지 215p

여기서 화자는 외로움을 강하게 느낀다. 개별성이 사라지는 인간들을 보면서 회의감에 사로잡힌다. 각자의 마음 속의 어린왕자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보며, 세상이 비참해진다고 보았다. 적응이 인간의 본능인지라, 부정적인 것에도 쉽게 적응한다. 그걸 거부하고 발버둥치다 결국 순응하게 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건 개별성을 갖고 있음을 전제될 때라고 보았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나가며 그 안에서 역할을 다할 때 자유롭다는 것이다.

마지막장 인간의 대지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인간들을 바라보면서 슬픔과 공허함 그 어딘가의 감정을 느낀 것이지 않을까. 인간이 만든 기술에 잠식되어 인간을 멀리하게 되는 아이러니함을 마주하는 현실이 또, 그 진보에 따라가지 못한 채 인간이 겪는 혼란에 대해서 화자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총평

어렵다.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는 나로서 소설작품의 경우 음미할 여력이 부족하다. 은유적 표현과 흐름을 이해하고 생각하기에는 자투리 시간은 적합하지 않다. 이해하려 했으나 온전히 다 받아들이지 못해서 아쉽다.

인간의 외로움은 당연한 것이나, 현대에 들어서 그 정도가 심해졌다. 인간이 세운 자본주의 그 이념 아래 돌아가는 모든 것들이 인간을 바깥으로 내몰았다. 뭔지 모를 공허함이 더 커지고 있다.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에 살지만, 존재의 이유는 찾을 수 없다. 철학은 인터넷에서 검색한다고 알 수 있는게 아니니 말이다.

뭔가 아는 것은 많아지지만 그걸 생각하고 사유할 능력은 없는 사람들에게, 공허함이란 굉장히 무서운 감정이다. 진보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대지 않으려면 나를 다잡아야 한다. 철학은 그걸 도와준다.

이 책은 철학과 함께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았다면 깊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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