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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자존감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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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수업>



베이비붐 세대가 바라본 X세대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다. 회식을 선호하지 않으며, 칼퇴근은 당연한 것이고, 개인의 시간을 더 중시하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현재 부장직급의 세대라고 볼 수 있는 586세대에겐 회식은 당연한 것이고, 칼퇴근은 생각도 못했다. 개인의 시간조차 없었다. 공동체주의가 강했던 시기인 만큼 개인의 자유는 보장받지 못했다. 그들은 미래는 지금보다 좋아질 거라는 긍정적인 전망, 그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급성장하던 경제는 정체되었고, 밝았던 미래는 안개 낀 새벽녘처럼 불투명해졌다. 밀레니얼 세대(Y세대)는 학창시절 IMF로 인한 경제위기로 부모세대의 좌절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2008년 금융위기를 몸소 체험했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오늘을 투자하는 것은 도박과 같이 느꼈다. 고등교육을 받고 가장 똑똑한 세대라고 불리던 Y세대는 오늘을 위해 사는 ‘욜로족’을 택했다. 가성비보다 가심비를 택했고, 워라밸을 중요시하고, 틈이 나면 해외여행을 즐겨한다. Y세대는 먼 훗날의 나보다 오늘의 나를 사랑하며, 지금의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개인주의 시대가 도래한 현재,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의 내면은 어떠한지, 정신상태는 어떠한지. 이 책은 건강한 정신상태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이야기한다.





제목에 나와 있듯, 이 책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자존감’이다. 자존감이란 무엇일까. 자신감, 자존심, 자만심 다양한 표현들이 있지만 이 표현들은 자존감에 속해있는 하위항목들이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이란, 결국 자신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를 말한다. 스스로의 존재를 하찮게 여긴다면, 자신감도 낮을 것이고, 자만함도 없을 것이다. 자존감이 낮다고 설명할 수 있겠다. 반면에 자신의 존재를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면, 자신감도 높을 것이고 자만함도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이와 다르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 수도 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이는 자존감이 낮다. 아이는 부모와의 교감을 통해 정신적, 정서적으로 스스로에 대해 정체성을 확립한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아이는 사랑을 주는 법에도 서투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평생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 살지는 않는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며 배워간다. 부모에게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사회에서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스스로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노력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함으로 자존감이 높아진다. 그런 모습을 통해 주변으로부터 칭찬을 받으면, 자존감이 높아진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이는 자존감이 낮다.‘의 결론은 부모의 탓으로 돌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이의 잘못으로, 또는 남탓으로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는 것은 자존감 회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탓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환기시키는 것은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자기객관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더 추락시키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들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은 집단화를 통해 자연에서 생존했기 때문이다. 집단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약한 이는 주변의 눈치를 봐야한다. 상황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에 대해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유독 오늘 부장님의 얼굴이 밝다거나, 친구가 입은 옷이 잘 어울린다거나. 이에 대해 우리는 상대방을 칭찬한다. ‘오늘 기분이 좋아보이십니다.’ ‘옷 잘 어울리네’와 같이 말이다.



타인에 대해 칭찬하는 것은 인간이 늘 해왔던 일이다. 익숙하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을 칭찬하는 것은 참 낯설다. 타인을 칭찬하는 것에 관대하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에는 인색하다.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과 비교하며, 자신이 도태될까봐 불안함을 느끼고, 칭찬보다는 채찍질을 스스로에게 가했기 때문이다.





자존감의 상승요인은 외부에 있지 않다. 자신에게 있다.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현관 기둥에 새겨졌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기도 하다. 남을 비판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의미다. 보통은 그렇게 받아들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자신을 바라보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연예인이 선호하는 색깔, 꽃, 음악, 핸드폰. 타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어쩌면 2500년 전 인류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자신보다는 타인에 관심이 많은 인간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라고 한 이유를.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이별 후 ‘난 왜 연애를 오래하지 못할까.’ 나에게서 문제를 찾으려 한다. 또, 안좋은 일이 생기면 ‘그럴 줄 알았어.’와 같은 비관적인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계획했던 일의 일부를 실행하지 못하면, ‘난 왜 이럴까.’ ‘하는 일마다 왜 그럴까.’와 같이 스스로를 자책한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은 불안함과 우울함이란 감정을 갖고 오며, 이 감정들은 뇌를 지배하여, 판단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결국, 이러한 감정들은 일을 해내거나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 있어 아주 큰 걸림돌이 된다.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는 연예인들은 셀프칭찬을 많이 한다. 오늘 자신이 한 일중에 칭찬할 것들 5가지를 다이어리에 적기도 한다. 연예인은 많은 이들의 사랑도 받지만, 도를 넘은 비난과 악플들을 받기도 하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배우 정우성은 자신의 외모에 한없이 칭찬을 하는가 하면, 가수 이효리는 자신이 잘나갔음을 자랑하며 스스로를 칭찬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당한 모습과 함께 자신의 분야에 열심히 노력했고, 성공까지 이룬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존감이 높으면, 자신의 분야에서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자존감이 높으면, 실패해도 재빠르게 다시 일어나 도전할 수 있는 자세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보자. 어제 잘한 일에 대해 피드백을 하면서 말이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셀프칭찬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 우울함을 느끼고 있다면,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 느끼고 있는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면, 근본적인 것이 바뀔 수가 없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길 원하면서, 정작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한 모순이다. 나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세상 사람들보다 나를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나보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더 잘 안다는 것은 사회 속에서도 무의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뭘 잘하는지 모르고,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모른다면 내가 있을 그 자리는 로봇이 대체하면 된다. 인생은 자신이 선택한 것들로 이루어져있다. 자신에게 있어 주도적이지 못하면, 인간으로써 사회 구성원으로써, 필요가 없는 존재이다.



이 책은 자존감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자신의 결정에 끊임없이 질문하라고 말한다. 스스로가 선택한 결정에 비관적인 생각이 들지 않도록.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한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를 놀러갈지, 기본적인 생리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생각한다. 생각이 멈췄을 때는, 인간으로서 죽은 것이다. 뇌가 죽은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과 결정에 질문을 던져보는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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