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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나의 투쟁 | 전세계를 전쟁으로 내몰았던 똑똑한 악역,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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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나의 투쟁

|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인간의 광기의 역사


지은이 : 아돌프 히틀러
번역 : 이명성
출판사 : 홍신문화사
출간일 : 2006년 12월 10일






악역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모든 인간에게 저마다 스토리가 있듯, 악역 역시 나름의 시나리오가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들의 사연을 보면 악당이 될 만한 사연이 소개된다. 그래야 관객들 역시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13세, 18살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여의게 된다. 독일어를 쓰지 못하게 만드는 오스트리아의 정책에 반항심을 갖게 되고 국가주의적 마인드로 통일 국가를 염원한다.










생존경쟁이란 힘든 투쟁에서 만일 내가 연약한 감수성에 빠졌다면, 나는 그 타락과 절망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2장 빈 시절의 수업과 고난 중에서


히틀러는 5년 동안 노동자로서, 화가로서 생존을 위해 살아냈고 식비를 아껴 오페라를 구경했다. 이 외에는 그에겐 책이 유일한 친구였다. 굶주림과 가난은 그를 더더욱 이성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다. 감수성 따위 찾을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지금 당장 내가 배고프고 가난한데 말이다. 화가였던 자신의 꿈은 배고픔과 가난 덕분에 철저히 더 멀어졌다. 감성이 직업소양인 예술가에게 이성과 논리는 쓸데없는 것이었다.







인간생활에 있어서도 현존하는 악을 인위적으로 교화하는 것보다 오히려 장래의 발전을 위해 보다 건전한 길을 처음부터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2장 빈 시절의 수업과 고난 -개선하기 위한 길- 중에서



인간이 인간을 짓밟는 극단적인 비인도주의 행태를 자행한 그이나, 그의 생각 중에서 옳은 것도 있다. 모든 이에게 양면성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앞을 내다보려 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현재의 환경을 고쳐야 한다고 본 것이다. 시스템이 구축될 때 그에 맞게 사회는 발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과거, 자동차가 많지 않았던 우리나라는 고속도로 건설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자동차는 비싼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소수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교통량도 적었기에 넓은 도로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그러나 현재는 어떠한가. 1가구 당 자차를 2대 이상 소유하는 나라가 되었다. 넓은 도로에 차가 다니겠냐며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비난했지만, 현재는 그 도로가 매일 출퇴근 시간이면 꽉 찬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만을 위해서 투쟁한다. 내가 존경하는 것만 사랑하고, 적어도 알고 있는 것만 존경하는 것이다.

2장 빈 시절의 고난과 수업 -국민화의 조건- 중에서






위 문장은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자칫하면 극단적 이기주의로 빠질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문장을 보고 현실을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모든 이의 사랑을, 관심을, 존경을 받을 수 없다.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그 대상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관심을 넘어선 그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히틀러는 인간의 관심은 한계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국민화가 가능하려면 문화와 교육을 통해 자국의 문화와 경제 그리고 정치에 대한 위대함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고 보았다. 즉, 국가가 성장하기 위해서 개인은 자국에 관심을 두고 사랑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국민화는 개인이 국가에 귀속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이 국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국민화는 이뤄질 수 없다.



국가주의적 마인드가 조금 엿보이는 부분이다.










히틀러는 의회주의가 자연을 거스르고 개개인의 권리를 부정한다고 보았다. 대중은 복종하는 이보다 지배하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민을 대표해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건 대중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 보는 것이다. 대중은 대리자가 아닌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에서 온 것이라 볼 수 있다.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대중의 필요가 충족되려면 그들을 현혹할 수 있는 선전이 필요했다고 히틀러는 판단했다. 전쟁을 위해서 그가 대중들을 향해 선전하는 것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고 표현했다. 그 목적은 독일 국민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국민이 자유의 존엄성을 확보하도록 돕기 위해서 승리를 위한 전쟁을 대중에게 선전했다는 것이다.











많은 대중들을 선전하기 위해서는 대중적이어야 했다. 대중을 우매하고 둔한 존재로 본 히틀러는 선전 내용의 수준이 지적 수준이 가장 낮은 부류도 알 수 있어야 했다고 본 것이다. 선전할 대상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 대상의 지적수준을 더더욱 낮게 인식하고 선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점은 우리가 긍정적으로 이해할 부분이다. 히틀러가 말한 선전의 방법이 비교적 최근에도 사용되었다. 그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다.



트럼프가 대선에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화법에 있다. 그가 사용한 단어는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같은 단어의 사용이 잦았다. 언론에서는 그의 연설 수준은 중학생도 안된다며 비난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많은 대중들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고 결국은 대선승리란 결과까지 얻은 것이다. 대중을 향한 연설에서 필요한 건 ‘쉽게 말하기’ 이다. 히틀러는 그걸 알았다. 그는 똑똑한 이였다.









첫째는 신문을 읽고 그대로 믿는 자. 둘째는 읽은 것을 모두 믿지 않는 자. 셋째는 읽은 것을 음미하고 비판하고 판단하는 자. 대중은 첫째이다. 음미할 생각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는 단순한 부류다.

제 10장 붕괴의 원인 -세 가지 신문 독자의 그룹- 중에서



아돌프 히틀러는 대중을 능력없는 단순한 대상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사회와 국가가 나은 방향을 위해선 이들을 인도할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해야 한다고 보았다. 무능력하고 단순한 대중을 국가의 기반이 되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신체적 단련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허약한 육체가 인간을 비겁하게 만드는 첫 번째 해악적인 원인으로 이해했다.






살기 원하는 자는 마땅히 싸워야만 한다. 이 영원한 투쟁의 세계에서 싸우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살 가치가 없다.

제 11장 민족과 인종 -인종과 문화- 중에서



살고 싶다면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그 대상은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히틀러는 이 말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유지보수가 삶의 핵심이란 걸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이를 대중들에게 강조하고 독일의 재건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독일의 부흥을 이끌고자 했던 그의 꿈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던 패전 국가의 국민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문제는 비인도적 행위가 정도를 넘어서 상상할 수 없을만큼 이어졌고 끔찍한 비극을 낳았다는 것이다. 방향이 달랐다면 어쩌면 악당이 아닌 벤자민 프랭클린과 같이 후대의 국민들에게서도 두고두고 위인으로 평가받게 되었을 것이다.











총평

히틀러라는 악당을 누가 만들었다고 보는가? 독일국민? 아니다.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결과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 그 밖에 패권을 쥔 여러 유럽국가다. 독일어가 아닌 슬라브어를 사용한 오스트리아의 의회주의,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의 과도한 식민지배가 그를 악마로 만드는 데 나름의 기여를 했다.


뒤늦게 뛰어든 제국주의 국가 간의 패권 경쟁에서 밀려난 독일의 입장에선 그들을 무너뜨릴 결정적인 한방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식민지배를 할 수 있었으니까. 혼란스러운 시기에 등장한 히틀러는 독일 국민에겐 희망이었다.


전세계는 히틀러를 악마로만 기억하고 인식한다. 그저 나쁜 사람이라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이도 꽤 많다. 하지만 그를 악당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건 앞서 그가 말한 “음미할 생각도 그럴 능력도 없는 단순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가 증명하는 꼴이 되는 거다.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이와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만 봐도 알 수 있다. 언제든 이런 일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반성해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잔인무도하게 짓밟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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