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제2의 성(상)
지은이 : 시몬 드 보부아르
옮긴이 : 조홍식
펴낸 곳 : 을유문화사
펴낸 날 : 2016년 06월 15일
(1쇄 1993년 11월 20일)
법규를 만드는 것은 남자였다. 그들이 여자에게 예속적 지위를 준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어린애나 가축과 마찬가지의 호의로 여자를 생각 했다고 상상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여자의 압박 을 제정한 입법자들은 여자를 무서워한다. 여자가 간직하고 있는 상반되는 특질 가운데서 특히 불길한 면이 남겨져, 여자는 신성한 것에서 부정한 것으로 되었다. 아담의 반려자로서 주어진 이브가 인류를 타락시켰다. 이단(異端)의 신들이 인간에게 복수하려고 원할 때 그들은 여자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여자들 가운데 최초로 태어난 판도라가 인류를 괴롭히는 온갖 재앙을 흩뿌렸다. '타자'는 능동성에 대한 피동성이며, 통일을 깨뜨리는 잡다성이며, 형식에 대립하는 물질이며, 질서에 저항하는 혼란이다. 여자는 이와 같이 '악'에 바쳐졌다. 피타고라스는 "질서와 광명과 남자를 창조한 선의 원리, 그리고 혼동과 암흑과 여자를 창조한 악의 원리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마누법전은 여자를 악의 존재로 규정해 노예 상태로 두는 것이 적합하다고 쓰고 있다.
제1부 사실과 신화 제2편 역사 122p
여성에 대한 질 낮은 표현을 꼬집고 있다. 문화에는 그 시대의 분위기가 담겨 있다. 지난 문명사회에서 여자가 갖는 생물학적 우위에 대해 남자는 견제할 수밖에 없었다. 나 말고 딴 남자의 아이를 가져도 확인할 길이 없다. 당시에 어떻게 친자확인이 가능했겠는가. 남자는 여자의 이런 우위를 견제하기 위해서 속박해야 했다. 그게 최선이었다.
문명은 신뢰라는 관념이 거대해진 결과라고 보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서로 다른 이가 무슨 마음으로 결집해서 문명을 이룩했겠는가.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는 믿음, 모두가 각자 할 일을 나눠 맡는다면 큰 일도 가능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피라미드를 보라. 누가 그렇게 쌓을 수 있었을까.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근육과 체력 등 신체능력이 뛰어나야 했다. 그런 논리로 여자는 안전하게 집에 있어야 하며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주장이 성립됐다. 문명사회에서 최근까지 이는 암묵적으로 동의가 되었다.
계집 아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버지로서는 관대한 자비 행위이다. 여자는 자기에게 베풀어진 일종의 혜택에 의해서만 이런 사회에 들어갈 수가 있다. 남성처럼 정당하게는 들어갈 수가 없다. 아무튼 출생의 오손(汚損)은 그 어린애가 계집 아이일 때는 어머니에 대하여 훨씬 더 심각하게 생각된다. 헤브루 사람의 경우, 레위기는 그런 경우에 산부가 사내 아이를 낳은 것보다도 두 배나 더 긴 정화의 의식을 요구한다. '피의 값'의 풍습이 존재하는 집단에서도 희생자가 여자인 경우에는 약간의 금액밖엔 요구하지 않는다. 그 가격은 남성에 비하면 마치 자유인과 노예의 관계와 같을 것이다. 소녀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일체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결혼하게 되면 그 권한을 고스란히 남편에게 넘긴다. 여자는 노예나 우마나 물 건과 마찬가지로 남편의 재산이기 때문에 남편이 자유로이 많은 아내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일부 다처를 제한하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뿐이다. 남편은 자기 자의대로 아내들을 버릴 수도 있다. 사 회는 여자들에게 거의 아무런 보장도 부여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여자는 엄격한 정조를 강요당하고 있다. 터부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모권 사회는 아주 자유로운 풍기를 허용하였다. 결혼 전의 정조는 그다지 요구되지 않았다. 그리고 간통도 그다지 엄격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반대로, 여자가 남자의 사유 재산이 되면 남자는 여자에게 처녀성을 원하게 되며, 가장 가혹한 형벌하에 완전한 정절을 요구한다. 남의 자식에게 상속권을 넘겨줄 위험이 있는 짓을 하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가장은 죄를 진 아내를 사형에 처할 권리를 갖는다. 사유 재산이 계속되는 한에서는 부부간의 부정은 아내측의 대역죄로 간주된다. 오늘날까지 모든 법률은 간통에 관해서 불평등을 유지하면서 아내가 가정 안에 사생아를 끌어들일 위험이 있는 죄의 중대성을 논죄한다.
제1부 사실과 신화 제2편 역사 125-126p
간통죄에 관해 사생아가 발생할 우려가 있음을 설명하는 보부아르. 이는 리스크를 제거하기 위해 남자가 만들어둔 시스템 중 하나다. 사생아를 향해 “애비도 없는 호로자식”이라고 한다. 문명사회에서는 아버지를 확인할 수 없다면 그 존재는 부정되었다. 때문에 간통죄에서 여성이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 문명사회는 신뢰의 다른 말이다. 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면 어떻게 신뢰하겠는가.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생기고 이는 신뢰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족보와 가문을 따졌던 그 기저에는 신뢰다. 나라는 존재의 확인, 한 객체로서 증명을 해야 했다.
남성들에 의하여 장악된 경제적인 특권, 그들의 사회적 가치, 결혼의 영예, 남성에 의존하는 것의 효과, 이 모든 것은 여성들로 하여금 남자의 마음에 들도록 열렬히 원하게 한다. 여성들은 전체적으로 아직도 가신(家臣)의 신분에 놓여 있다. 그 결과 여성은 자기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여자를 정의하는 대로 자기를 인식하고 자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남자가 여자를 꿈에 그리는 대로 여자를 묘사할 필요가 있다. '남자의 눈에 비친 여자의 존재 방식'이 여자의 구체적 조건의 기본 요인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제1부 사실과 신화 제2편 역사 214p
남자가 만들어낸 문명사회 아래 여성은 혜택을 누리지 않은 게 아니다. 노동력을 쓰지 않고도 생계 유지가 가능했다. 피라미드 짓는데 여성이 동원됐는가? 검투사로 여자가 죽을 위기에 처해졌는가? 없다. 남자가 희생됐다.
문명사회에서도 남자는 소모되고 고갈되는 존재였다. 죽이고 죽고, 괴롭히고 괴롭혀지는 대다수는 남자였다.
어떤 점에서 남녀의 평등을 선언한 것은, 역설적이지만, 기독교이다. 기독교는 여자의 육체를 미워한다. 만약 여자가 육체로서의 자기 자신을 부정한다면 남성과 같은 자격으로, 구세주에게 속죄를 받는 신의 피조물이 된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들과 나란히 천상의 환희가 약속된 영혼들의 대열에 끼이게 된다. 남자도 여자도 신의 종이 되고, 천사와 같이 거의 무성화(無性花)되어, 성총(聖寵)의 가호를 입어 지상의 유혹을 물리친다. 만약 여자가 자기의 동물성을 부인한다면, 여자는 원죄의 육체화라는 사실에서 일변하여, 원죄를 극복한 선택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승리의 화신이 될 것이다. 물론 인간들의 속죄를 행하는 신의 구세주는 남성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자신의 구제를 위하여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인간은 가장 비천하고 가장 타락한 모습으로 순종적 선의를 표명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리스도는 신이지만 전 인류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 즉 ‘어머니인 처녀’이다. 하지만 여자에게 위대한 어신의 엣 특권을 부활시키는 것은 사회의 밖에서 행하여지는 여러 교파들뿐이다. 로마 교회는 여자가 남자의 부속물로 사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가부장제 문화를 표현하고 또 섬기고 있다.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하는 하녀가 됨으로써 축복받는 성녀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중세 중엽에 남자에게 유리한 여자의 가장 완성된 상(像)이 만들어졌다. 그리스도의 어머니의 얼굴은 영광으로 에워싸여 있다. 그녀는 죄지은 여자인 이브의 반대 모습이다. 그녀는 밤을 자기 발로 밟아 죽인다. 이브가 원죄의 중개자였던 것처럼, 성모는 구원의 중개자이다.
여자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왔던 것은 '어머니' 로서이다. 여자를 변형시키고 복종시키려고 한다면 그 모성속에서 이것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리아의 처녀성은 특히 하나의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그 사람을 통하여 육체의 죄가 속죄된 여자는 육체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만져진 일도, 소유된 일도 없었다. 아시아의 '대모신'에서도 남편은 인정되지 않았다. 그녀는 세계를 낳고 혼자서 세계에 군림했다.
제1부 사실과 신화 제3편 신화 259-260p
아담에게 선악과를 건넨 건 이브였다. 그 죄로 구약성서 속 여성은 유린을 당했다. 판관기 19장 레위인의 이야기를 보면 기겁할 만한 이야기가 나온다.
"형제들이여. 안 되오. 그리 못 되게 굴지 마시오. 이 남자는 내 집에 들어와 있으니 이런 어리석은 짓 마시오. 보시오, 여기 처녀인 내 딸과 그의 첩이 있소. 그들을 내어줄 테니 욕보이든 마음대로 하시오. 하지만 이 남자에게는 몹쓸 짓을 하지 마시오."
이브가 저지른 죄로 여자는 그런 존재로 소모된 것이다. 사실, 여자란 존재가 두려웠기에 성경 속에서도 그렇게 서술한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문화는 그 시대의 이야기들이 한데모여 탄생한 것이다. 성경도 그렇다. 당대 여자는 문명 속에서 조연이었다. 잔다르크가 있긴 하지만, 몇 안 되는 소수일 뿐 대부분 남자가 주연자리를 꿰찼었다. 인간은 시대 속을 살아간다.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때문에 여자는 남자에게 귀속되어 살았던 것이다. 그것이 마냥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이 문명을 탄생시켰으나 그 문명이 다시 인간을 집어 삼킨다. 기술의 진보에 치여 살아간다. 스마트폰을 만든 건 인간이다. 또, 그것에 의존하며 사는 것도 인간이다. 인간은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여자가 그런 취급을 받았던 것도, 당시 노예가 살았던 삶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그 사실보다는 여자가 처했던 역사에 대해 비관적으로만 설명하려고 한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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