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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백범일지 | 김구, 과연 그는 위인일까. | 10만원 권에 담길만한 위인이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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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백범일지
저자 : 김구
출판사 : 나남
출간일 : 2010.07.15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이어서, 일부분이 모자이크 처리되었습니다.


통감과 사략을 읽으며 유방의 일이나 한신의 전기를 볼 때 저도 모르게 어깨에 바람이 일었다.
P.34 중에서


영웅심리가 가득한 인물로 보인다. 책 초반부터 느껴지는 자부심이 담겨진 문장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50세가 넘어서 자신의 일을 자식에게 알려주겠다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저술의 이유를 밝혔다. 자신의 일은 의로움이 넘치는 행동들이었다고 자부하는 뉘앙스가 많다. 특히나 치하포 사건에서 그 정점이 드러난다.






먼저 발길질로 내치고 칼을 집어 난도질 했다. 그리고 그의 피를 마셨다. 죽은 이는 스치다라는 육군 중위였다. 그에게 있던 엽전 팔백 여냥을 뱃삯을 계산해 지급하고 극빈 가족에게 돈을 나누어줬다.
P.86-87 중에서

재밌는 건 치하포 의거라고 기술한 것이다. 이건 출판사에서도 수정해야 할 부분이다. 사건이지, 과연 의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잔인하게. 어떤 일도 관련없는 사람이었다.

김구는 신천 서부 유해순을 찾아갔다. 그는 ‘피비린내가 난다. 옷에 피가 왜 묻었냐’는 질문에 김구는 “길에 오다가 왜가리를 한마리 잡아먹어서 피가 묻었다”고 답했다. 의로운 행동을 했다는 영웅심과 남자들의 흔한 허세가 섞인 말이다.

유해순은 이어 집어온 일본군의 칼에 대해 물어보니 여보 노형이 동학 접주를 하던 때 남의 돈을 많이 강탈했다는 말을 듣고 강도질을 하러 왔다는 농담을 했다.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이 의롭다고 느낀다.

명성황후 시해한 군인이라 생각하고 보복한 스치다 육군 중위라는 사람의 신분은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일본 경찰의 보고에 따르면 스치다는 무역상이었다. 97년도에 작성된 “1895-96년 김구의 연중 의병 활동과 치하포사건*” 에도 상인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백범일지와 대한제국 조서의 내용이 일치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 백범일지에선 마치 소설 이야기처럼 과장된 표현만이 남았고, “나는 손으로 피를 움켜 마시고, 얼굴에다 처발랐다.” 라며 자신을 영웅처럼 묘사하고 있다.



* 도진순, 1895-96년 김구의 연중 의병 활동과 치하포사건 (1997) / 한국학술진흥재단 / 한국연구재단 1-25







60세가 넘으면 뇌가 퇴화한다고 말한 유시민의 발언에 따라 백범일지의 상당부분은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70세 가까이 된 당시 시대를 고려하면 초고령이다. 나름 그럴 듯한 이유로 저술의 근거를 설명하나, 결국 자신이 한 의로운 일이 계속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우리나라가 독립을 한다면 미천한 존재로 살아도 된다는 마지막 부분의 문장과는 저술의 이유가 상당히 대조적이다.








아산 배암밭 동네에 가 충무공 이순신의 기념비를 존경스런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P.137 중에서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다고 기술했다. 아무래도 의협심과 영웅심이 가득찬 김구에게 이순신 장군은 영웅이다. 이순신 장군은 처음 겪는 전쟁에 대비해 기록을 했다. 그 날의 날씨, 파도, 그리고 병력과 군품의 수까지 말이다. 존경한다고 말하던 김구 자신은 무엇을 했는가. 기록이라고 남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시대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우며 소설 속의 내용과 같은 문장들이 가득차있다. 뒤늦게 기록을 남기면서 이러한 과한 욕심은 덜어냈어야 했다.









이서방이란 자가 마곡사의 중으로 승려생활을 하자는 말에  거절 없이 따라간다. 본인 역시 그럴 의향이 있었다고 기술했다. 이렇다할 확고한 마음은 없어보였다.





이 자리에서 노형과 결정하면 무슨 필요가 있겠소. 절에 들어가 보아서 중이 되려는 자와 중을 만들 자 사이에 의견이 합해져야 할 것 아니오.
P.143 중에서

승려생활을 하니 적성에 맞지 않았다며, 부모님에게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절에 들어와 소식이 궁금하고 고후조 선생도 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자신의 스승인 보경당에게 금강산으로 가서 경전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그에게서 백미 열 말과 의발을 받는다.

쌀을 팔아 서울로 상경하던 중 17년 만에 탈옥했다가 다시 체포된다. 치하포 사건 때문이다.






투옥생활을 하며 겪었던 나름(?)의 경력 때문에 임시정부의 경무국장이 된다. 안창호 선생에게 문지기를 시켜달라고 하면서 김구의 그동안의 행적을 높게 산 것이다. (엉뚱한 일본인 한명 죽이고 투옥했다는 걸로 정부의 주요 인사가 되었다. 과연 이게 맞는 일인가.)


*경무국장은 경찰, 검사, 판사의 역할까지 모두 할 수 있었던 막강한 권한을 가진 직위였다.


철학도 변하고 정치 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나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라고 말한 김구. 그는 틀렸다. 민족의 혈통이란 게 과연 무엇인가. 이 맥락은 아리안 인종의 우월성을 드러내던 히틀러의 사고와 비슷하다. 종교의 다양성을 옹호하던 그의 모습에서 나온 이런 발언은 민족주의자 김구라는 인물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김구가 틀린 말만 한 것은 아니다.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 독재가 가장 무섭다고 말한다. 조선의 유교처럼 말이다.
P.435 중에서


종교는 인간을 구속하게 만든다. 특히 기독교의 경우 다른 종교에 대해 배척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데, 이는 종교에도 우월성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꼬집는 부분에서 김구가 한 말 중 가장 맞는 말이다.



또, 문화는 종교의 다양성에서 나온다고 보았던 김구. 당시의 시대 상을 고려했을 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시대가 가진 한계라고 볼 수 있겠다. 문화는 종교의 다양성이 아닌 개인의 다양성에서 출발한다. 이를 위해서 다양성을 꽃피울 수 있는 적절한 교육 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언론의 자유와 투표의 자유, 다수결에 복종 이 세 가지로 보았는데 이승만에게서 영향을 받은 듯 보인다.






총평

생각해보면 본인이 한 짓 때문에 1898년 3월 9일, 부모님이 해주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순검에게 체포되어 온갖 형벌을 다 받았다. 잘난 그 영웅심 때문에 말이다. 그 영웅심이 엉뚱한 사람을 잔인하게 죽였고 부모가 형벌을 받게되는 불효를 저질렀다.


억울한 일본인을 죽인 것 덕분에 임시정부의 경무국장 자리에 앉게 될 수 있었다. 과연 이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을 체포하고 구형하고 판결까지 내릴 수 있는 직위를 갖게 되었다. 정작 본인은 죄없는 사람을 죽였다. 누구를 체포할 권한이 심문할 권한이 판결을 내릴 권한이 있다고 보는가?


이순신처럼 영웅이 되고자 했다면, 정확하게 기록을 했어야 했다. 소설처럼 쓰면 안 됐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역사적 가치가 크다. 세세한 기록은 당시의 전쟁이 어떠했을 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백범일지는 어떠한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개인적인 얘기들만 가득해 시대 상을 생각하며 그려내기가 쉽지 않았다. 하편 임시정부에서 있던 일을 기록한 부분은 그나마 읽을 수 있었다.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김구에 대한 인물평이 점점 부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김구라는 인물을 너무 과도하게 치켜세우고 추앙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위인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10만 원 권에 올라갈 자격은 더더욱 없다고 본다. 일제에 대한 반감 때문에 김구라는 인물이 위대하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콩깍지에서 이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앞서 논란이 있을 것을 대비해 추가로 말을 남긴다.

이 내용에 반대되는 의견이 있다면 백범일지를 읽은 사람만 답해주길 바란다. 단순히 일본이 싫다는 이유로 김구를 칭송하고 논한다면 당신은 평생 일본의 정신적 노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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