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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거시기 머시기 : 이어령의 말의 힘, 글의 힘, 책의 힘 / 말듣쓰, 말하고 듣고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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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거시기 머시기

: 이어령의 말의 힘, 글의 힘, 책의 힘

지은이 : 이어령

펴낸 곳 : 김영사

펴낸 날 : 2022년 04월 06일

(1쇄 2022년 04월 05일)

여러분, 오늘 내 말을 녹음해가지고 집에 가서 풀어보세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거예요. 그것을 문자로 고쳐보세요. 내가 봐도 참 정떨어질 거예요. 내가 말한 걸 글로 쓰는 것, 글이라는 게 얼마나 자연에서 멀리 떨어진 것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지금 열심히 내 신체 기관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호흡이나 마찬가지예요. 나는 말을 많이 합니다. 나에게는 그게 숨 쉬는 거예요. 지식인들이 이 호흡을 안 하면 죽어요 누군가와 가만히 앉아서 맞선 같은 거 볼 때 말이죠,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어보세요. 숨 막힐 거예요. 그런데 글도 마찬가지예요. 글을 안 쓰고 있으면 지적 경련이 일어나요. 그래서 아까 내가 방학 숙제장이 무섭다고 했는데, 백지의 공포 흰 종이의 공포 때문이에요.

흰 종이가 앞에 있을 때 지식인에게는 그것을 메워야 할 의무가 있어요. <모비딕>에서 흰고래를 쫓아가지요. 왜 죽여야 하는지도 모르고 흰고래를 쫓아가서 막 죽이잖아요.

결국 작가란, 시인이란, 지식인이란 '모비딕'과 같은 거예요. 백지를 문자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이게 <모비딕>의 흰고래의 공포이고 흰고래를 죽이고자 하고 대결하고자 하는 강박관념이 지식인에게는 백지라고 하는 종이,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종이를 만난 것이죠.

3 페이퍼로드에서 디지로그로 : 종이의 과거와 미래, 백지의 공포 78-79p

 

 

하얀 것은 우리의 미(美)였다. 희고 곱다. 흰 것은 고결함을 나타낸다. 피부가 하얗고 예쁜 사람을 보며 “피부가 참 희고 곱네” 라며 말하곤 한다.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다. 미를 위해 그리지 않고 배경으로 남겨두었다. 김홍도의 “씨름”이라는 작품을 보면 씨름 하는 두 사람과 주변인물을 제외하고 배경이 없다. 자연스레 씨름하는 두 명에게 이목이 집중된다.

글쟁이는 조금 다르다. 덜어내지 못하고 계속 써야 한다. 비워둘 수가 없다. 페이지 수를 줄일 지언정 페이지에 공백을 남기지 않는다. 글쓰기는 조선의 미와 반대되는 것이었다.

보존성과 기록성의 모순에서 탄생한 아이가 바로 '가벼운' 종이예요. 이 '가볍다'는 성질 덕분에 종이가 다른 것을 무찌를 수 있었어요. 보존성으로 따지면 종이는 바위에 비해서 떨어져요.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비해서도 떨어져요. 기록성과 보존성을 고루 충족시키는 것은 종이뿐이에요.

보존성과 기록성, 종이는 이 모순의 아이예요. 종이의 모순은 참 상징적이에요. 사실 말을 글로 옮기고자 하는 것도 모순이죠. 여러분, 밤에 쓴 연애편지 보내지 말라는 말 있잖아요. 밤에는 근사하게 들렸던 말을 글로 옮겨 적어놓고 낮에 읽어보면 유치하고 정 떨어져요.

3 페이퍼로드에서 디지로그로 : 종이의 과거와 미래, 보존성과 기록성 사이에서 81-82p

 

 

가볍다는 건 이동성과 휴대성이 생긴다는 뜻이다. 언제 어디고 전달할 수 있으면서도 분실, 훼손, 도난에 취약하기도 하다. 손편지는 그런 점에서 낭만이 있었다. 주고 받던 손편지는 누군가의 방해로 버려지면 오해가 쌓인다.

영화 ‘노트북’이 그 예가 아닌가. 여주인공의 부모가 편지를 몰래 버린 탓에 남자는 그녀를 오해한다. 그리고 남자는 방황한다.

책은 기억의 저장으로 보면 책을 읽는 공동체에 의해 집필자와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개인이 읽는 것이 아니라 어떤 책들이 하이테크놀로지 시대의 집단 기억을 만듭니다. 독일에는 홀로코스트 같은 600만 명을 죽인 집단 기억이 있습니다. 이것이 남아 있는 한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얘기처럼 시를 말하지 못합니다. 600만 명을 죽인 그때 시인은 뭘 했으며, 지식인은 뭐였느냐 하는 게 바로 보는 상식이니, 적어도 홀로코스트로 600만 명이 희생당한 후에는 시를 얘기할 수가 없다고 얘기했죠.

[•••]

역사는 바꿀 수 없어도 책을 통해 집단 기억을 만들 수 있습니다. 독일 젊은이들이 전쟁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히틀러를 다시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역사를 긍정하는 모습을 보고 큰일 났다, 이렇게 가면 독일 젊은이들이 다시 이쪽으로 가게 된다, 그래서 만든 '홀로코스트'라는 영화와 책이 독일 젊은이에게 새로운 집단 기억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집단 기억 자체를 극복함으로써 오늘의 독일 사람들이 보고 스스로 나치의 후손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죠.

똑같은 일이 아시아에서도 있었는데, 아시아에는 그런 책을 통한 집단 기억이 없다는 겁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함께 원폭을 경험한 아시아인으로서 '히로시마'라고 하면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나오는 곳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피해를 입은 히로시마를 우리와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청일전쟁이 일어나는 바로 그 대본영이 히로시마에 있었습니다.

과거를 파내라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람, 한국 사람, 중국사람이 가지고 있는 집단 기억에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히로시마라는 한 장소에 두 개, 세 개의 집단 기억이 있습니다.

한쪽은 피해를 입은 원폭의 기억만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전쟁을 일으킨 것도 대본영이 있었던 그 자리에요.

그것을 국회로까지 가져와 총력전을 해서 히로시마가 아시아를 침략한 본거지였음을 일본 사람들이 망각하면, 공유가 안 된다는 것이죠.

과거를 용서하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과거의 집단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 다음에 오는 아이들은 새로운 집단 기억을 만듭니다.

160-162p 5 디지털 시대, 왜 책인가 : 인류의 집단 기억과 기억 장치로서의 책, 이어령의 맺음강연

*제20회 도쿄국제도서전 특별 대담(2013년 7월)

대담자: 이어링, 다치바나 다카시

 

 

공동체로 뭉칠 수 있었던 건 기록 때문에 가능했다. 책의 탄생으로 우리는 고도화된 문명에 살 수 있게 되었다. 농사직설이 집필되어 농사법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고, 조선왕조실록 덕분에 우리는 과거와 연결되어 성군과 폭군을 구분지을 줄 알게 되었다.

책은 시대를 담아낸 산물이다. 삼국지는 한나라 이후의 시대를 갖고 있으며, 구운몽은 조선 중기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태도가 다른 건 대학살에 대한 기록, 전범국가 시절 관련된 기록들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현재, 그것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을 뿐, 모두가 기억하고 반성할 수 있는 그런 책이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 피해를 담은 책이 없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 101 경찰대대의 사실들을 모은 책이라던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안네의 일기와 같이 다수에게 비수를 꽂을 수 있는 그런 책이 없다.

 

북한이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잖아요. ‘people'을 인민이라고 번역하느냐, 국민이라고 번역하느냐에 따라 국가 이념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 중국에서는 다 인민이에요. 우리는 국민이고 일본도 국민이에요. 똑같은 말 한 마디가 그 엄청난 사회체제를 나누는 이념의 언어가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은 언어를 알아야 해요. 지식인들은 선동의 언어인지, 정의의 언어인지, 창조의 언어인지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모르면 안 배운 사람들과 똑같이 부화뇌동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대학생이 뭡니까? 생각하는 사람이잖아요. 뭘로 생각해요?

언어로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언어가 병들고 잘못되었을 때 여러분은 잘못된 세계에서 잘못된 정보로 사는 거예요. 눈을 바로 떠도 힘들다는 것을 조금만 배우면 알게 돼요.

186p 6 한국말의 힘 : 토씨 하나만 고쳐도 달라지는 세상,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 글쓰기교실 초청 강연(2014년 5월)

 

 

“MZ세대” 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선동언어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부터 시작된 세대를 나타낸 표현은 더 많은 분열을 낳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청년, 청년, 마치 그들을 위하는 것마냥 외치다가 청년이란 말은 지겨워 만들어낸 후속작.

누군가의 의도로 생겨난 단어는 결코 좋은 의의를 갖지 못한다. 은어는 왜 은어일까? 특정 사람들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들끼리 소통하려고 만들어낸 인위적인 표현이기에 어감이나 뜻이 좋지 않다.

“킹받다”는 현재 공영방송 개그프로그램에 쓰이고 있다. 비주류를 억지로 끌어다 주류로 만들려는 시도는 추잡한 짓이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이다. 볕드는 곳에 어둠을 끌고오면 생명이 죽는다. 볕들지 않는 곳에 볕을 쬐어도 생명이 죽는다. 이끼와 같이 음지일 때 살아가는 생명이 있다.

우리가 눈을 뜨고 눈을 감기 전까지 계속 사용하는 언어. 심지어 눈을 감고 꿈을 꿀 때도 언어는 사용된다. 언어는 자연발생적이다. 자연스레 살아났다가 사라진다. 다수의 인간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그 말은 자연도태된다. 다만, 그 선택에 있어 분별있게 선택해야 할 것이다. “괴뢰”는 북한에서 우리를 향해 흔히 쓰는 표현이다. 선동의 언어다. 남한사람은 괴뢰집단이라며 사회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불온존재인 것처럼 자국민들을 세뇌시킨다.

히틀러가 유대인이 국가 파산의 원인이라며 떠들어댔던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어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언어는 우리 생활에 깊숙이 또 교묘하게 파고든다. 새로 만들어진 언어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

[•••]

더욱더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초롱꽃이에요. 초롱꽃은 강원도에서만 피는 꽃인데, 그 전설이 아주 슬퍼요. 병 든 누이를 위해서 동생이 추운 겨울에 산을 올라갑니다. 약초를 구하러 간 동생이 밤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요. 눈구덩이에 빠진 거예요. 그러니까 병약한 누이가 동생이 이제 오나, 저제 오나 초롱불을 들고 기다리다 얼어 죽었다는 거예요. 그 초롱불이 꽃으로 피어났다는 이야기가 초롱꽃 전설이에요.

이건 금강산 지역에만 있는 꽃이에요. 그런데 1911년 나카이 다케노신이라는 사람이 학명을 등록한 거예요. 조선 식민 문화를 제한했던 그 당시 하나부사 일본 공사가 학명을 연구해봐라 하니까, 이름을 Hanabusaya asiatica Nakai 로 등록해버렸어요. 발견한 자기 이름과 일본 공사의 이름을 따고 가운데에 생성지인 'Korea' 대신 'asiatica'를 넣어 서 'Hanabusaya asiatica Nakal'로 등록했어요. 금강산에서만 나는 슬프고 아름다운 전설의 초롱꽃이 세계로 나가면 ‘Hanabusaya asiatica Nakai'가 되는 거예요. 왜? 우리는 국제 정세에 어두웠기 때문이에요.

우리 식물을 우리 전설과 함께 세계에 알리지 못했어요. 돌 담에 무심코 피는 초롱꽃이 세계에서는 하나부사야 아시아 티가 나카이로 불리는 이런 아이러니는, 특히 시를 쓰는 사람 에게는 곤란하다는 이야기예요. 시인들이 초롱꽃 시를 쓰면, '하나부사야 아시아티카 나카이'가 되는 거예요. 이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이 글로벌한 시대에? 그러니 여러분은 제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 자기 이미지를 스스로 버리면 안 된다는 거예요.

216-217p 6 한국말의 힘 : 토씨 하나만 고쳐도 달라지는 세상, 푸른색과 초록색의 차이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 글쓰기교실 초청 강연(2014년 5월)

 

 

이 대목은 그의 다른 저서 “짧은 이야기 긴 생각”에서도 등장한다. 나라의 힘이 없어서 말의 힘도 사라졌던 우리. 토박이말로 밖에 표현이 안 되는데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맞아야만 했던 억울했던 지난 날. 선조가 남긴 이름짓기 방식마저 네 글자의 한자 조합으로 변환되어야 했다.

매일 아침 등굣길에서는 “와타나베”와 같이 다른 이름의 가면을 써야만 했다. 동심어린 아이들에게 쥐어진 건 약탈자의 가면이었다. 수탈자가 약탈자의 가면을 쓰고 약탈자가 되어야 했던 패러독스. 어린아이가 그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설화는 일본학명에 가려진 채 자국민조차 모른채 살았다. 우리 문화를 우리가 모르고 산다는 건 힘이 약한 자들의 숙명이다.

약자는 문명의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가 없다. 그럴 여유가 없기에 시야 조차 좁다.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 약탈자의 가면을 쓴 채 어떻게 수탈자의 문화를 바라볼 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하나부사야 라는 학명의 꽃을 볼 뿐, 초롱불을 들고 기다리던 누이가 꽃이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래는 짧은 이야기, 긴 생각이란 저서에 실린 “04 국토와 국어에서 산다”라는 제목의 산문이다.

04 국토와 국어에서 산다

금강산 산골 마을에 의좋은 남매

단 둘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누이가 병이 나자

동생은 약초를 캐려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밤이 되어도 동생이 돌아오지 않자

누이는 아픈 몸을 이끌고 마중을 나갔습니다.

추운 겨울 밤 초롱불을 밝히며 애타게 기다리던 누이는

끝내 숨지고 맙니다.

봄이 되자 그 자리에 풀이 나고

초롱을 닮은 작은 꽃이 피어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금강산 언저리에서 자생하는

희귀종 초롱꽃 전설입니다.

세계로 알려진 이 금강 초롱꽃의 학명은

하나부사야 아시아티카 나카이

(Hanabusaya asiatica Nakai) 라고 합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조선이나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은 물론이고

금강산이나 초롱이라는 말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대신 엉뚱하게도 하나부사(花房)라는

구한말의 초대 일본 공사와

그의 제안으로 조선 식물을 조사해 등록한

식물학자 나카이(中井)의 이름이 학명으로 등록된 것입니다.

초롱꽃뿐이겠습니까.

한국을 대표하는 인삼은 진생(ginseng)이라 부르고

옷칠은 아예 재팬(japan)이라고 부릅니다.

매화는 재패니스 애플리컷(iapanese apricot flower)이고

십장생의 단정학은 재패니스 크래인 (japanese crain)이라고 합니다.

은행도 중국이나 한국이 아닌

일본식 한자 발음으로 징코(gingko) 라고 부릅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만이 아닙니다.

나라의 힘은 말의 힘으로도 나타납니다.

나라는 흙으로 된 국토와 언어로 된 국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국토를 지키는 것이 군인만이 아니듯이

국어를 지키는 것은 시인만이 아닙니다.

김치가 기무치로 불리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되어야 합니다.

28-30p 1 느껴야 움직인다

짧은 이야기, 긴 생각 中에서..

절대 국수주의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에요.

거기서부터 출발하라는 거예요.

자, 시조를 보세요. 정조가 한문으로 모든 걸 처리할 때도 뒤죽박죽이라는 말은 도저히 한자로 못 쓰니까 여길 보세요. “뒤쥭박쥭.” 다 한자로 썼는데 도저히 한자로 표현을 못해 이건 한글로 썼어요. 김삿갓이 물고기가 스물스물대는 걸 도저히 한자로 표현을 못하니까 수水자, 물物자를 써서 "수물수물"했거든요.

절대로 다른 나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어요. 내 생명이기 때문이에요. 그걸 잡으라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은 아무리 학원을 다니고 대학을 다녀도 못 얻는 지혜를 얻는 거예요. 언어에서 새 사고가 나오는 거예요.

218-219p 6 한국말의 힘 : 토씨 하나만 고쳐도 달라지는 세상, 푸른색과 초록색의 차이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 글쓰기교실 초청 강연(2014년 5월)

 

 

가끔은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 될 때가 있다. 한자어 때문이다. “불가능”보다 “손쓸 수가 없었어”라는 표현이 더 와닿을 때가 있다. 토박이말은 그런 것이다. “떼”도 그렇다. 떼를 지어 다니다. 떼쓰지 말라. 몽글몽글한 순두부, 뭉개뭉개 구름, 몽글몽글한 마음. 설명할 방법이 없어 우리는 우리말을 꺼낼 때가 있다. 한자가 한계에 부딪힐 때 우리는 그걸 넘어선 표현을 찾아내곤 했다.

사뿐사뿐 걷는 걸 뭐라고 표현하겠는가.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서 이야기하면 맞았다. 일본 국적의 선생은 어린 아이들을 그렇게 교육했다. 토박이말이 들리면 그런 말을 쓰지 말라며.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지 덜컥덜컥 거리지 않는다. 덜컹덜컹 거리지도 않고. 토박이말은 치트키와 같다. 설명되지 않을 것 같던 것도 설명이 된다. 이 책의 제목처럼 말이다. “거시기” “머시기”

 

그런데 우리나라 말은 한자가 들어와도 황토흙이라고 하고, 동해바다라고 해요. 여러분에게 나눠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보면 내가 황토흙이라고 표현했어요. 그런데 교정을 보는 편집자가 계속 흙 자를 빼는 거예요. ' 황토' 하면 리듬도 안 맞아요. 흙을 넣으면 또 교육부에서 겹침말 안 쓴다고 빼는 거예요.

그래서 내 책이 무수히 많은 판을 찍었는데 황토흙이라고 된 것도 있고, 황토라고 된 것도 있어요. 그건 내가 최종 교정을 못 본 책이에요. 송창식이 노래 부를 때 "동해바다로 고래 잡으러 가자"고 하지, "동해로 고래 잡으러 가자"고 해요? 처갓집도 마찬가지예요.

한자만 그러면 말을 안 해요. 일본 말도 마찬가지예요. 모찌가 떡인데 우리는 모찌떡이라고 해요. 빵이 서양 말인데, 빵떡이라고 해요. 깡이 'can', 즉 통인데 깡통이라고 말해요.

그러니 이건 우연이 아니라 한자든 일본어든 영어든 외래어가 들어오면 반드시 우리말을 거기에 붙여서 흔적을 남긴다는 거예요. 무수한 한자, 교활한 일본어, 압도적인 서양말 중에 그래도 눈물의 흔적처럼 내 것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교육부에서 겹침말이라고 못 쓰게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말이 아니라, 우리의 어법이라는 이야기예요.

220p 6 한국말의 힘 : 토씨 하나만 고쳐도 달라지는 세상, 푸른색과 초록색의 차이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 글쓰기교실 초청 강연(2014년 5월)

 

일본은 무조건적인 수용이었다. “hammer” 망치라는 뜻의 이 단어를 “大ハンマ”(오오함마)로 말한다. 중국은 코카콜라를 可口可乐로 자기네 방식으로 바꿔서 말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것은 본래의 단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우리만의 방식으로 재해석 할 수 있는 것들은 우리 입맛에 맞췄다.

깡통, 동해바다, 서해바다, 산자락 등 한자어 뒤에 꼭 우리말을 붙였다. 기찻길, 사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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