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부활 1 / 선(善)을 잃어버린 두 남녀, 다시 부활한 선의 의지
이 포스팅을 읽기 전 참고 사항
- 개인적인 후기일 뿐,
독서 전 반드시 참고할 건 아니니
가볍게 읽기를 바란다.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부활 1
지은이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옮긴이 : 박형규
펴낸 곳 : 민음사
펴낸 날 : 2003년 11월
여죄수 마슬로바가 이제껏 지내온 과정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마슬로바는 남편 없이 남의 집에서 일하던 하녀의 딸이었다. 그 하녀는 지주인 두 자매의 소유지인 마을에서 가축을 돌보는 늙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일정한 남편이 없는 이 여자는 해마다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어느 마을에서고 으레 그렇듯이 필요 없는 자식은 일에 방해만 될 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세례만 받게 하고 그 뒤 젖을 주지 않아 굶어 죽고 마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다섯 아이가 죽었다. 다섯 아이 모두 세례를 받았으나 통 젖을 먹지 못해 죽고 말았다. 떠돌이 집시와의 사이에서 난 여섯째 아이는 계집애였다. 이 아이 역시 똑같은 운명에 처해질 수밖에 없었으나, 결혼하지 않고 나이 든 두 자매 지주 중 한 사람이 크림에서 소 냄새가 난다고 가축지기를 탓하러 축사에 갔다가 우연히 이 어린 계집애의 생명을 건져주었다. 축사에는 귀엽고 건강해 보이는 갓난아이가 산모 곁에 누워 있었다. 여지주는 크림에 대해, 또 산모를 축사에 있도록 한 것에 대해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은 뒤 나가려다가 문득 아기를 들여다보고는 측은한 생각에 그만 대모가 되어주겠다고 자청했다.
제1부 14-15p
부활 1권의 시작은 네흘류도프와 죄인이 되어 마슬로바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마슬로바(카튜샤)의 유아기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있다. 마슬로바의 삶이 기구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서사가 있는 대목이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네흘류도프는 마음속으로 중얼 거렸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분명 마슬로바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음을 알았다. 한때 사랑했던 여자, 그렇다 미칠 듯한 일정에 쫓기어 유혹했다가 버린, 고모 댁의 양딸이자 몸종이기도 했던 바로 그녀였다. 그는 이제껏 한번도 그녀의 일을 머리에 떠올린 적이 없었다. 그 추억은 그에게 심한 고통을 주고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의 죄를 드러내어, 자신은 고결함을 가장 큰 자랑으로 삼고 있는데도 이 여자에 대해서만은 고결하기는커녕 비열하기만 할 뿐인 행동을 했다는 것을 뚜렷하게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로 그녀였다. 이제 그는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특징으로 그녀를 다른 사람과 구분 지어주는 신비한 특징을 그녀의 얼굴에서 찾아냈다 얼굴빛은 부자연스러우리만큼 희고 살이 쪘으나 그녀만이 갖는 사랑스러운 특징은 그녀의 얼굴에도 입술에도 약간 사팔기 있는 눈에도 그리고 천진스럽게 미소짓는 눈초리에도, 아니 얼굴 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에서 감돌고 있었고 어떤 질문에도 선뜻 응할 용의가 있다는 표정에서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제1부 60p
한동안 잊고 있었던 마슬로바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 네흘류도프. 귀족으로서 품위와 고결함을 지켰다고 생각한 그에게 마슬로바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보아도 기억이 선명하리 만큼 떠오르는 그녀. 마슬로바는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감옥에서도 많은 남성들에게서 유혹을 받는다.
"마침내." 하고 서기는 낭독을 계속했다. "카르틴킨은 상인을 잠재우기 위해 마슬로바에게 가루약을 준 사실도 인정했다. 그러나 두 번째 진술에서 그는 돈을 훔치자고 공모한 사실도, 마슬로바에게 가루약을 준 사실도 모두 부인하고 마슬로바를 단독범으로 몰아 그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있다. 보치코바가 은행에 예금한 돈에 대한 질문에는 보치코바의 말대로, 그녀와 함께 십이 년 동안 여관에서 일하면서 손님들로부터 팁으로 받은 돈을 모은 것이라고 말했다."
제1부 66p
네흘류도프는 배심원으로서 참석하여 마슬로바를 보게 되었는데, 억울하게 그녀의 억울한 상황을 듣게 된다. 마슬로바가 가볍게 살아온 내막을 알아서였을까. 범행을 모두 카튜샤에게 뒤집어 씌운다.
"그렇다면 상인 스멜리코프에게 가루약을 탄 술을 마시게 한 행위에 대해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가?"
"그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이야기한 대로 그것이 수면제라고, 아무 해도 끼칠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죽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원치도 많았습니다. 하느님께 맹세코 말씀드리지만 그런 일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어요." 그녀가 말했다.
제1부 70p
적극 소명하는 마슬로바. 미필적 고의라고 이야기한다. 손님이 자신을 잡고 놔주지 않아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을 한다. 네흘류도프는 그녀에 대한 과거의 죄책감 때문인지, 그녀를 도와주고 싶어하게 된다.
고모네 집에서 보낸 이 해 여름은 네홀류도프에게 넘칠 듯한 감정을 맛보게 해주었다. 그것은 청년으로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인생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인생이 인간에게 지워준 사명의 완전한 의미를 깨닫고, 자신과 전 세계의 완성을 향한 끝없는 추구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신이 품고 있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는 데 희망과 더불어 뚜렷한 자신감을 가지고서 헌신할 때만이 맛볼 수 있는 그런 감동이었다. 그해에 그는 학교에서 스펜서의 『사회 평형론』을 탐독했는데, 자신이 대지주의 아들로 상속자인만큼 토지 사유에 대한 스펜서의 이론은 그에게 특히 큰 감명을 주었다. 아버지는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으나 어머니는 결혼할 때 지참금으로 1만 제사티나의 토지를 가지고 왔다. 그는 그때 겨우 토지 사유가 잔혹하고 이치에 어긋나는 행위임을 알았다. 천성적으로 도덕적 요구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 않고 거기에서 정신적 만족을 느끼던 네흘류도프는 토지 소유권을 상속받지 않기로 맘먹고 아버지의 유산으로 상속받은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눠주었다.
제1부 78-79p
소명 장면 이후에는 네흘류도프와 마슬로바의 만남이 있었던 과거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톨스토이는 헨리 조지에게 영향을 받았는데, 토지 소유에 대한 이론을 따랐던 걸로 보인다. 네흘류도프는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했다. 소유를 곧 부도덕한 걸로 보았는데, 톨스토이가 말년에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려고 애썼던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카튜샤는 윤기 있는 까만 눈을 빛내고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에게 달려갔다. 그들은 서로 달려와서는 손을 마주 잡았다. "어머나. 찔리셨군요!"하며 카튜샤는 한쪽 손으로는 땋아 늘인 머리채를 매만지며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웃음 띤 얼굴로 네홀류도프를 쳐다보았다. "저런 곳에 도랑이 있다니 뜻밖인걸." 그녀의 손을 꽉 쥔 채 그도 웃으며 말했다.
카튜샤는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자 그도 영문도 모른 채 그녀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카튜샤는 얼굴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았다. 그는 카튜사의 손을 힘껏 쥐고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였다.
제1부 81p
젊은 혈기의 두 남녀에게 여름은 그렇듯, 뜨거운 계절이다. 둘은 사랑에 빠진다.
삼 년 전에는 솔직하고 이타적이며 좋은 일에는 기꺼이 몸까지 희생하는 젊은이였으나 이제는 타락하여 쾌락만을 찾는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예전의 그는 주위의 세계가 신비롭게 여겨져 기쁨과 감동으로써 그 신비로움을 밝혀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 생활의 모든 것이 단순하고 명백했으며 그 자신을 둘러싼 생활 조건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 무렵엔 자연 속에 파묻혀, 자기보다 훨씬 이전에 사색하고 느끼고 한 사람들(시인. 철학가)을 아는 게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 사회의 모든 제도와 친구들과의 교제가 더 필요하고 중요해졌다. 그 무렵 여자란 신비롭고 매혹적인 것, 즉 신비롭기 때문에 매혹적으로 보이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가족이나 친구의 아내를 제외한 모든 여자들의 의미란 지극히 간단하고 명료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여자란 그동안 경험한 향락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1부 85p
네흘류도프는 카튜샤와의 이별 이후 가벼움을 택하게 되었다. 쾌락을 주는 존재로 여자를 생각하게 된 네흘류도프. 군대에서의 삶이 그를 변화하게 만든 것일까. 사색하고 지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그저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 뭐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 사람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흘류도프의 선택은 극단적이었다.
이러한 무서운 변화는 그가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남을 믿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믿지 않고 남을 신뢰하게 된 것은 자기를 믿고 삶을 개척해 나간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었다. 우선 자기를 믿는다면, 모든 문제는 언제나 안이한 쾌락만을 찾는 동물적인 자아가 아닌, 이와는 반대의 측면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그런데 타인을 믿는다면 그가 해결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게 다 해결되어 있었다. 대개 정신적 자아에 반하여 동물적 자아가 유리하게 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을 믿으면 항상 사람들의 비난이 따랐으나 일단 남을 믿자 주위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가 있었다.
이틀테면 네흘류도프가 신이라든가 진리, 부, 가난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읽거나 말하면 주위 사람들은 이를 당찮게, 사리에 맞지 않은 웃음거리로 여겼다. 심지어 어머니와 고모들까지도 이를 점잖게 놀리며 그를 우리 철학선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제1부 86p
귀족으로서 고결함을 지키려고 했던 네흘류도프. 반면에 주변인들은 그러지 않았다. 철학을 생각하고 의미를 찾는 것을 웃음거리로 보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동화되니 지지를 얻게 되었다.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더 편해졌다. 나 혼자만 주관을 고집하면 삶이 피곤해진다. 피곤한 삶을 사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때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다만, 네흘류도프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마치 안나 카레니나 작품 속 레빈의 주변인들처럼 말이다.*
* 레빈의 주변인들은 결혼이란 집안의 만남일 뿐이며, 연대를 위한 것으로 보았다. 남녀의 사랑은 중요하지 않게 보았다.
[•••]
마찬가지로 네홀류도프가 성년이 되어 토지 사유는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부친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약간의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었을 때 어머니를 비롯한 집안 식구들은 놀라워했고, 친척들의 조소와 비난이 따랐다. 게다가 토지를 나누어 가진 농부들의 생활이 부유해지기는커녕 마을에다 술집을 세 군데나 세우고 아예 일을 않게 되어 오히려 더욱 가난해졌다고들 이야기했다. 한편 네흘류도프가 근위대에 들어가 명문가의 동료들과 함께 낭비를 한다든가 도박으로 돈을 날려 얼마큼의 돈을 꺼내야 할 경우에도 어머니, 엘레나 이바노브나 공작 부인은 이런 것은 상류 사회의 젊은이들이 당연히 경험하게 되는 홍역쯤으로 생각하여 조금도 탓하지 않았다.
제1부 87p
신념을 따랐을 때 주변인들의 반응이었다. 토지를 나누어 준 것에 지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네흘류도프는 노동능력을 상실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가벼워지기로 선택한 것일지 모른다. 가벼워지기로 하니, 어떤 문제가 생겨도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궂은 소리를 하지 않으니 말이다.
나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고 이를 위해서는 전 세계의 행복이라도 희생시키는 동물적인 자아였다. 페테르부르그에서의 생활과 군대로 인해 갖게 된 에고이즘의 발광 상태에 휩쓸려 있던 이때는 동물적인 자아가 정신적인 자아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카튜샤를 만나 그녀에 대한 옛 감정이 되살아나자 정신적인 자아가 고개를 쳐들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부활제까지의 이틀 동안 네홀류도프의 마음속에서는 자기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던 갈등이 연이어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되도록 빨리 이곳을 떠날 필요를 느꼈다. 이젠 출발해야만 하고, 사실 더 이상 고모 집에 머무를 이유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제1부 95p
잠시 들린 고모의 집에서 카튜샤를 통해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가볍지 않았던 시절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상속으로 인한 토지 소유는 부당한 것이며,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 말이다. 청춘을 그리워하듯, 지난 날의 자신의 모습이 다시 부활했다. 토지 상속으로 인한 소유는 부당한 것이며,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던 정신적 자아가 강했던 내가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카튜샤, 잠깐만." 그가 말했다 그녀는 돌아보더니 멈춰 서서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 그저.......”
그는 겨우 스스로를 격려하며 이런 경우에 처한 같은 입장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하는 행위를 떠올리면서 카튜샤의 허리를 껴안았다.
그녀는 두려운 듯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안 돼요.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이러시면 안 돼요." 그녀는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로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말했다. 그러고는 허리를 안고 있는 그의 손을 거칠게 힘껏 뿌리쳤다.
네홀류도프는 손을 놓았다. 순간 어색함과 부끄러움,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혐오감까지 느껴졌다. 그때 그 자신을 믿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 어색하고 부끄러운 감정이 본심에서 솟아나온 가장 순수한 감정이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자신이 어리석은 탓이라 생각하고는 자기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한번 카튜샤에게 달려가 그녀를 껴안고 목덜미에 키스했다. 그러나 이 키스는 전에 했던 두 번의 키스, 라일락 숲 뒤에서 무의식적으로 했던 키스와 오늘 아침 교회에서 했던 두 번째의 키스와는 전혀 성질이 달랐다. 이번 키스는 무서운 것이었다. 그녀도 그것을 직감했다.
"왜 이러시나요?" 그녀는 마치 가장 소중하게 아껴오던 것이 이제 다시는 본래대로 되돌릴 수 없게 깨져버리고 만 것처럼 외치더니 그의 곁을 떠나 달려가 버렸다.
제1부 105p
정신적 자아와 동물적 자아 사이의 혼란. 갑작스럽게 부활한 정신적 자아 속의 추억은 네흘류도프의 동물적 본능을 이끌어낸 듯 보이는 장면이다. 이때 마슬로바도 느꼈던 것인지 감각적으로 불안함을 감지한다.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어." 그는 100루블짜리 지폐 한 장이 들어 있는 봉투를 접어서 주며 말했다. "이건 나의......"
그녀는 그의 말뜻을 깨닫고는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흔들면서 그의 손을 뿌리쳤다.
"아니, 받아줘." 그는 중얼거리듯이 말하고는 그녀의 품 속에 봉투를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마치 무엇에 데기라도 한 양 얼굴을 찌푸리고 신음 소리를 내면서 자기 방으로 달려갔다.
그는 한참 동안 방 안을 서성거렸다. 그리고 그날 밤의 일을 생각해 내고는 육체적 아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내기도 했다.
제1부 116p
네흘류도프는 동물적 자아에서 터진 마지막 행동으로 서로의 사이에 마침표를 찍는다. 100루블로 서로의 관계를 매매로 정리해버린 네흘류도프. 동물적 자아로 인해 정신적인 자아가 고통받게 되었다. 자신 뿐만이 아니라 카튜샤도 함께. 단순히 100루블이라는 돈 때문에 둘의 관계가 돈으로 귀결되버린 것이 아니다. 귀족과 하녀의 지위 차이가 그 결정을 명확히 내린 것이다. 돈이 별로 없는 가난한 남자와 여자의 만남에서, 떠나야 하는 남자가 자신이 가진 큰돈을 건네면서 주었다면, 과연 그 관계가 매매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이건 네흘류도프가 귀족이라는 지위를 망각한 채 자신도 모르게 피어오른 오만함에서 기인한 행동이다.
단 한번. 전쟁이 끝난 뒤 그녀를 만나보고 싶은 생각에 고모네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이미 그곳에 카튜샤는 없었다. 그가 출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낳기 위해 집을 나가 어디선가 해산을 했으나 고모들이 들은 소문에 의할 것 같으면 완전히 타락해 버렸다고 했다. 네흘류도프는 가슴이 아픔으로 미어지는 듯했다.
그날 밤부터 날짜를 따져보니 그녀가 낳은 아이가 자기 아이인 듯도 했으나 그렇다고 무조건 자기 아이라고 믿을 수는 없었다. 고모들은 자기 어머니를 닮은 타고난 바람기 때문에 그녀가 타락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 말은 어쩐지 자신을 감싸주는 말 같아 기분 좋게 들렸다. 그래도 처음 얼마 동안은 카튜샤와 아이를 찾아볼 생각을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일을 생각한다는 게 너무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워 노력을 그치고 차츰 자신의 실수와 그녀를 잊게 되었다.
제1부 117-118p
정신적 자아가 불현듯 다시 부활한 네흘류도프. 카튜샤를 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로 인한 고통이 싫어 지워버리기로 한 것이다. 고결함을 주장하고, 귀족으로서 체면을 따지던 네흘류도프 결국 그것을 위해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은폐시킨다. 어두운 곳에 숨겨두면 어떠한가. 빛이 들지 않기에 습기가 쉽게 차고 곰팡이가 자란다. 부패하기 쉽다는 것이다. 즉,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결국엔 숨길 수 없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카튜샤와의 관계에 있어서만은 애매한 부분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안 되었다. '교도소에 가서 그녀를 만나 용서를 빌자.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녀와 결혼하자.' 하고 그는 생각했다. 정신적 만족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던지고 그녀와 결혼 하겠다는 이 생각에 오늘 아침 그는 강렬하게 전율했다.
제1부 206p
그녀를 만나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자기의 과오를 뉘우치고 속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다 하겠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결혼까지 하겠다고 말하는 자기 자신을 상상만 해도 그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동에 휩싸여 저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였다.
제1부 211p
결국 드러나버린 마음 속 한 켠의 죄책감. 자신으로 인해 타락한 카튜샤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의감으로 무장한 것이다. 자신의 이러한 다짐에 자아도취하는 장면은 꽤나 거북스럽다. 책임을 다하는 건 다하는 것일 뿐이다. 자족하는 짓이 오히려 귀족의 지위를 더욱 역하게 만든다.
"그건 또 무슨 이유입니까?" 검사가 물었다.
"제가 그 여자를 농락해서 오늘과 같은 처지로 몰아넣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가 그 여자를 내버려 두지만 않았던들 이런 처지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이런 혐의를 받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청하시는 면회와 어떤 관계가 있는 지 제겐 이해되지 않는군요."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요? 사실 저는 그 여자를 따라가
•··•... 그리고 결혼할 생각입니다." 네흘류도프는 드디어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이 말을 끝내고 나자 어느 때처럼 그의 눈에는 눈물이 핑그르로 돌았다.
제1부 221p
또 눈물이 흐르는 네흘류도프. 이젠 좀 질린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함으로 알리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동안 은폐되었던 자신의 감정과 생각들이 터져 나오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네흘류도프가 귀족으로서 고결함을 지키기 위한 체면치레라고 생각했다. 그 의도는 작가만이 알 것이다.
'이제 이 여자는 가망이 없어.' 그 목소리가 말했다.
'그저 네 목에 돌을 매달 뿐이다. 그 돌은 네가 남을 위해 유익한 존재가 되려는 것을 방해할 뿐이며 너는 그 돌과 함께 물속에 가라앉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가진 돈을 몽땅 털어 이 여자에게 주어버리고 이 여자와 깨끗이 관계를 끊고 나서 영원히 어둠 속에 묻어버리는 게 낫겠다.'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의 마음속에서 뭔가 중대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또 그의 내면이 지금 아주 작은 힘일 지라도 자신을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할 만큼 저울 위에 불안정하게 놓여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마음속에서 느껴지던 신에게 구원을 청하여 힘을 얻었다.
그의 내부의 신은 곧 호응해 주었다. 그는 지금 당장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자고 마음먹었다.
"카튜샤, 난 너에게 사죄하러 온 거야. 그런데 넌 나를 용서했는지, 아니면 언젠가 용서해 줄 것인지 말하려 하지 않는군" 그는 갑자기 ‘너' 라고 말을 바꾸면서 말했다.
제1부 262-263p
무한도전 정신상담 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정형돈을 뒤로 박명수와 유재석이 번갈아 말하는 장면 말이다. 네흘류도프가 역겹다고 생각한 것이 확실해진건 상대에게 용서의 여부를 당당하게 묻는 것 때문이다. 사죄하러 온 사람이 사죄받는 것에 대해 묻는다? 귀족이란 지위에서 오는 오만함인 것인지, 작가가 말한 동물적 자아의 발현인 것인지 모르겠다. 누군가 체벌해주고 훈육할 사람이 없이 자라서 였는지 기고만장한 느낌이 든다.
마슬로바도 자신의 인생이나 사회에서의 자기 처지에 대해 이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유형 판결을 받은 매춘부였으나 그럼에도 자기를 인정하고 어느 사람 앞에서고 자기를 자랑할 수 있는 자기 나름의 인생관을 키웠던 것이다.
그 세계관이란 이런 것이었다. 세상 모든 남자들, 즉 늙은이건 젊은이건 중학생이건 장군이건 교양 있는 자이건 무식한 자이건 모두 예외 없이 그들의 최대 행복은 매력 있는 여자와 성행위를 하는 데 있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일들로 꽤나 분주한 듯하나 실상은 모두 이 일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스스로 매력이 있다고 여기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그런 욕망을 채워줄 수도 채워 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존재는 중요한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생활이나 지금의 생활이 이러한 견해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마슬로바는 인생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가장 저열한 인간이 아닐뿐더러 가장 중요한 인간이었다.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인생관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고, 또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 자신의 인생관이 변하는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은 존재 가치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사회에서의 자기 가치를 존속시키기 위해 자기와 똑같은 인생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를 본능적으로 지지했다. 그런데 네흘류도프가 다른 사회로 그녀를 끌어들이려 하는 것을 눈치 채고, 자기가 그의 뜻대로 여기에서 벗어나 그가 끌어들이려는 세계로 발을 내디딘다면 자기에게 긍지와 자존심을 갖게 해줬던 자기 인생의 의의가 없어질 것만 같아 그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었다.
제1부 267-268p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법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100루블을 건네받는다니, 그게 무슨 의미이겠는가. 내 감정은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란 생각밖에 더 안 든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돈을 받으며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취급을 받고 자신을 떠나버렸는데, 정신을 팔고 사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걸까.
카튜샤를 손가락질 할 이유가 없다. 어린 소녀의 마음은 그저 100루블로 환산되었을 뿐이다. 남자들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다만 개인의 관점으로만 보았을 때는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파는 일이기에 비극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제정신을 갖추고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를 추구하는 인물은 없다. 마슬로바도, 네흘류도프도. 둘다 선을 잃어버렸고, 그것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말할 수 있다. 카튜샤는 네흘류도프 덕에 선을 잃었고 네흘류도프는 주변 환경에 의해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그 선이라는 개념을 다시 찾아가며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두 인물의 모습을 사랑으로 그려낸 작품이다.